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한국인 수배자들은 대부분은 경제사범이거나 국내에서 재판 받던 중 해외로 도피한 자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그룹의 몰락과 함께 6년째 해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는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
김 전 회장의 경우 지난 2001년 경찰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하긴 했으나 최근에야 공개명단에 등록돼 “경찰이 김 전 회장을 송환하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97년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3천7백억원대 금융사기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의문의 구속집행 정지결정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 99년 1월13일 탈주한 변인호씨(48)도 아직까지 공개 적색수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변씨는 수출입사기, 주가조작, 어음사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범죄자. 특히 서류만으로 수출입이 된 것처럼 꾸며 신용장을 근거로 은행에서 수출대금을 미리 받아 챙긴 수법은 변씨가 ‘원조’로 꼽힌다. 변씨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통신수단이었던 인공위성 전화기, 월드폰, 자동 로밍 휴대폰을 활용하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린 것으로 알려져 수사관들이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또한 지난 98년 아시아자동차를 상대로 1억8천만달러의 무역사기를 저지른 브라질 교포 전종진씨(41)도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항소 중 2001년 10월 브라질로 도주해 적색수배된 상태다. 당시 전씨는 ‘아시아자동차 부도의 주범’ ‘브라질판 봉이 김선달’로 불리기도 했다. 경찰은 전씨가 브라질에 상당한 재산을 두고 은신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외에도 2000년 자신의 부인과 여섯 살 난 아들에게 독극물을 먹여 숨지게 한 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 S대 전 교수 배공영씨(41)도 적색수배중이다. 배씨는 살인 후 대학원생 6명과 함께 예정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한 후 잠적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인터폴과 공조하고는 있지만 인터폴이 강제력을 갖춘 기구가 아니어서 해외 도피범 검거에는 해당 국가 경찰의 도움이 필수적이다”면서 “도피범 중 상당수가 거물급 사기범으로 해당 국가에서 상당한 이해관계와 재산을 가지고 있어 국내로의 송환이 어려운 실정이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경찰에 따르면 과거 도피범들은 주로 미국이나 캐나다로 잠적했지만 최근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의 여러 나라로 숨어 들어가 각국의 사법절차와 관행의 차이로 인해 도피범들의 소재조차 파악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폴과의 공조로 해외도피범을 강제소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4월에서 7월까지 서울 구로, 동작, 영등포구 일대에서 발생한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힌 대림동 중국동포 살인사건의 용의자 박아무개씨(36)를 검거한 것이 대표적이다.
탈북자 출신인 박씨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중국동포 김아무개씨(여·39)의 돈 1천5백만원을 가로챘으나 자신이 속은 걸 깨달은 김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김씨를 살해하고 중국으로 도주했다. 이에 경찰은 중국 공안과 공조수사를 펼쳐 지난 2월4일 박씨를 강제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8일에는 2003년 4월 자신의 집에서 내연관계의 여성 등 3명을 살해하고 태국으로 도주한 윤아무개씨(43)를 강제송환했다. 탈북자인 윤씨는 내연관계의 동거녀 박아무개씨(42)가 바람피운다며 다투다 박씨와 박씨의 동생과 애인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었다.
한편 경찰의 한 관계자는 인터폴과의 공조로 해외도피범 강제송환 사례가 꾸준히 증가해 강제송환이 처음 시작된 지난 90년부터 현재까지 강제송환된 숫자는 3백5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 관계자에 따르면 적색수배자를 포함해 인터폴과 공조수사중인 해외도피범은 약 9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