캐나다 ‘하베스트 부실인수’ 건과 관련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왼쪽)이 지난 10월 국감장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지경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장관(오른쪽)이 추진하라고 해서 했다’라고 증언해 논란이 일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진보세력 고발에 원세훈·김용판 전례 반복 가능성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앞두고 지난 2013년 증인선서 거부 논란이 일었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같은 전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조 시작 전에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와 관련한 핵심 인사들이 검찰에 고발됐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4일과 10일, 연이어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한 2건의 고발장이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됐다. 먼저 정의당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함께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당시 공기업 전·현직 사장들을 배임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피고발인은 광물자원공사 김신종 전 사장과 고정식 현 사장, 가스공사 주강수 전 사장과 장석효 현 사장, 석유공사 강영원 전 사장과 서문규 현 사장이다.
뒤이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자원외교 책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피고발인들이 사업성이나 투자 여건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아 혈세를 낭비해 국가에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에서였다. 고발된 이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당시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정책관이었던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과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등이다. 두 고발 건은 형사6부(부장검사 서봉규)에 배당돼 수사 중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자원외교 국조보다 앞선 검찰 고발이 국조 증인신청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자원외교 국조특위 위원실 보좌관은 “자원외교 핵심 인물들이 거의 다 고발당해서 원세훈·김용판 사례처럼 증인 심문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며 “원래는 국조를 통해 문제가 되는 점들에 대해 검찰 고발을 하는 것이 순서인데 국조 시작도 전에 고발부터 했다. 진보단체에서 엇박자를 낸 셈”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013년 8월 국정원 국조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판 전 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관련 사건 재판중이라는 이유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청문회에 출석한 김 전 청장은 증인선서를 거부하고 소명서를 낭독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국조와 동시에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증인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 과정에서 진의가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지면 재판에 영향을 준다”며 증언감정법 제3조 1항 및 형사소송법 148조를 그 이유로 들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제3조 1항에는 형사소송법 148조와 관련됐을 경우 증인선서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148조는 당사자나 그와 관련된 친인척 등이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남)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김용판 전 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증인선서를 하지 않았기에 위증을 하더라도 국회에서는 고발할 수 없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앞서의 보좌관은 “당시 야당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기에 앉아서 당했다. 결국 증인선서를 안했기 때문에 아무 책임도 묻지 못했고 흐지부지하게 끝났다”며 “이번 사건도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떠나 일단 ‘피고발인’이 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증인선서를 거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판·원세훈 사례 이후 야당에서는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한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8월 국회법 제3조 1항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춘석 의원실 측은 “아직 법이 운영위에 있기 때문에 기존대로 적용될 것”이라며 “이번 자원외교 국조에서도 김용판·원세훈 사례가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내다봤다.
# 김대중·노무현 정부 증인으로 당대표 내주면 ‘대략난감’
자원외교 국조 증인 문제는 책임자들뿐 아니라 야당의 차기 당대표에게도 잠재적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자원외교 국조 범위가 야당 집권 때까지 확대되면서 대권주자이자 유력 당대표 후보인 문재인 의원과 강력한 라이벌인 박지원 의원 등에 불똥이 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29일 자원외교 국정조사 요구서가 국회를 통과하며 100일간 조사를 하고 최장 25일까지 기간 연장이 가능하게 됐다. 당초 야당은 국조 범위를 이명박 정부 기간으로만 한정하자고 주장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해외 자원개발 외교가 시작된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기간이 결정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포함됐다.
야당에서 자원외교 국조 무용론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정된 기간에 세 정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기에는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상대적으로 여당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증인신청을 하면서 시간을 끌 가능성도 있다. 결국 여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관련 인사에 대한 증인신청을, 야당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증인신청을 두고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경우 야당 쪽이 더 부담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관련 인사들의 경우 핵심 친박인 최경환 부총리 정도를 제외하면 현 박근혜 정부와 관련성이 적다. 하지만 야당은 그렇지 않다. 한 친노계 의원실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문재인 의원이 당대표가 될 확률이 높다. 2월 전당대회 후부터 본격적인 청문회가 시작되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을 증인 신청한다면 난감해진다. 비리가 없더라도 당대표가 증인으로 서게 된다는 것 자체가 당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 결국 여당보다 야당이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의원과 함께 차기 당대표 유력 후보인 박지원 의원도 김대중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여당의 ‘사정권’ 안에 들어있다.
캐나다 하베스트 정유부문 자회사인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 인수 건은 대표적 자원외교 혈세 낭비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은 2010년 11월 캐나다 캘거리 하얏트 호텔에서 ‘한국석유공사 글로벌 기술연구센터(KNOC Global Technology & Research Center)’ 개소식 모습. 연합뉴스
야당의 ‘바쁜 일정’도 국조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로 꼽힌다. 이미 지도부가 형성돼 있는 여당에 비해 야당은 오는 2월 전당대회를 연다. 이번 전당대회는 차기 공천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당내 최대 관심사다. 오는 4월에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치러지는 지역구 3곳 등에 대한 재·보궐 선거가 진행된다. 2월에 새로 구성된 야당 지도부는 곧바로 후보 공천에서부터 선거전략 등 재보선에 매진해야 한다. 특히 해당 지역구들이 야당 강세라 1곳이라도 내주면 타격을 입는다는 분석이 많아 소홀히 할 수 없다.
앞서의 친노계 의원실 관계자는 “1월 중 조사계획서를 채택하고 일정을 진행한다지만 우리는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정신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4월에는 재보선까지 있는데 해당 일정들과 국조 일정이 겹친다. 국조에 투입될 인력이나 당 집중력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강 전 사장은 홍영표 새정치연합 의원이 인수 건을 최 부총리에 보고했고 허락을 받았느냐고 묻자 “(인수를) 부인하지 않은 건 정확하다”며 “(최 부총리가 허락한)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인수 검토 책임론에 대해서도 “정유공장을 인수하는 부분은 민감한 부분이 있다. 석유공사법에도 적시돼있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식경제부의 의견을 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부총리는 이에 대해 “석유공사 사장이 주말에 한 5분 정도 잠깐 얘기한 것을 듣고, 제가 정보가 없으니 ‘여러 리스크를 감안해 판단해보라’고 답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해명했다.
야당 내에서도 사실관계가 명확한 당시 실무자들을 추궁해 책임론을 구체화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자원외교 국조 특위 야당 간사인 홍영표 의원실 측은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해 해외의 자본유출에 대해 조사를 하는 의원실도 있겠지만 우리 방은 전·현직 공기업 사장 등 당시 관련된 실무자들에 대해 책임을 묻고, 앞으로 자원외교와 관련된 시스템을 구축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것이 잘 진행돼도 국조에 성과를 이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증인들을 문책하는 청문회 와중에 ‘강영원-최경환 사례’와 같이 ‘윗선’의 책임을 끌어낼 증언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앞서의 국조 특위 소속 의원실 보좌관은 “목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증인석에 세우자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비리 정황을 찾아 여론을 형성해야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며 “정부여당에 이미지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청문회 도중에 꼬리자르기에 불만을 갖는 공무원들이 역선택(증언)을 하는 경우다.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현 정부에 대한 공무원들의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