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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희룡 의원(왼쪽),정형근 의원 | ||
지난 8일 당 상임위에서 같은 당 정형근 의원으로부터 ‘쓴소리’를 들은 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은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측근 관계자는 “의원님이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와 웃으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 전했다.
정 의원을 ‘열받게’ 했던 사건은 지난 4일 당 상임운영위 비공개회의에서 발생했다. 이 회의에서 원 의원이 ‘남북관계기본법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던 중 자신의 발언을 제지하던 김형오 사무총장에게 ‘총장 입 다무세요’라며 언성을 높였던 것. 이 발언과 관련 원 의원은 지난 8일 같은 회의석상에서 “지난 회의에서 동료 의원을 옹호하다가, 인격적으로 불편을 느끼게 한 발언을 한 데 대해 (김 총장님께) 공개적으로 정중히 사과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도 악수와 웃음으로 사과를 받아들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원 의원은 “총장과는 충분히 화해를 했고 앙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원 의원의 사과가 끝난 이후 중앙위 의장 자격으로 상임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정 의원이 “그날 원 의원이 술 냄새를 내면서 한 일이 하도 황당해서 (회의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술 먹고 미친 사람처럼 얘기해 놓고서, 오늘 회의에서 벽두부터 논의할 가치없는 것을 장황히 얘기하면서 중요한 시간을 쓰고 있다”고 원 의원을 비난하고 나온 것이다.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의 중재로 분위기는 가까스로 수습됐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이미 깊어진 감정의 골은 감춰질 수 없었다.
이날 정 의원은 회의장을 떠나면서도 기자들에게 “중진들이 조만간 있을 의총에서 소장파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일 한나라당 영남권 중진 의원들은 전국 시도당 위원장들과 함께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여서 ‘당 정체성을 흔든다’는 이유로 ‘원 의원의 출당 건의’를 김 총장을 통해 박 대표에게 공식 전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원 의원이 당내에서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출당 건의’의 이유였다. 특히 지난 4일 원 의원이 김 총장에게 한 ‘불경스러운 발언’은 가뜩이나 원 의원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중진 의원들에게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이 과정을 주도하고 나선 사람이 정 의원이었다.
2박3일 일정으로 중국출장을 다녀온 12일 원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본인에 대한 당내의 ‘출당 논란’에 대해 “그런 일이 있었나. 몰랐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 의원은 정 의원과의 갈등에 대해선 “정 의원의 비판은 애초에 비판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정 의원은) 과거에 얽매여 있고 과거로 가는 정치를 하고 있다. 그래선 안 된다. (정 의원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다만 당을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치를 올바로 만들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싸울 일이 있으면 앞으로도 싸우겠다”며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원 의원과 정 의원이 갈등을 빚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6대 국회에서 처음 ‘한솥밥’을 먹기 시작한 이후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혀 왔다. 서로에게 “당을 떠나라”는 식의 격한 비난을 퍼부은 것만도 3~4차례에 이를 정도.
특히 지난 9월 그동안 ‘야인생활’을 하다시피한 정 의원이 당 중앙위 의장 경선에서 1위를 차지, 중앙당 간부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두 사람간의 갈등은 이미 예견됐었다. 당내 최고 의결기구인 상임운영위에 나란히 앉은 이후 두 사람은 주요 정책에 대해 수시로 마찰을 빚어왔다.
이 두 의원의 대립은 개인적인 감정차원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 개혁파 대 보수파의 정서와 갈등의 축소판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당 관계자는 “원 의원이 현재 당내 서열 2위의 최고위원이고 소장파들의 대표격인데 반해 정 의원은 당내 영남권 중진의 대표격인데서 오는 상징적인 갈등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두 의원간의 갈등과 대립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
두 의원이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단이 된 것은 원 의원의 ‘(당내) 60세 이상 용퇴론’ 발언이었다. 당시 정 의원 등 영남권 중진 의원들은 “사실상 고려장이다”며 원 의원에 대한 출당을 요구한 바 있다.
17대 총선 전인 지난 2월에도 원 의원을 비롯한 당내 소장파 그룹은 “이제 우리가 대여투쟁의 선봉에 서겠다”며 정 의원을 포함한 ‘저격수’들의 퇴장을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정 의원 등 영남권 중진의원들은 ‘한나라당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결성, ‘최병렬 대표 퇴진’을 요구한 소장파들을 상대로 “수도권 소장파가 당을 접수하는 상황은 지켜볼 수 없다”며 “신당을 하려면 탈당해서 하라”고 비판하는 등 소장파 의원들과의 ‘일전불사’를 선언하기도 했었다.
지난 17대 총선과정에서도 원 의원은 당 공천과 관련 “쌀이 아무리 많아도 돌이 두 개만 들어 있으면 돌밥”이라며 공개적으로 정 의원 등 당 중진들의 공천 배제를 주장했었다.
최근 한나라당 내 개혁 대 보수 그룹의 대결이 본격화되면서 양 진영은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소장파 의원들의 대표모임인 ‘수요모임’의 경우 거의 매일 ‘긴급회의’를 열며 대응책을 모색할 정도다. ‘수요모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최근 수요모임 내 분위기가 아주 고조되고 있다.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다. 영남권 중진들이 더 목소리를 높여주길 바라는 눈치다. 그래야 분명한 명분이 선다. 모임 소속 의원들이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것 같다. 현재 20명 정도 되기 때문에 조직으로 붙어도 승산이 있다. 당내 서열 2위인 원 의원이 앞장서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반면 보수파 중진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힘을 빌리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국보법 폐지 논란과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비하 파문으로 당 지도부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한나라당은 전체적으로 당내 소장파들의 목소리가 잦아든 반면 영남권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당내 보수파 의원들은 한껏 기세를 올리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와 관련, 소장파의 간판격인 원 의원은 “당 지도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이 당을 살리는 길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특히 박근혜 대표의 최근 행보를 보면 많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정치현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보수일변도로 흐르는 당 분위기에 맞서는 뚝심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