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서울대병원전공의협의회측(대전협)은 지난 4일 “지난 8월 암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H의원의 부인에 대한 진료과정에서 주치의인 A씨에 대해 H의원의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레지던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공인의 신분에서 의사에게 폭행을 한 것은 묵과할 수 없다”며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H의원은 사실확인을 피하고 있다. 다만 측근을 통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만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국회의원의 권위적 행동’이라는 비난과 ‘H의원 동정론’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H의원의 부인인 S씨는 지난 8월 몸에 이상을 느껴 서울대병원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S씨는 정밀진단을 받았다.
보통 암으로 판정되기 위해서는 CT 촬영·엑스레이 촬영과 임상적 사례를 통해 의심부위를 확인한 뒤 조직을 떼어내 검사를 해야 최종적으로 판단되는 과정을 거친다. 조직검사는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정밀검사이고 그만큼 환자도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CT 촬영 등의 과정을 먼저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난 8월31일 밤 10시경 전공의 A씨는 평소대로 CT촬영과 엑스레이 촬영 결과에 대해 설명해주기 위해 하루의 일정을 끝내고 VIP실에 있는 H의원 부부를 찾아갔다.
빡빡한 레지던트 생활에서 그나마 시간을 내서 환자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그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대전협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A씨는 CT촬영 결과에 대해 “암으로 의심되는 소견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H의원은 “그럼 암인가? 확실한 것이냐?”고 다그쳤고, A씨는 “아직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조직검사를 통해 최종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아내 앞에서 얘기하기가 껄끄러웠던지 H의원은 A씨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계속 “정확한 사안은 아직 모른다”는 A씨의 말에 급기야 H의원의 참을성은 한계를 넘어섰다.
H의원은 “도대체 의사가 모르면 누가 아는 것이냐. 제대로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냐?”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 A씨가 “검사를 더 해야 한다”고 하자 H의원은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환자 앞에서 사형선고를 하는 것이냐”며 의사를 폭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전협 관계자는 “흥분한 상태의 H의원은 A씨를 다시 자기 부인의 병실로 데리고 가 무릎을 꿇리고 ‘잘못했다고 빌어라’고까지 하며 의사에게 굴욕감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무릎을 꿇은 채 H의원의 부인에게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경솔하게 말했다”며 사과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갑작스런 폭행에 속이 상한 A씨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서울대병원전공의협회는 협회 차원에서 H의원에게 사과를 받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H의원은 사과를 계속 거부해왔다는 것이 서울대병원측의 설명이다.
이에 교수들이 나서서 “전공의들의 불만이 상당하니 사과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서로 좋게 마무리하자”며 H의원을 설득했고 결국 H의원의 사과로 일단 이 같은 폭행건은 마무리가 됐다는 것.
이후 H의원은 부인의 치료를 위해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어쨌든 H의원측에서 사과를 해 온 터여서 조용히 이 일을 마무리하려 했다. 특히 피해당사자인 A씨 역시 그것을 원했다. 자신의 신상이 밝혀지는 것을 극구 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전협측의 입장은 다르다.
대전협의 한 관계자는 “마지못해 한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한 개인의 폭행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공의 전체의 명예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H의원이 공인인 이상 반드시 공개적인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건이 전공의 홈페이지를 통해 여론화되자 전국의 전공의들은 “의사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흥분 일색의 글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평소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기로 소문난 H의원에 대한 동정론도 제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부인 앞에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청천벽력같은 암 선고를 내렸는데 어떻게 남편이 냉정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남편으로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폭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의 얘기만 듣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선 안될 것”라는 의견을 올렸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환자는 “국회의원이 권위적이라는 것을 따지기 이전에 의사들도 상당히 권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면이 많다”며 “오죽했으면 폭행까지 했겠느냐”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편 주치의 A씨의 당시 행동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하는 의견이 많다. “일단 환자에게 말하기 앞서서 보호자인 H의원에게 먼저 상황을 얘기했어야 옳았다”는 의견이 그것.
이 같은 논란이 분분하자 대전협 홍보담당관 이동형씨(29)는 “보통 생과 사의 갈림길이 결정되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가해지는 폭행이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응급실에서 폭행이 가장 많이 일어나고, 전공의 4년 과정을 마치며 폭행 한 번 당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폭행 당사자로 알려진 H의원은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취재진이 H의원의 측근을 통해 “이번 폭행건에 대한 의원의 입장을 듣고싶다”고 수차례 메시지를 전했으나 측근들은 H의원의 소재에 대해 “파악되지 않는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실제로 한 측근은 “H의원에게 직접 확인해 본 결과 그 같은 사건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하셨다”고 전했다. 그는 “의원님이 가족과 관련한 사적인 부분은 얘기를 않기 때문에 우리들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다른 한 측근은 “폭행건은 사실무근이다. 우리도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다”며 “의원님께서는 그런 일 없다고 하셨다.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고, 의원님의 평소의 성품으로 미루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기자 world@ilyo.co.kr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