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보좌관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발설해서는 안 될 만큼 민감하지만 이니셜을 만들면서까지 ‘뒷담화’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인 셈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국회의원의 배우자는 각종 선거 유세와 지역 행사 등에 참여하며 국회의원의 빈자리를 대신해 왔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 배우자는 마음먹기에 따라 국회의원 못지않은 활동이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친박계 중진인 A 의원의 부인 B 씨는 남편을 여러 번 당선시킨 공신이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남다른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A 의원이 각종 주요 직책을 맡을 때마다 B 씨는 지역 조직을 관리하며 남편 못지않은 역할을 했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 때도 B 씨는 여의도 곳곳에서 조용히 친박계 조직을 관리하며 A 의원을 도왔다. 한 친박계 조직책은 “전당대회에서 A 의원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사모로부터 들었다. A 의원 가족 행사에도 사모가 초대했다. A 의원보다 사모가 조직을 관리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부인의 역할이 정치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공천헌금 등의 로비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유승우 의원(현 무소속)의 부인 최 아무개 씨는 지난해 새누리당 경기도 이천시장 후보 공천을 앞두고 이천시 장호원읍 한 스포츠센터 주차장 자신의 차량 안에서 박 아무개 씨로부터 공천 청탁과 함께 1억 원이 든 가방을 받은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유 의원은 부인의 공천헌금 건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새누리당에서 제명됐다.
국회의원 부인과 관련된 비화들은 공식적인 활동이나 사건으로 드러나지 않고 의원실 안에서 ‘말 못할’ 속앓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때문에 보좌진들 사이에서 의원 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은밀히 주고받는 비밀이 됐다. 앞서의 보좌관도 “여성 국회의원의 경우 남편이 와서 본인이 의원인 것처럼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보좌진들에 피해가 가기 때문에 현역 의원들에 대해 말해주는 보좌진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9명의 보좌진을 두고 4년간 의정활동을 한다. 직원 채용과정부터 업무 진행까지 모두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로 정해지기에 국회의원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배우자는 실세로 인식되기도 한다. 보좌진들이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나치게 꼼꼼하거나 ‘오지랖’이 넓은 부인들은 의원실 업무에 직접 관여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져 인사에 불이익을 받거나 보좌진이 사표를 던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의원 부인이 ‘집안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 부인들의 갑질 행태는 전직 의원들 사례에서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제17, 18대 야당 국회의원의 부인은 집안일을 주로 보좌진들에게 시켰다고 한다. 해당 의원실 출신 보좌관의 ‘증언’이다.
“사모가 개인적인 일을 보좌진들에게 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났을 때도 불러 고쳐달라고 했다. 자녀의 학원 데려다주는 것도 내 몫이었고 의원이 쉬거나 해외출장을 갔을 때 차를 사용하지 않으니 개인 업무를 위해 자신을 태워다 달라는 경우도 많았다. 그 집 변기를 뚫었던 적도 있고 겨울에 수도꼭지가 얼어 녹이러 간 적도 있었다. 집이 이사를 갈 때 가서 돕기도 했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이것저것 다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어 그는 “지금 보좌진들이 사모까지 포함해 국회의원을 두 명 모시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은 맞다. 사모들이 의원실 살림에 대해 한소리 하거나 정책 방향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본인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의원에게 말해서 보좌진에게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사모도 선거활동에 참여하고 지역 일정 등을 맡기 때문에 준정치인으로, 본인이 보좌진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19대에는 이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의원실마다 사모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갑질 여부는 그분들의 성격에 달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국회의원 부인들의 갑질 문제는 채용과 관련이 있기에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묵인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는 “전부터 국회의원 부인들의 갑질 행태는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말 한마디에 잘리는 보좌진들은 그런 일을 본인이 감내해야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오너의 갑질을 감내해야 하는 재벌가 회사원들의 사정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