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MB의 비용>은 360쪽의 분량 중 100쪽을 할애해 자원외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 것”이라고 평했다. 책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 사업으로 MB 정부 5년간 늘어난 자원 3사(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공사)의 부채는 42조 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6월 기준, 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 석유공사가 14조 2000억 원, 가스공사가 24조 6000억 원, 광물공사가 3조 2000억 원이나 증가했다.
남겨진 빚 외에 실제 손실액은 얼마나 될까. 책에서는 ‘MB표 자원외교’를 대표하는 6개 사업에서만 최대 10조 원의 손해를 입을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가장 손실이 큰 투자는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 건으로 최소 3조 7452억 원의 손해가 났다. 하베스트 에너지를 인수하면서 정유시설인 ‘날(NARL)’까지 떠안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석유공사가 날에 투자한 자금은 약 2조 900억 원, 지난해 매각 금액은 단돈(?) 338억 원이다. 여기서만 2조 562억 원 손해를 입었고, 매각 과정에서 석유공사는 약 1조 6891억 원에 달하는 대여금까지 포기한 사실도 알려졌다. 모두 합하면 3조 7452억 원이다.
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에너지 인수는 자원외교의 적나라한 ‘민낯’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인수과정부터 졸속으로 진행됐고, 정권 차원의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2009년 석유공사는 생산광구만을 인수할 목적으로 하베스트와 협상을 개시했다. 최초 인수 제안 가격은 24억 캐나다달러(약 2조 6855억 원), 이후 28억 5000만 달러(3조 1890억 원)로 올렸으나 하베스트 측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석유공사는 인수 가격을 갑자기 4조 5500억 원으로 올리며 정유시설 날까지 동반 인수하겠다고 제안한다. 투자자문회사 메릴린치에서 낸 경제성 평가 보고서가 결정적이었다. 보고서를 받은 당일 김성훈 석유공사 부사장은 하베스트 측과 만나 전격 합의했다. 보고서를 읽을 시간은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메릴린치 한국지점에는 ‘MB 집사’로 불린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아들 김형찬 씨가 상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합의한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이계 회동을 위해 나서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다음은 최대 2조 원의 손실이 예상되는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을 따냈다고 홍보했다. 정부는 ‘패키지형 자원개발 사업의 첫 결실’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치켜세웠다.
이라크 쿠르드 유전은 이후 탐사과정에서 3639억 원을 투입해 4개 광구를 시추했지만 상업적으로 유효한 유전은 단 한 곳도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석유공사는 전체 기대매장량을 72억 배럴로 발표했지만 감사원은 3억 3300만 배럴에 불과하다고 정정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는 계약 변경에 따른 위약금으로 1조 2248억 원을 지급한 상태다. 이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지 못할 경우 유전 개발에 따른 손실은 최대 2조 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
이 외에도 <MB의 비용>은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1조 3863억 원 △캐나다 셰일가스 사업 1조 1403억 원 △ 호주 GLNG 프로젝트 8322억 원 △사비아페루 인수 6569억 원의 손해를 입을 것으로 분석했다.
<MB의 비용>에서 자원외교 부분을 집필한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자원외교라는 미명하에 마구잡이식 투자를 일삼아 수십조 원의 빚을 지게 된 사건”이라고 명명하며 “진행 중인 사업이 많아 손해 규모를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힘들다. 다만 많은 사업이 지금도 손해가 나고 있다. 이익이 나는 경우도 더러 있으나 규모가 큰 사업일수록 손해 규모도 커 장기적으로 손실액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은 자원외교를 옹호하는 등 자화자찬 일색으로 비난을 받았다. 구윤성 기자
이런 천문학적 ‘묻지마 투자’가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자주개발률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등장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당시 5% 수준이던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내 18%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시 에너지 공기업들은 묻지마 식 지분투자를 감행했고, 그 결과 2012년 자주개발률이 13.8%로 크게 올랐다고 상찬했다.
실제는 어떨까. 자주개발이란 국내로 수입되는 해외 자원 물량 가운데 우리 기업이 개발해 도입한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여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국내 실질적인 자주개발률은 석유공사가 0.6%, 광물공사는 10.6%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자주개발률을 ‘자원개발률’로 이름을 바꾸고 경영평가 항목에서 제외했다.
지난 3일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기관보고를 위한 증인을 현직 기관장으로 한정하기로 의결했다. 기관보고는 11~13일, 23~24일, 두 차례 실시하고, 자원 3사 청문회는 기관별로 1일씩 실시하되 그 외 일정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기관보고에 지난 정권이 아닌 현 정권 기관장이 참여하면서 벌써부터 김이 샌다.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 100일 가운데 벌써 3분의 1이 지났지만 시작부터 여당의 높은 벽에 가로막힌 채 야당은 끌려가는 모양새다.
고기영 교수는 “자원외교 국정조사는 MB 정부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해 조사하는 것인데 전직 기관장이 아닌 현직 기관장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며 “자원 3사가 개발의 중심이었지만 더 높은 지휘계통에 있었던 지식경제부(산업통상자원부), 국무총리실, 그리고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조사하지 못한다면 그 실상을 제대로 살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