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처분 심문 기일에 양측 모두 ‘상대방 죽이기’…재판부, 주총 개최 전 가처분 결정
5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 달라며 하이브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 심문 기일을 열었다. 하이브는 이달 31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민 대표 해임을 골자로 한 이사진 해임 및 신규 선임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 하이브가 어도어 지분의 80%를 보유하고 있는만큼 임시 주총을 통해 민 대표는 해임되게 된다.
이날 변론에서 민 대표 측은 "민 대표는 해임 사유에 해당하는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며 "하이브는 민 대표를 내치기 위해 사실과 다른 허위 주장을 반복하고 있으나 민 대표는 지배주주 변동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으며, 외부 투자자를 만나 투자 의향을 타진한 적도, 어도어와 뉴진스 간 전속계약을 해지시킬 의도 자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 대표의 해임은 본인뿐 아니라 뉴진스, 어도어, 하이브에까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초래한다"는 취지로 가처분 신청 인용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사태가 하이브의 어도어 및 뉴진스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지원 미흡에서 시작됐고,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하면서 폭발했다는 점을 짚었다.
반면 하이브 측은 "민 대표는 어떤 투자자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으나 감사 결과 어도어 경영진은 경영권 탈취의 우호 세력 포섭을 위해 내부 임직원과 외부 투자자, 애널리스트 등을 가리지 않고 접촉했다"며 "또한 하이브 주요주주사인 'D'사와 주요 협력사인 'N'사 고위직을 접촉한 사실도 드러났다"고 반박했다. D사는 두나무, N사는 네이버로 파악된다.
이어 "민 대표는 뉴진스를 내세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민 대표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사익 추구고 채무자(하이브) 간섭을 받지 않고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전략 뿐"이라며 민 대표가 측근들에게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비하 발언을 수시로 하고 멤버들을 가스라이팅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해당 발언이 담긴 메시지는 이날 법정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법정 안에서 법률대리인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질 때 밖에서는 어도어와 하이브 간 '공식입장'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이날 어도어 측이 공개한 민 대표의 하이브 내부 고발 이메일에는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 의혹이 처음으로 언급됐다. 음반 밀어내기는 앨범 판매사나 유통사가 앨범 초동(발매 일주일간 판매량) 물량을 대규모 구매 후 기획사가 팬 사인회 등 행사로 판매를 보상 또는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민 대표는 해당 이메일을 통해 "뉴진스의 '음반 밀어내기'를 하이브로부터 권유받았다"라며 "EP '겟 업(Get Up)' 음반 발매 시 하이브로부터 에스파 초동 기록을 꺾을 수 있다며 10만 장의 밀어내기를 권유 받았으나 지금까지 음반 밀어내기 없이 뉴진스가 달성해 온 순수한 1위 기록들이 퇴색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다양한 사업 기회들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단호히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음반 밀어내기' 없이도 음반 판매량이 높은 뉴진스 같은 그룹에도 타 그룹의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서 권유했을 정도인데 다른 그룹의 경우는 어땠겠나"라며 "이는 하이브의 심각한 윤리의식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당시 음반 밀어내기 관련으로 나눈 업무 메신저 대화 내용도 함께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상대방이 "앨범 관련해서 추가 10만장 사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6월 공연 이후는 반품 가능한 조건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일본에는 일단 25만 장 수준으로 보내는 것으로 협의했다. 다만 이번엔 반품 조항을 넣어서 판매 부진시에는 반품 가능하도록 협의했다"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하이브 측도 즉각 공식입장을 통해 "민 대표의 '하이브로부터 음반 밀어내기 제안을 권유받았다'는 주장은 격의없이 이뤄진 대화의 일부였을 뿐"이라며 "공식적으로 '밀어내기'는 없다고 수차례 설명드렸고 실제 하이브는 '초동 기록 경쟁을 위한 밀어내기를 하지 않는다'라는 명확한 원칙을 갖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반박 내용이 적힌 답변을 공개했다.
하이브는 "어도어는 뉴진스 '겟 업' 음반 발매 당시 시장 상황을 낙관해 음반을 350만 장 제작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현재 당사에는 무려 161만 장의 재고가 남아있다"라며 "일본 유통사는 처음 해당 앨범을 9만 장 이상 구입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으나 이후 어도어도 참여한 협의를 통해 6만장을 추가해 총 15만 장을 판매했고 이는 어도어의 대량 주문에 해당한다. 해당 주문으로 인해 현재 유통사에 적채된 재고는 11만 장에 달하며 늘어난 물량의 일부 소화를 위해 어도어는 2023년 8월 20일에 뉴진스 멤버 전원이 참여하는 팬사인회를 추가적으로 진행한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업계에서 암암리로 행해지는 영업의 판촉 행위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뉴진스가 하면 정당하고 다른 아티스트가 하면 밀어내기라는 민 대표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하이브 측의 말이다.
다만 음반 밀어내기 제안에 대해 하이브 측이 '사담'의 일부라고 해명한 점을 놓고서는 대중들의 반응이 갈리고 있다. 앞서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진과 메신저를 통해 나눈 주주간계약 수정 관련 논의 등이 단순한 사담이었다고 해명한 것에 "명백한 경영권 찬탈 시도의 근거"라고 주장해 온 하이브가, 자신들에게 다소 불리할 수 있는 내용에는 마찬가지로 "사담"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여기에 앞서 불거졌던 하이브의 사재기 의혹까지 다시 더해지면서 양 측 간 분쟁을 떠나 정확한 사실 관계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탄원서가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방 의장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는 지금보다 더욱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며 "민희진 씨의 행동에 대해 멀티 레이블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시스템도 철저한 계획도 인간의 악의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본 사건을 더 좋은 창작 환경과 시스템 구축이라는 기업가적 소명에 더해 K팝 산업 전체의 올바른 규칙 제정과 선례 정립이라는 비장하고 절박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K팝) 산업의 리더로서 신념을 갖고 사력을 다해 사태의 교정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5월 31일 어도어 임시주총 예정일 전까지 가처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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