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은 140km 중반 정도의 직구를 던지던 투수였지만, 2005년 10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은 뒤 150㎞가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렸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수술 과정은
인간의 팔꿈치 인대가 버틸 수 있는 장력(줄에 걸리는 힘의 크기)은 보통 260N(‘N’은 힘의 단위로 1N은 약 0.1㎏중에 해당)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투수가 시속 150㎞짜리 공을 던지게 되면 290N으로 가중된 힘이 실린다. 계속해서 강속구를 던질 경우 인대가 너덜너덜해지고 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팔꿈치 인대가 손상되면, 공을 던질 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일명 ‘데드암’ 증상이 나타난다. 토미 존 서저리가 생기기 전에는 수많은 투수들이 데드암 증상으로 은퇴를 해야 했다. 전설적인 투수 샌디 쿠팩스도 이 증상 때문에 유니폼을 벗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결국 공을 던지지 않는 부위의 힘줄을 끊어다가 새 인대에 이어 붙여주는 수술이 필요해졌다. 손상된 인대에 건강한 인대를 이어 붙여 새로운 팔로 탄생시키겠다는 원리다. 최초로 수술을 받았던 토미 존은 반대쪽 팔꿈치의 힘줄을 떼어냈지만, 요즘 선수들은 반대쪽 손목을 구부리는 근육을 주로 이용한다. 이 근육이 충분하지 않은 선수는 허벅지 안쪽이나 발바닥 힘줄을 이용하기도 한다.
수술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 팔꿈치 위쪽과 아래쪽 뼈에 각각 두 개씩 구멍을 뚫은 뒤 미리 채취해둔 다른 부위의 힘줄을 8자 모양으로 끼우면 끝이다. 이식된 힘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대처럼 변해 다시 팔꿈치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재활은 자신과의 싸움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투수 류현진(왼쪽)과 오승환은 학창 시절에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다.
물론 회복과 재활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팔꿈치의 상태와 수술 경과, 재활 과정,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수술의 결과도 판이하게 달라진다. A 구단 트레이닝 코치는 “수술 전처럼 100%에 가까운 컨디션을 되찾으려면 대개 1년 6개월 정도는 재활해야 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며 “최근에는 재활 프로그램들이 갈수록 좋아져서 1년까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장기적으로 더 완벽한 결과를 얻으려면 복귀를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수술은 최후의 수단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으면, 새로운 인대의 장력이 357N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인대에 싱싱한 콜라겐이 생기면서 팔 근육에 더 탄력 있게 힘을 실어준다는 것이다. 투수들 사이에 ‘구속이 빨라지는 수술’로도 유명한 이유다. 실제로 많은 투수들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3년 정도 지나면 대체로 직구 구속이 시속 5㎞에서 10㎞까지 빨라지는 효과를 봤다. 삼성 임창용이 좋은 예다. 임창용은 원래 140㎞ 중반 정도의 직구를 던지던 투수였지만, 2005년 10월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재활을 마친 뒤 구속이 더 빨라졌다. 일본 야쿠르트 시절 연일 150㎞를 훌쩍 넘는 강속구를 뿌렸고, 한때는 160㎞에 육박하는 구속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두가 구속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삼성 배영수는 2007년 1월 토미존 서저리를 받은 뒤 한동안 구속이 올라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최근에는 140㎞대 중반까지 구속을 회복했지만, 이전처럼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는 아직 찾지 못했다. KIA 서재응도 미국 진출 이후인 1999년 5월 수술을 받은 뒤 오히려 구속이 10㎞ 가까이 떨어졌다. 컨트롤 피처로 변모하게 된 계기였다. 현대 조용준은 2005년 수술을 받은 뒤 단 한 차례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채 은퇴하기도 했다.
#재활에 수술 성패 달려
결국 수술 그 자체가 아닌 수술 이후의 재활 프로그램이 구속 증가 여부를 결정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박사는 “인대를 갈아 끼운다고 해서 공이 빨라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선수들은 약 1년 정도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재활 기간 동안 팀에서 훈련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근력 운동에 전념한다. 그 결과 근육량이 많이 늘어나 구속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임창용 역시 한창 강속구로 화제를 모으던 당시 “토미 존 서저리 덕분에 구속이 늘어난 것은 아닐 것”이라며 “팔꿈치만 집중적으로 재활한 게 아니라 어깨까지 전체적으로 근육 강화를 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몸이 좋아진 것이 더 큰 이유”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의 A 트레이닝 코치의 의견도 같다. “인대접합수술 후 구속이 늘어나는 것은 투수들이 팔꿈치 통증에서 벗어나 최상의 투구 매커니즘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번 난 상처가 쉽게 회복될 리 없다. 명투수이자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김시진 전 롯데 감독은 “토미 존 수술 후 80% 정도의 상태까지는 누구나 회복할 수 있다. 나머지 20%를 끌어 올리느냐 못 끌어 올리느냐에 따라 수술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모든 선수들이 입을 모아 “수술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는 재활. 그야말로 뼈를 깎는 듯한 그 고통의 시간을 무사히 이겨내야 비로소 완벽한 팔꿈치를 되돌려 받을 수 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토미존 수술’ 창시자 조브 박사는? “야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 수술” LA 다저스 류현진과 한신 오승환. 이들은 각각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나란히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선발투수와 마무리투수로 우뚝 섰다. 만약 프랭크 조브 박사가 없었더라면?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위용을 떨치기는커녕, 프로야구에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조용히 유니폼을 벗었어야 했을 것이다. 조브 박사와 토미 존. 이후 수많은 투수가 이 수술의 수혜자가 됐다. 2013년에는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의 30%에 달하는 124명이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명투수 출신인 해설가 오렐 허샤이저가 “조브 박사는 야구 역사상 그 누구보다 많은 승리와 세이브를 거뒀다”고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다. 조브 박사는 팔꿈치뿐만 아니라 어깨 수술의 권위자이기도 했다. 허샤이저가 바로 1990년 조브 박사에게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선수 생활을 10년 더 연장한 인물이다. 조브 박사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3월 산타 모니카의 자택에서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시간 조브 박사와 함께 했던 다저스는 사망 다음 날 텍사스와의 시범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선수 전원이 추모의 묵념을 했다. 다저스 돈 매팅리 감독은 “조브 박사 덕분에 탄생한 토미존 서저리는 야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수술 중 하나다. 이전에는 젊은 유망주들이 팔꿈치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12개월이면 자신감을 갖고 다시 복귀하게 된다”며 조브 박사의 업적을 높이 샀다. 이뿐만 아니다. 다저스는 스포츠 의학에 큰 공적을 남기고 다저스에 헌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저스타디움 내 트레이닝룸에 조브 박사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조브 박사와 토미 존의 사진, 그리고 존의 기념비적인 첫 엑스레이 사진도 그 옆에 걸렸다. [은] |
‘재수술’ 받는 선수도 있다 의지의 권오준 재활 ‘삼세판’ 삼성 투수 권오준(35)의 팔꿈치에는 수술 자국만 세 개가 있다. 셋 다 토미존 서저리의 흔적이다. 같은 부위에 같은 수술만 세 번. 보통 선수라면 진작 포기하고도 남았을 고통이다. 그러나 권오준은 세 차례 수술대에 오르는 길을 택했다. 선수 생명을 건 도전이었다. 토미 존 수술을 세 번 받은 권오준.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권오준은 또 한 번의 힘겨운 재활을 거쳐 다시 마운드에 섰다. 구속도 140km대 중반까지 회복했다. 삼성 승리방정식의 한 축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2012년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다가 또 팔꿈치에 통증이 느껴졌다. 국내 병원에서 찍은 MRI(자기공명영상) 필름을 프랭크 조브 박사팀에 보내자 “인대가 60% 정도 손상됐지만,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신이 왔다. 문제는 그 후에도 통증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120일 넘게 재활했는데도 차도가 없자 그는 끝내 또 한번의 수술을 결정했다. 만류하던 삼성은 결국 임창용이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던 일본의 게이유 정형외과를 찾아줬고, 담당의사인 이토 요시아스 박사는 수술을 권했다. 결국 2013년 1월에 세 번째 수술대에 올랐다. 첫 수술 때는 오른쪽 손목의 인대를 떼어 오른쪽 팔꿈치에 이식했다. 두 번째에는 왼쪽 손목의 인대를 떼서 심었다. 더 이상 팔에는 떼어낼 인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오른쪽 다리의 오금 쪽 인대를 잘라내 팔꿈치에 붙였다. 권오준은 당시 “내가 토미존 수술을 세 번 하고도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꼭 성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 세 번째 재활을 무사히 마치고 오키나와에서 스프링캠프에 한창이다. 올해 다시 마운드에 서서 진정한 투지를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