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달 25일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친구 정아무개씨(22·대학생)를 협박한 혐의로 이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지난 98년부터 패션모델과 CF모델로 활동한 베테랑 모델 출신인 이씨는 지난 2월부터는 드디어 MBC의 한 인기 시트콤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패션쇼 무대를 누비던 그가 연기자로 데뷔하자 방송가에서는 모델 출신 탤런트 겸 영화배우 차승원의 뒤를 잇는 스타가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정도로 이씨는 촉망받는 신인이었지만 한순간의 실수가 그를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트리고 말았다.
이씨는 지난 1월 서울 강남에 위치한 E나이트클럽에서 정씨를 처음 만났다. 이씨는 미모의 대학생인 정씨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끌렸다. 정씨도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 게다가 모델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씨에게 강한 호감을 느꼈다. 이후 연인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성관계까지 갖게 됐다.
그러나 처음 불꽃이 튀자마자 빨리 불붙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또 그만큼이나 빨리 식어갔다. 관계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음을 느낀 이씨는 정씨에 대해 왠지 미련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씨와의 뜨거운 시간들을 붙잡아 두고 싶었던 이씨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것은 정씨와 성관계 갖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두는 것이었다.
이씨는 지난 9월15일 비디오카메라를 미리 침실에 설치한 뒤 정씨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이씨는 가끔씩 강남 청담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정씨와 성관계를 갖곤 했기 때문에 이를 촬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씨의 집을 찾은 정씨는 방 한 구석에서 몰래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그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이씨는 이렇게 몰래 촬영한 낯 뜨거운 장면을 동영상으로 편집해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이렇게 저장된 동영상이 자칫 외부로 유출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신의 연예생활이 끝장나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이씨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연인이었던 정씨를 ‘저장’해 놓고 싶었던 이씨의 뜻과는 반대로 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러던 지난 10월 말 정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배신감에 젖어 분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정씨에게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후 정씨와 심하게 다툰 이씨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씨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둘의 성관계가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이었다. 정씨의 약점을 움켜쥐고 있다고 판단한 이씨는 이것을 무기로 정씨를 꼼짝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문자로 “양아치 돼줄게, 먼저 보여줘? 사과할 생각 있으면 전화해…”라는 내용을 보냈다. 이후 정씨에게서 연락이 없자 정씨의 알몸을 캡처한 사진과 동영상 일부를 이메일로 보냈다.
이를 확인한 정씨는 이씨가 더 큰일을 저지르기 전에 강력하게 대처하기로 결심하고 이 사실을 경찰에 즉각 신고했고, 이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곧바로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메일로 낯 뜨거운 동영상을 정씨에게 보낸 뒤 ‘내가 딴 짓 하기 전에 전화하라’, ‘전화 안 받을 거니. 받는 게 좋을 텐데’ 등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아홉 차례나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또 “혐의 사실을 인정한 것 이외에 다른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며 “추가적으로 다른 사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씨의 집과 컴퓨터를 살펴보았지만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연예관계자는 이씨의 입건사실을 접하고 “요즘 연예가에 바람 잘 날이 없어 걱정이다. 11월과 12월은 이상하게 연예계에 사건이 많이 터진다”고 전한 뒤 “이씨는 성격도 온순하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이해가 안간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I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인 이씨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모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빌 게이츠를 꿈꾸던 모범생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고 정상을 향해 노력했으나, 한 여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잘못된 판단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윤지환 프리랜서 tangohu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