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
‘올해로 결혼 9년차를 맞이하는 30대 후반의 주부 김 아무개 씨는 돌아오는 설 연휴는 시댁이나 친정이 아닌 강남의 한 성형외과의원에서 보낼 예정이다. ‘직장맘’으로 일하랴, 애 키우랴 바쁘게 지내다보니 점점 깊어가는 입가의 팔자주름이 거슬렸어도 시술받을 엄두도 못 냈다. 올해 설 연휴는 주말까지 합해 무려 5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김 아무개 씨는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위 이야기는 강남의 대형성형외과 및 피부과 측의 도움말을 토대로 재구성해본 가상의 사례다. 최근 들어 명절 연휴를 활용해 미용시술을 받는 ‘간 큰 며느리’의 사례가 상당히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로 30대 중후반에서 40대의 기혼여성들이다. 이들은 연휴 전에 양가 부모님 댁을 미리 방문해 양해를 구하고 명절 연휴에 시술을 받는 ‘솔직한 며느리’와 “아이 학원 때문에 못 찾아뵐 것 같다”고 시부모에게 핑계를 대고 몰래 시술받는 ‘여우같은 며느리’로 나뉜다. 세진성형외과의원 관계자는 “연휴에 시술받기 원하는 기혼여성들이 많아 적어도 한 달 전에는 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시어머니의 ‘여심’을 공략하는 경우도 있다. 며느리 혼자만 성형시술을 받는 것이 눈치 보이기 때문에 미리 점수도 딸 겸 시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는 형이다. 서울의 한 피부과병원 관계자는 “명절 연휴 전후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이 시술을 받으러 오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며 “정말로 사이가 좋아 보이는 고부간도 있지만 시어머니랑 한 집에 같이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며느리가 같이 모시고 오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시대와 풍속이 크게 바뀌었어도 ‘명절’과 ‘시댁’은 신세대 며느리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주제다. 지난 추석에 방송에 소개된 ‘가짜 깁스’며 바르기만 하면 병자의 얼굴로 변신하는 ‘연출용 립스틱’이 이슈가 된 사례는 며느리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실제로 기자가 몇 군데의 ‘가짜 깁스’ 제작 업체와 인터뷰한 바로는 이번 설을 맞아 실제 판매가 급증하는 일은 없었다. 주부들이 가입한 대형 커뮤니티에서도 그런 소품들을 진짜로 사용한 후기는 찾기 어려웠다. 그들은 “방송에 이미 나온 가짜 깁스를 누가 착용하겠나”는 의견을 밝혔다.
설 연휴가 다가올수록 인터넷에는 신세대 며느리들이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 방법’을 묻고 답하는 글들로 넘쳐난다. 특히 임산부가 시댁을 방문해야 하는지를 묻는 글에는 ‘절대 안 된다’는 선배 며느리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남편이랑 말을 맞춰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시댁에 전하게 하라”는 내용부터 “‘절박유산(임신 20주 이전 질출혈이 동반되는 경우. 유산은 아니나 절대 안정 필요)’이라고 핑계대면 100퍼센트다”라고 구체적인 팁을 알려주는 댓글도 있다.
한편 최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는 ‘신중년’ 세대의 ‘황혼재혼’도 명절 신풍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김숙기 원장에 따르면 시아버님의 재혼으로 ‘새로운 시어머니’가 생기는 신세대 며느리의 사례가 최근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경우 며느리 입장에서는 별로 눈치 보지 않고 ‘할 도리만 한다’는 식으로 명절을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재산을 가진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후반의 이 아무개 씨는 최근 본인의 나이보다도 어린 중국인 시어머니가 생겼다. 시아버지가 30살 연하의 중국인 여자와 ‘황혼재혼’을 감행한 것이다. 재산가인 시아버지는 공공연히 ‘자신에게 잘하는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들 역시 꼼짝 못하고 어린 외국인 시어머니에게 잘 보여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 들어온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와의 갈등 사례는 또 있다. 갓 두 돌 된 아들을 둔 며느리 박 아무개 씨는 새로 들어온 시어머니를 명절에 만날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다. 시어머니가 자신이 재혼하며 데리고 들어온 친아들이 시아버지의 재산을 더 많이 상속받을 수 있도록 꼼수를 쓰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재산 상속 안 받을 테니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가정상담문제 전문가들은 “결국 경제력에 따라 권력 관계가 달라지는 씁쓸한 현실이 고부간에도 반영된 것”이라며 “새로운 시어머니가 되는 입장에서도 본인이나 남편이 경제력이 없으면 오히려 신세대 며느리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정지혜 인턴기자
‘명절 평화’ 위한 3가지 일심동체 작전 짜세요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사실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일요신문과 인터뷰한 가정문제상담 전문가들도 명절 후 상담자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전했다. 부부싸움 없는 ‘평화로운 설날’을 위한 방법을 전문가들과 짚어봤다. 서로 합의하에 명절 계획을 짜고 실행하기만 해도 불만지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중요한 것은 정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2. 상대방 부모님 앞에서는 배우자에게 일시키지 마라.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의 김숙기 소장은 “시댁에서는 며느리가, 친정에서는 남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양가 부모님은 ‘내 자식이 참 좋은 배우자를 만났구나’ 하며 안심하게 된다”고 조언했다. 3. 부모님 집을 나오자마자 서로에게 “고맙다”고 말해라. 많은 가정문제전문가들은 배우자의 노력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것’으로 바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명절 부부싸움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