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 박지원 당대표 후보가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 연설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우리 캠프의 예상은 3~7% 차이의 문재인 의원 승리였다. 예상 범위의 접전이라지만, 솔직히 박지원 의원이 이 정도로 선전할지는 몰랐다. 다만 승부처였던 권리당원 투표에서 박 의원이 문재인 후보를 압도한 것은 결국 호남 텃밭 표가 절대적이었다고 본다. 박 의원이 자기 텃밭을 참 열심히 누비고 다니셨나 보다.”
지난 2월 8일 새정치연합 전당대회 직후 현장에서 만난 문재인 캠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결국 박지원 의원의 선전을 두고 오로지 호남 텃밭의 권리당원 동원 덕으로 여겼다. 일리가 없는 분석은 아니지만, 내심 결과적으로 선전한 박지원 의원을 폄하하는 뉘앙스가 강했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야당의 성지로 통하는 호남에서 박지원 의원이 맹주 노릇을 아주 제대로 했다는 얘기가 된다. 더불어 친노진영과 문재인 의원에 대한 호남지역의 불편한 감정이 이번 기회에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는 호남의 상황을 놓고 볼 때,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지속적으로 문재인 지도부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 박지원 의원 측과 가까운 한 비노진영 인사는 이번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 앙금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당대회에 앞서 여론조사 보기 합산 여부와 관련해 논란이 제기됐을 당시, 우리가 예상한 3% 손해 값과 실제 득표율 차인 3.52%는 무척 근접한 수치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 측이 만약 기존의 룰대로 우리 손을 들어줬다면, 정말 뒤집을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다.”
이를 의식한 듯, 문재인 대표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당직자 인선에 비노 인사를 적극 등용했다. 9일 윤곽을 드러낸 1차 인선 결과 당대표 비서실장에는 ‘86계열(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의 김현미 의원이, 대변인에는 김근태(GT)계의 유은혜 의원이 등용됐다. 11일에 있었던 2차 인선에서는 정세균계의 강기정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손학규계와 가까운 양승조 의원이 사무총장에, 박지원계 김영록 의원이 수석대변인으로 임명됐다.
전당대회 이후 가장 주목을 모았던 지명직 최고위원으로는 지난 12일 계파색이 옅은 추미애 의원과 노동계를 대표하는 이용득 전 최고위원이 다시금 지명됐다. 한때 비노진영의 유력한 당대표 후보였던 추 의원은 전당대회 후보등록일 하루 전까지 고민 끝에 결국 ‘수’를 접었지만, 3년 만에 다시 당 지도부로 복귀했다.
이번 전당대회의 최고위원 후보로 나섰던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 역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적 구성을 놓고 볼 때, 계파청산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당직 인선은 나름 합격점을 줄 만하다”고 호평했다. 문 의원은 12일 오후 2시 여의도에서 분패한 박지원 의원과 회동하며 최대한 몸을 낮추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앞서의 비노진영 인사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노영민, 윤호중, 전해철 의원 등 문재인 대표와 가까운 친노 핵심 세력이 일단 후방으로 빠졌다. 하지만 어차피 현 지도부는 단일성 지도체제 아닌가. 후방으로 빠진 친노 핵심 세력이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여전하다. 현재 탕평이라 일컬어지는 당직 인선과 최고위원회 구성과 별개로 현 제도라면 충분히 친노 핵심 세력의 후방 지원이 가능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내년 총선 이전 공천 룰 논의 시점이 문제다.”
박우섭 구청장 역시 이러한 문제를 의식한 듯, “애초부터 집단지도체제를 고민했어야 한다”라며 “현재의 단일성 지도체제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 정치평론가는 당내 계파 구도를 둘러싼 ‘허니문 기간’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는 인물로 분패한 박지원 의원을 지목했다.
“총선이 임박할수록 호남이 들썩일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아직 안 왔을 뿐이다. 지난 전당대회 직전 여론조사를 두고 벌어진 논란 속에서도 결국 문재인 대표의 ‘양보’는 없었다. 낙선한 박지원 의원이 얻은 것이 있다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호남을 포함해 비노를 아우르는 구심점으로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한물 간 정치인으로 여겨졌던 노구의 박 의원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비주류의 대표 격으로 완주를 했다는 점, 거기에다 문 대표와 거의 범접한 결과를 냈다는 점은 그를 재평가하게 된 셈이다.”
이 평론가는 또 다른 비노 주자들과의 화학작용에 주목했다. 그는 “그동안 친노진영과 비교해 비노진영은 마땅한 구심점이 없었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나름의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라며 “여기에 박지원 의원과 칩거 중인 손학규, 대구의 김부겸, 대권후보 안철수 등 다른 비노 주자들과의 화학작용이 이뤄진다면, 총선을 앞두고 지형 구도를 흔들 수도 있다. 물론 이를 엮어가는 것은 백전노장 박 의원의 몫이다. 잘만 엮는다면, 훗날 반드시 전개될 힘겨루기에서 만만찮은 힘을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