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최근 이전한 서울 가회동 공관. 가회동은 조선시대 때부터 고관대작들이 몰려 살았던 곳으로 정치인들에게 최고의 명당으로 손꼽히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16일 오전 11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기자는 새로 이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관을 찾았다. 대문을 둘러싸고 2m가량의 콘크리트 벽과 곳곳에 위치한 CCTV가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었다. 아직 인터넷 설치가 끝나지 않은 듯, 인터넷 정비 직원이 공관 옆 전봇대에 올라가 작업을 서두르고 있었다. 몇몇 서울시청 공무원들도 공관을 오가며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 오셨어요?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살짝 열린 공관 대문 틈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자 경비 직원이 다가와 제지했다. 공관 방호견인 진돗개 ‘대박이’가 컹컹 거리며 짖어댔다. 문 틈 사이로 본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관은 한옥과 양옥의 조화가 이뤄진 고급스러운 외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공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었는데, 공관 내부는 아직 정리가 다 되지 않은 듯 불이 켜진 상태에서 창문이 모두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경비 직원은 “이사를 이미 완료했고 내부 정리는 거의 다 된 상태”라고 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일 이곳 새로운 공관으로 이사를 했다. 이전 공관인 은평 뉴타운 아파트의 전세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종로구 가회동에 새로운 공관을 마련한 것. 가회동 공관은 대지 660㎡(약 200평) 규모로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단독주택이다. 내부는 방 5개, 회의실 1개, 거실 1개, 마당으로 이뤄져 있다.
가회동 공관 역시 은평 뉴타운 공관처럼 전세계약을 맺었다. 무엇보다 논란이 된 부분은 ‘전세가’다. 은평 뉴타운 공관이 1년 전세계약에 2억 8000만 원이었던 반면, 가회동 공관은 계약기간 2년에 전세가가 ‘28억 원’에 달했던 것. 무려 ‘10배’ 가까이 뛴 전세가에 ‘황제 공관’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8일 공관으로 몰려와 “박 시장은 ‘서민의 친구’임을 표방하며 당선된 지 6개월여 만에 임차료 28억 원짜리 단독주택으로 공관을 옮겼다. 은평 뉴타운 공관보다 10배 이상 비싼 황제공관”이라며 규탄했다.
이러한 논란에 서울시는 “꼭 필요한 공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반응이다. 김인철 서울시 대변인은 “시유 재산인 시장공관은 숙소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내·외빈을 맞이하고 24시간 시정을 감시, 감독하는 컨트롤타워다. 단순히 액수로 필요성을 판단할 수 없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가회동 공관의 전세가가 지나치게 높은 편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은평 뉴타운 공관 이전에 서울시장이 기거했던 혜화동 공관은 매매 추정가가 ‘150억 원’에 달하지만, 가회동 공관은 매매 추정가가 ‘60억 원’ 수준이다. 전국 공관 규모를 보면 가회동 공관은 전국에서 대지면적으로는 17번째, 건물면적으로는 4번째로 크다. 이렇듯 여러 입지조건으로 따져봤을 때, 전세가 28억 원 공관을 ‘황제공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비교를 하려면 이전 혜화동 공관과 현재를 비교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타워팰리스 공관’이라고 하는데 지나친 흠집내기다. 시청과 가깝고(직선거리로 2.53km) 가격 조건을 따져봤을 때 그만한 대안이 없었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정말 대안이 없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여러 후보군이 있긴 했다”라고 귀띔했다. 공관에서 가장 큰 기준이 됐던 것은 ‘시청과의 거리’였다. 앞서의 관계자는 “시청 근처 바운더리에 드는 용산, 성북구, 종로구 이 세 곳이 물망에 올랐다. 건물보다는 지역이 가장 큰 기준이 됐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는 매물로 나와 있는, 마땅한 게 없었다. 웬만큼 괜찮다 싶으면 거의 100억 원대를 호가했다. 그러다가 결국 가회동 전세로 최종 결정이 난 것”이라고 전했다.
한때 서울시는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서울 파트너스하우스’를 공관 후보로 검토한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 파트너스하우스는 지난 2005년 시가 공관 신축을 결정하면서 60억 5000만 원을 들여 지은 건물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오세훈 전 시장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건물로 용도 변경하면서 현재에 이르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파트너스하우스를 검토해봤지만 이미 중소기업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고 공관으로 쓰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당시 파트너스하우스는 2009년 완공 이후 표면적으로는 금융위기 때문에 용도를 바꿨지만, 일각에서는 오 전 시장의 대권 도전과 관련한 ‘풍수지리설’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남동 공관보다는 기가 센 터인 혜화동 공관에 거주하는 것이 대권 도전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여긴 오 전 시장이 공관 이전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취소했다는 의심스런 시각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풍수지리적’ 시각에 박 시장도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가회동’이라는 지역 특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가회동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대선 전에,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 시절 살던 곳이다. 박 시장의 공관은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집과 불과 500m가량, 이 전 대표 집과는 800m가량 떨어져 있다. 때문에 유력한 야권 잠룡으로 꼽히는 박 시장이 향후 대권을 노리고 ‘터’가 좋은 가회동을 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풍수지리연구원 전항수 원장은 “가회동은 예부터 고관대작이 많이 사는 곳으로 유명했다. 정치인들이 살기에는 터가 좋은 곳이 많다”라고 전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박원순 시장이 당초 2억 8000만 원을 28억 원으로 10배 이상 늘려 이사하는 것 자체가 주목거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유력한 대권후보로 언급되던 시절 논현동 사저를 두고 굳이 북촌마을에 사는 것을 택했다. 박 시장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있겠느냐. 그럼에도 가회동으로 가는 행동으로 대권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의혹을 극구 부인하는 모습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권과 관련됐다든지, 풍수지리 때문에 가회동으로 옮겼다는 얘기는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공관 이전에 풍수지리 자체가 전혀 고려가 안 된다. 오로지 지역의 적합성만을 따질 뿐”이라며 “가회동 공관은 일단 2년 계약이기 때문에 추후에 또 다른 적합한 곳을 찾아 매입을 할지 또 다시 이사를 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