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통진당 해산 선고 이후 이정희 전 대표(앞줄 가운데) 등 당원들이 장외투쟁에 나섰다. 연합뉴스
집권 3년차를 맞은 청와대의 권력이 아직 건재한 가운데 야당은 여전히 정돈된 대오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여러 계파로 나뉘어 있고 통진당 잔존 세력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검찰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은 더 세졌는데 이에 대항할 야당의 힘은 그리 세보이지 않는다. 공안정국 구성으로 강력해질 일만 남은 검찰의 힘이 엉뚱한 데로 튀지 않을지, 정치권 일각에서 신중한 경계론이 일고 있다.
#‘공안열풍 주도’ 통진당 수사는 계속
2014년 여러 굵직한 공안 사건을 지휘한 검찰은 이 사건들이 법원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로 끝나면서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검찰은 공안 사건 증거인정 문제와 관련해 법원의 문제점을 질타하는 등 마찰을 빚기도 했다. 잔뜩 약이 오른 검찰이 연말 반전 계기를 잡게 된 사건이 바로 통진당 해산 선고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지난 19일, 검찰은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시로 대검찰청 공안부와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 경찰청 정보국·경비국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공안대책회의를 열었다. 명분은 통진당 해산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소요를 사전 단속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상 이를 기화로 이적단체 수사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실제로 검찰은 해산 결정 직후 이정희 대표 등 통진당 지도부뿐 아니라 당원 전체를 대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에 들어갔다. 보수단체들이 고발하고 검찰이 이를 이유로 수사에 나서는 전형적인 공안 수사의 형태를 갖췄다. 김미희, 이상규 전 통진당 의원은 과거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으로부터 북한의 공작금을 지원받았다는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또 위헌 결정이 내려진 통진당이 ‘이적단체’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보법상 이적단체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통진당 잔존 세력들을 대거 형사처벌할 근거가 생긴다. 이들과 연관됐거나 비슷한 목적을 가진 단체나 개인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이 같은 검찰의 움직임이 진보진영을 노린 수사의 시발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지난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통진당과 선거 연대를 했던 것 역시 위법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일부 시민단체는 당시 당대표였던 한명숙 의원 부부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힘 남은 청와대, 사정 동원해 야권 견제 가능성
지난 한 해 특수수사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검찰은 2015년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집권 3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경제살리기에 올인하면서 대규모 재벌 수사는 꺼릴 가능성이 높다. 특수수사 전문인 한 차장급 검사는 “2015년 연말쯤 돼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같아서는 재벌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의 신임을 받고 있는 김진태 검찰총장은 2015년에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공비리 수사에 집중할 예정이다. 2015년에는 지방 공공기관·단체에 대해서도 수사를 넓혀갈 계획인데, 지난해 전국규모의 공공기관을 집중해 수사한 가운데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점을 비춰보면 본 수사 자체에서는 큰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평이다.
그보다 공공기관 수사를 통해 여야 정치인들의 비리 연루 수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 지역 공공기관이나 단체 등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대규모 사정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입법로비 수사의 경우도 검찰이 일단 한 발 물러난 모습이지만 현재 진행중인 재판 결과에 따라 언제든 치고나갈 수 있게 관련 첩보들을 모아놓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 선거와 연말부터 본격화될 2016년 총선 준비를 앞두고 사정당국의 개입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한 당직자는 “이번 선거는 당내 계파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날 텐데 그럴 때 공안당국이 개입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며 “정권 말에 가까워지면서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되는 시점에 2016년 총선이 치러진다. 그 전에 어떤 여론몰이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가 특히 긴장해야 할 시기”라고 내다봤다.
정치권 수사는 특성상 한 번 물꼬가 트이면 관련 첩보가 줄줄이 이어진다. 수사로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온갖 치부가 고스란히 검찰 손에 들어가게 된다는 점에서 정치인으로서는 큰 약점이 생기는 셈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국회의원쯤 되면 첩보가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무조건 수사를 하지는 않는다. 예우라고도 볼 수 있는데, 잡범 수준으로 넘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렇다곤 해도 여자관계나 청탁 문제 같은 온갖 창피한 일들이 드러나면 고개를 들고 다니기 쉽겠느냐”고 말했다.
이 같은 전망은 2015년 초 예정된 검찰 인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더 구체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채동욱호’ 아래에서 활약했던 특수수사 전문 검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있는데 김 총장이 이들 중 다시 주요 수사에 어느 정도 불러들이느냐에 따라 의지를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막상 ‘특수통’ 검사들 상당수는 별 기대를 않고 있는 듯하다. 예전 ‘채동욱 라인’으로도 불렸던 한 검사는 “아직 좀 더 쉬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조정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