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사건이 일어난 부산 S여관 방안. ‘음독’ 이미지를 합성한 것. | ||
이들 세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시간은 지난 9일 오후 1시경. 시신은 여관 주인과 종업원이 처음 발견했다. 점심식사 이후 체크아웃 시간이 되자 여관에서 일하는 박아무개씨(59·여)가 208호 문을 두드렸고, 방안에서 인기척이 전혀 없자 여관 주인이 예비키를
이용, 문을 열고 들어가 시신을 확인한 것이었다.
발견 당시 세 사람은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바르게 누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두 남자가 침대 바깥 부근에, 30대 여성인 손아무개씨는 두 남성 사이에서 숨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관방 바닥에서는 맥주와 소주병이 각각 두 병, 콜라, 팩에 든 커피, 사발면, 종이컵 등이 발견됐다. 맥주와 소주는 반쯤 비어있었으며 사발면은 개봉하지 않은 상태였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방안에서는 흰색 플라스틱 통에 든 시안화칼륨(청산가리)도 발견됐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을 가늠케 하는 증거물이다. 경찰은 플라스틱 통 뚜껑이 열려있고 객실 열쇠에 시안화칼륨이 묻어있는 것으로 미뤄, 이들이 열쇠를 이용해 알갱이로 된 시안화칼륨을 가루로 내어 이를 술과 함께 섞어 마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사망 추정 시간은 새벽 2시.
지난 3월10일 국립과학연구소의 부검 결과에서도 이들의 사망은 시안화칼륨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검을 참관한 부산 동부경찰서 배수환 경위는 “별다른 외상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위가 아예 타 버려 흑갈색으로 변해있었다는 점에서 독극물을 마시고 사망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 발견 후 이들의 거주지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미뤄, 인터넷 자살사이트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했다. 경찰은 우선 이들 세 명의 지갑에서 나온 주민등록번호 등의 신상을 통해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이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이들은 모두 네이버, 엠파스, 다음, 천리안, 그리고 채팅사이트인 세이클럽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곧바로 5개 사이트의 협조를 받아 이들 세 명의 최근 한 달 간 메일 내용을 확인했다. 특히 세 사람이 자살에 관한 내용의 메시지를 이메일로 주고받았는지 여부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부산에 거주하는 이씨가 네이버에 카페 자살사이트를 개설, 경북 상주에 사는 이씨와 몇 차례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자살사이트의 개설 날짜와 세 사람의 2004년 1월까지의 메일 내용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이 조사 중에 있다.
경찰은 세 사람의 한 달간 이메일 내용을 전부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기자는 자살 전날인 3월8일 오후 3시46분 부산 이씨가 상주 이씨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을 입수했다.
▲ 사건현장에서 수거한 증거물들. | ||
이 같은 메일 내용만으로도 두 사람이 만난 경위와 시간을 예측할 수가 있다. 상주 이씨가 메일을 받았다는 가정하에 두 사람이 부산역에서 만나 자살을 모의했다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점쳐진다. 이들이 사건 장소인 S여관에 나타난 시간은 오후 9시로 알려졌다. 여관 주인은 경찰 조사에서 “두 남자가 오후 9시에 여관방을 예약한 뒤 방에 들어가지 않고 곧바로 나갔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과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 30대 여성 손씨는 누구이며 어떻게 여관에 들어갔을까.
경찰은 손씨가 두 남성 중 한 사람과 동행한 뒤 여관을 예약할 때는 여관 밖에 기다리고 있다가 새벽에 주인이 잠든 후 여관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손씨와 상주 이씨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손씨가 부산 이씨와 메일을 주고받은 흔적이 없고 ▲상주 이씨의 누나가 경찰 조사에서 최근 손씨의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으며 ▲특히 시신 발견 당시 상주 이씨가 손씨를 꼭 껴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둘이 연인 사이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숨진 두 남성은 평범한 가정의 대학생이었다. 이씨는 D대학 M학과에, 또다른 이씨는 K대학 C학과 2학년에 각각 재학중이었다.
유가족들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 가족들은 경찰 조사에서 “비록 넉넉지 못했지만 남들에 비해 못해준 것도 없었다. 성격은 내성적이었으나 자살까지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충격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부산 이씨는 최근 같은 과 동기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친구들은 경찰 조사에서 “이씨가 최근 학교 다니기 싫다, 삶이 무섭다, 의욕이 없다”는 말을 자주하고 수업에도 출석하지 않았다고 증언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남성과는 약간 대조적으로 손씨는 이미 중3 때 가출해, 부모들과 연락을 끊고 유흥가 등을 전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양실조와 빈혈기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힌 부검 검시관의 말은 그녀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대변해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