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를 방문한 ‘꼬마’ 손님들. 아래는 청와대 인터넷 신문고 메인 페이지. | ||
청와대 ‘북악 안내실’(일명 55면회실)이 과거에 비해 훨씬 썰렁해졌다고 한다. 북악 안내실은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부인에게 출입증을 발급하는 업무를 담당하며 청와대 인사들을 방문할 때 기다리는 장소로도 쓰인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찾아오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발길이 부쩍 줄어들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악 안내실은 일명 ‘55면회실’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지난 1963년 대통령 경호실이 창설되면서 주변 경비초소에 정문을 기준으로 차례로 번호를 매긴 결과 그 위치의 경비초소에 55라는 번호가 붙여졌는데 이 이후로 계속 55면회실로 불려 왔다. 그러다가 55면회실이란 이름이 권위적이고 비밀스럽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8월부터 부드럽고 이해하기 쉬운 ‘북악안내실’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때 55면회실은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국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청와대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던 때였기 때문에 민원인의 모습도 거의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고부터 55면회실에 민원인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는 면회실에 직원을 임시로 배치해 민원업무를 접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 원래 민원 처리 업무를 하지 않던 청와대 면회실이 민원업무도 도맡아 처리하면서 청와대 민원실로도 불리게 된 것이다.
당시 청와대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이에 대해 “그동안 군사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국민들이 문민정부에 친숙함을 느끼고 일부러 청와대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청와대로 찾아오면 빨리 일이 해결되는 것으로 생각해 한때 면회실이 민원인들로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55면회실도 ‘정치적’으로 변했다고 한다. 각종 이권사업이나 음성적인 청탁을 하기 위해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러 이곳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 특히 역대 어느 정권보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많았던 DJ정부 때는 면회실이 일종의 청탁 창구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이런 사정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먼저 권부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에 의한 정책 결정이 자리잡히면서 음성적 청탁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정이 총리실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청와대의 힘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어 굳이 청와대 면회실을 통해 청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민원제안비서관실의 이상수 행정관은 이에 대해 “과거와 달리 청와대에 청탁을 해봤자 안된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청탁성 민원이 많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확실하게 그런 것들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 신문고를 통한 민원은 해마다 20%씩 늘고 있어 우리 업무량은 오히려 계속 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청와대 면회실은 한가해지고 있는 데 비해 인터넷을 통한 민원은 하루 3백 건을 넘는한다고 한다. 면회와 편지를 통한 민원은 70건 정도라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인터넷과 서신, 방문 비율이 8:2라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 신문고는 개인 명예훼손으로 변질될 경우가 많아 민원제안비서관실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상수 행정관은 이에 대해 “인터넷 신문고에서 공개된 민원은 사실 여부가 검증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피민원인을 음해할 목적으로 민원인이 글을 공개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단 우리가 민원인의 글을 먼저 보고 최종 분류작업을 통해 다음날에 인터넷에 공개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청와대에는 민원실이라는 곳이 없다. 현재의 민원제안비서관실이 민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어떤 때는 다짜고짜 찾아온 민원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고 한다. 이상수 행정관은 “청와대에서 민원을 처리하는 기능은 없다. 면회실로 사람들이 무작정 찾아오면 서면으로 접수해주기는 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청와대가 권력기관이라 이곳에 직접 민원을 내지만 민원제안비서관실에서는 그 민원들을 분류해 고위공직자 비리 등은 민정수석실이나 사정비서로, 그밖에 일반 민원 사항은 분류 작업을 거쳐 1백80개 정부관련 기관에 이첩만 할 뿐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들로서는 초법적인 일들을 할 수가 없다. 그 대신 민원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해당 부처의 일 처리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사후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여전히 권부의 핵심으로 우뚝 솟아 있다. 그래서 국민들은 ‘청와대에 하소연하면 억울한 일이 보다 빨리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북악 안내실’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시스템에 의해 일이 해결되는 만큼 예전의 ‘전화 한 통화’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인기가 떨어져 국민들이 ‘민원실’을 찾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20%대의 바닥을 기고 있고 경제도 침체에 빠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청와대도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는 곳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도 예전처럼 권력의 힘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민정부 초기 김영삼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때 청와대 면회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선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에 선물이 너무 많이 쏟아지자 당시 ‘추석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 등을 통해 청와대로 들어오던 각종 선물을 규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