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회창 전 총재가 사무실을 마련하고 외부활동을 재개했다. | ||
정치권에선 최근 이같은 불조심 포스터를 실감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활동을 완전히 재개했고, 최병렬, 서청원, 강삼재 전 의원 등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이 전 총재의 경우 심상치 않은 움직임으로 많은 사람들을 당혹케하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움직임과 관련,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 하나.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이 전 총재는 당시 홍사덕 원내총무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탄핵안 통과를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가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전화를 했다”면서 “이 때문인지 몰라도 탄핵안 통과를 고민했던 홍사덕 총무가 결국 탄핵안 통과에 앞장섰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가 탄핵안 통과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다면 당연히 사심(私心)이 개입됐을 것이란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전 총재 주변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 전 총재는 차떼기당 이미지가 고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권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총재는 노 대통령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라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점을 크게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병풍사건 등 여권의 공작정치로 패배했다는 억울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나라를 위해서 내가 이대로 있어서 되겠느냐”는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의 재기의지가 무너진 건 차떼기 수사 때문이다. 이 전 총재는 도덕적으로 몰락 위기에 처했고,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총재측은 당시 완전히 재생불능이 될 줄 알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차떼기의 원죄를 서정우 변호사가 모두 덮어썼고, 이 전 총재는 직접적 책임을 면했다. 사실 이 전 총재가 몰랐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깝다고 정치권은 보고 있다. 그렇지만 검찰수사는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과 이 전 총재는 몰랐던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전 총재에게 나름의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 전 총재는 이후 다시 심기일전해 재기를 모색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총재가 당시 홍사덕 총무에게 전화를 건 것도 이 즈음이다.
정치권에선 당시 우스갯소리로 “최병렬 대표와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권 욕심 때문에 탄핵안 통과를 밀어붙였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탄핵안 통과를 압박한 이 전 총재도 마찬가지 맥락인 셈이다.
이 전 총재측과 홍사덕 전 총무측은 “할 말이 없다”고 당시의 정확한 내용을 함구하고 있다.
▲ (왼쪽부터)최병렬,서청원,강삼재 | ||
이 전 총재는 인천공항에 배웅차 나온 양정규, 하순봉 전 의원 등에게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혈색이 좋아 보인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공항에는 김형오 사무총장과 정형근 고흥길 유승민 이계경 의원과 김종하 신경식 목요상 유흥수 전 의원, 이종구 이흥주 전 특보 등 1백여 명이 나왔다.
`창사랑’ 회원들은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희망하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이회창 사랑해요”라고 외치며 이 전 총재를 격려했다.
창사랑 홈페이지에는 이 전 총재 귀국 환영대회를 준비하는데, 각계의 반응이 어떨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수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창사랑 회원들부터 오랜 위축에서 벗어나 희망과 재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총재는 공교롭게도 출국 전날 시내에 사무실을 개소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전 총재는 출퇴근할 만한 곳이 필요해 사무실을 만들었다고 했으나, 이 역시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오죽하면 열린우리당에서 이상하게 볼 정도일까. 열린우리당 김현미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나 국가보안법에 대한 수렴청정을 통해 정치적인 의사를 밝힌 이 전 총재가 사무실을 개소한 것이 가볍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시각에서도 이 전 총재가 정치재개의 수순을 밟는 게 아닌가 관심을 갖게 될 정도라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박 대표의 갈피 못 잡는 리더십, 이명박 서울시장의 탈법과 위증 등으로 한나라당 내부구도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이 전 총재의 사무실 개소는 단순한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지난 9월21일 이회창 전 총재가 옥인동 자택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 ||
이런 때 이 전 총재가 선친 묘소를 옮겼다는 얘기가 나왔다, “묘가 집단거주지로부터 5백m 이내에 위치해 위법상태로 있는 만큼 이장이 불가피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장의 진짜 이유는 “터가 나쁘다”는 것이었고, 김종필 전 총재가 이장한 지역과 멀지 않은 명당자리로 이전한 것을 두고, ‘대권 꿈을 다시 꾸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 전 총재가 요즘 읽는 책 중엔 <만약에 1, 2>라는 게 있다는데, 세계사를 가정법으로 재조명한 두 권의 책이라고 한다.
이 전 총재에게 벌어지는 이 같은 일들이 모두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전 총재측은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는 사실이 아니다. 이 전 총재가 <만약에>라는 책을 읽고 있다는 것도 보도를 통해 알았는데 직접 이 전 총재께 물어보니 집에 그런 책이 없다고 하더라”며 복귀설을 전면 부인했다.
한편 최병렬 전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 강삼재 전 사무총장 등도 탄핵 및 검찰수사의 악몽에서 벗어나 재기를 모색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 전 대표는 마포에 사무실을 냈고, 강 전 총장은 한때 중단했던 강연정치를 통해 여론을 탐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내년 4월 재보선을 재기의 1차 기회로 삼고 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