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정윤회 씨 비선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유출 수사 등을 진행하면서 ‘가이드라인’ 수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청와대 문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김진태 검찰총장은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장이면서도 실질적으로 검찰을 좌지우지하는 힘은 청와대에 있는 것 아니냐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전임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특수부 검사들을 중용하며 이른바 ‘채동욱 라인’을 만들고 이를 중심으로 특수수사를 이끌어갔던 데 비해 김진태 총장은 눈에 띄는 ‘자기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김 총장의 임명에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경남(김기춘 경남 거제, 김진태 경남 사천) 출신이고, 김 실장이 법무부 장관이던 1989년 김 총장은 법무부에 평검사로 재직하며 함께 일한 인연도 있다. 두 사람은 “그 정도 인연일 뿐”이라며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여전히 김 총장은 ‘김기춘 실장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권위주의 청산 실험을 시도했던 참여정부 정도를 제외하면, 역대 정권은 모두 검찰 등 사정라인 장악에 공을 들여왔다. 사정라인을 먼저 잡아야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같은 관행을 타파하겠다며 검찰 독립 보장에 공을 들였지만 검찰 개혁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시도 때도 없는 검찰 반발에 고역을 치렀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인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과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전 검찰총장을 앉혀 검찰을 장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의중과 상관없이 정권 말 추천된 후보자 중 하나였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첫 검찰 수장으로 앉혔지만 코드가 맞지 않은 탓에 검찰 권력을 손에 넣는 데 실패했다. 결국 청와대가 일부 개입한 ‘혼외자 의혹’을 거치면서 채 전 총장을 교체하고 검찰을 장악할 수 있었다.
청와대가 검찰을 통제하는 라인은 보통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그 위에 대통령비서실장이 있다. 모두 검찰 출신이다. 일반적으로 민정수석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업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 고검장 급에서 뽑는 경우가 많은데, 현 정권에서는 검찰을 떠난 인물들을 연이어 앉히고 있다. 첫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사법연수원 15기)이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14기), 황교안 법무부장관(13기)보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낮아 중간 조율이 원활치 않았다고 판단되자 이후부터는 기수가 더 높은 홍경식 전 민정수석(8기)을 앉혔다. 최근 항명파동과 함께 물러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14기로 김진태 총장과 동기다.
민정수석실에는 가장 잘나가는 검사가 파견돼 근무하고, 그 검사가 파견을 마치고 검찰 요직을 차지하면서 ‘충견’으로 성장했다. 김기춘 실장부터가 청와대 파견 코스를 밟은 대표주자다. 정구영 전 총장, 권재진 전 장관 등도 그렇다. 박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이중희 검사는 검찰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경력검사 임용 방식으로 검찰에 복귀한 뒤 요직인 부산지검 2차장검사 자리를 꿰찼다. 이런 유착 관계를 끊기 위해 청와대 파견 검사의 원대 복귀를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행은 요원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진태 검찰총장.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는 이런 구조 속에서 검찰총장을 ‘대리권력’으로 내세우지 않고도 검찰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김진태 총장을 능란한 관리자로 두고 사실상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하달해 개별 검사들을 조종하는 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지난해 특수부 검사들을 지역으로 내려 보낸 뒤 다소 경쟁에서 밀려왔던 것으로 판단되던 검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큰 사건도 별로 없다보니 이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충성심’을 보이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대기업 수사 등 굵직한 특수수사는 줄어든 반면, 정치권을 겨냥한 사정·공안 수사가 크게 중요해졌다. 검찰 제1의 화력이라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입법로비 수사와 정윤회 씨 비선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문건유출 수사 등을 진행하면서 ‘가이드라인’ 수사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특수부를 이끌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최근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를 ‘원만하게’ 마무리 지으면서 검사장 진급에 한 발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3차장이 이번 사건을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정윤회 씨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개입 의혹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됐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관심있게 지켜볼 대목이다.
검찰이 정치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소신을 지키는 검사들은 오래 버티기 어려운 구조다.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공안 검사들에 비해 ‘칼잡이’로 불리는 특수통 검사들은 검찰총장에 오르기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전 정권 출신의 한 인사는 “언제 칼을 거꾸로 잡을지 모르는데다 조율도 잘 안 되는 특수부 검사를 누가 총장으로 놓고 싶겠느냐”고 했다. 재작년 ‘채동욱 호’ 아래에서 특수부 검사들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대선개입 의혹 사건을 치밀하게 파헤쳐 내려갔던 모습이 딱 좋은 예다. 한 전직 장관급 인사는 “공직자로 평생을 살았다고 해도 일정 자리 이상 올라가면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씁쓸한 듯 말했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특수부 검사들에 비해 공안 검사들은 특성상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 정치 무대에서 더 돋보인다. 특히 안보를 중시하는 모습은 보수 진영의 논리와도 일맥상통해 언제나 공안검사들은 정계에서도 선호 대상이다. 사정은 청와대도 마찬가지여서, 언제나 공안검사는 승진에서 특수부 검사보다 한 발 앞서고 있다.
다만 정권의 힘보다 더 강력한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검찰의 ‘조직 논리’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검찰은 언제나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데, 뒤를 받쳐주던 정부의 힘이 약해지는 정권 말기나 정권 교체 후에는 혹독한 칼춤을 추곤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 수사를 받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그의 서거로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내곡동 의혹과 4대강 비리 수사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의 집권 4년차 때부터 검찰의 ‘반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이 같은 생리를 잘 아는 박근혜 정부는 검찰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검-경 수사권 분리’ 같은 문제에서 검찰 편을 들어주는 식으로 달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