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그는 아직 단 한편의 영화도 찍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시나리오 초고만 완성되었을 뿐인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장 씨는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언변, 그리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로 여성들의 몸과 마음을 뒤흔든 후 마음껏 능욕했다.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허망하게 끝난 장 씨의 ‘혼빙 간음 로드무비’를 집중 취재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세 명의 여자를 따로 만나고 다니면서 그들 각자와 결혼을 약속했던 장 씨에게 정작 진짜 동거녀는 따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각각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그리고 30대 중반의 세 여자는 모두 장 씨의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 반해 진심으로 장 씨를 사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자신을 ‘감독’으로 포장하기 급급했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여성들과의 잠자리였을 뿐이었다. 2000년 초반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던 직장인 여성과 동거를 하고 있었던 장 씨는 당시 영화계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정식으로 감독 수업을 받았거나 영화와 관련된 정규 대학의 학과를 졸업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영화 한편을 찍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마련. 장 씨 역시 영화계에서 그런 일을 하는 연출부 스태프에 불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르바이트로 전전했던 그는 군대를 다녀와서부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는 2000년을 전후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일반인들에게 호감을 얻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는 ‘대박’이라는 이름이 넘쳐났지만 정작 자신이 일 년 동안 버는 돈은 수백만 원에 불과했고 대중들의 인기와 환호도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계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어지면서 영화 제작의 시스템을 대충 파악하게 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감독을 욕심냈다. 그는 자신의 첫 작품으로 부처의 심오한 해탈 과정을 다뤄보리란 결심도 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영화감독을 미끼로 여성들을 농락했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인 셈이다.
장 씨는 영화 관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자연히 영화계 주변의 많은 여성들도 접하게 됐다. 영화를 준비 중인 감독이라는 자신의 소개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서슴없이 호감을 드러냈다. 오랜 영화 연출부 생활로 익힌 영화계 주변 지식들은 장 씨를 전도유망한 신인 영화감독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장 씨는 여성들에게 영화로 접근했고 이에 혹한 여성들과 잠자리도 어렵지 않게 가지게 됐다. 처음부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됨을 느낀 장 씨는 점점 대담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그가 애초부터 ‘혼인빙자를 통한 성관계’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여성과의 잠자리 횟수가 길어지자 임시방편으로 ‘결혼하자’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기 시작했다. 실제 그는 다른 여성들을 유혹하는 과정에서 “너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삼천배를 했다. 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뒤에 결혼하자”고 꾄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장 씨는 180cm의 큰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언변 역시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그의 범죄 행각에는 ‘영화 제작비’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수차례 돈을 빌리는 일도 포함됐다. 현재 검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액수 자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여성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지갑까지 열게 했던 장 씨였지만 그 비밀스러운 행각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휴대폰을 통해 의심스러운 문자가 오고 자신 이외의 다른 여성과 통화가 잦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한 여성이 휴대폰에 남겨진 낯선 번호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던 것. 결국 3명의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급기야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피해를 토로하기 시작하면서 장 씨의 행각은 그 전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 명의 여성들은 각기 ‘장 씨로부터 결혼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한꺼번에 장 씨를 혼빙 간음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지난 21일 검찰에 불구속됐다.
장 씨에 대한 배신감을 곱씹고 있던 세 여성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그가 이미 한 여성과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현재 확인된 것만 네 명의 여성일 뿐 추가 피해 여성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한편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장 씨의 행각에 대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세 편의 단편영화를 찍은 후 최근 장편영화 입봉을 준비 중인 김 아무개 감독은 “사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한 대만 있어도 스스로를 ‘감독’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런 사람에게도 배우의 꿈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장 씨 사건과 같은 부작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에게 ‘해탈’의 의미를 전해주고 싶었다는 영화감독 지망생 장 씨. 하지만 정작 그는 세속의 욕망에 사로잡혀 결국 혼인빙자간음이라는 멍에를 쓰게 됐다.
이남훈 프리랜서 freehoo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