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엄연히 이 땅에 생존해 있었지만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A 씨는 자신의 본명은 물론 부모형제와 출생지에 대해서도 일절 알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등록전산망과 가족관계등록부(구 호적)에서도 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A 씨가 평소 1953년 5월 23일생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그의 나이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계절과 날씨를 가리지 않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푼돈을 모아온 A 씨는 일생의 대부분을 지하철역 등에서 새우잠을 자며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 생활을 해왔다. 주변 사람들은 A 씨가 하루에 500원 남짓한 빵 한 봉지나 컵라면 등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는 등 밑바닥 생활을 해왔다고 전했다.
A 씨가 힘들게 푼푼이 모은 돈을 저금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초부터. 광주은행에 따르면 A 씨는 ‘나○○’라는 가명으로 예금계좌를 개설하고 그때부터 틈틈이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한 칸 마련하고 싶다”는 것이 A 씨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혈육 하나 없는 A 씨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 불안감을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 년 동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았던 A 씨가 은행문을 두드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A 씨가 계좌를 개설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그해 8월 금융실명제가 도입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주민등록상 존재하지 않은 인물인 A 씨가 계좌개설 당시 사용한 이름 ‘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A 씨는 이때부터 입금은 가능하지만 출금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금융거래를 해본 적이 없었던 A 씨가 금융실명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인지 A 씨는 멈추지 않고 계속 저축을 했다.
2007년경부터 A 씨는 거리 생활을 중단하고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공터에 있는 컨테이너에 정착해 생활해왔다. 이 와중에도 A 씨는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목돈을 모으기 위한 예금을 멈추지 않았다. A 씨는 얼마 되지 않는 하루 수입 중 간신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만 남겨둔 채 수입의 대부분을 모조리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금 후 일절 돈을 인출한 적이 없는 데다가 금융지식도 전무했던 A 씨가 자신이 입금한 돈을 찾을 수 없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어느덧 A 씨의 예금액은 1억 280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런데 이때쯤 A 씨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만다. 제때 식사도 못한 데다가 오랜 노숙생활로 인해 A 씨의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숙인 보호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거절한 채 힘든 생업을 계속했다. A 씨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용봉동 동사무소 관계자가 지난달 A 씨를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A 씨의 상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악화돼 있었다. 결국 A 씨는 지난달 28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동사무소 측은 A 씨의 법적 신원을 마련해주기 위해 지난달 14일 법원에 ‘성본 창설허가’를 내 둔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A 씨는 15년 이상 힘들게 모은 돈을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다. A 씨의 평생소원이던 내집 마련의 꿈도 자연히 물거품이 됐다.
A 씨의 기구한 사연이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은 A 씨가 남긴 예금이 어떻게 처리될지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A 씨와 혈육관계에 있는 사람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점 때문에 A 씨가 피땀 흘려 모은 돈은 고스란히 국고에 귀속될 처지에 놓였다. 은행 측은 “법원에 상속재산 관리인 선임요청을 한 뒤 법원 결정에 따라 국고 귀속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서는 금융실명제 도입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규정과 원칙만 중시한 은행 측의 무심한 행태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를 엄격히 적용하면 은행 측의 예금인출 거부는 타당한 조치다. 하지만 A 씨가 계좌를 개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실명제가 실시됐으며 그 후에도 A 씨가 계속 입금을 해왔다는 사실을 감안해볼때 A 씨는 예금을 해봤자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A 씨로서는 돈이 생기는 대로 입금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은행 측이 A 씨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고 입금중단을 권유하거나 실명전환을 유도하는 조치를 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적극적인 조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5년 이상을 거래해온 A 씨가 찾지도 못할 계좌에 계속 입금하는 것은 막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금융실명제법은 차명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는 경우 과징금 성격으로 원금의 절반, 이자소득의 99%를 추징하기로 되어 있다. 따라서 A 씨가 생존해서 추후 돈을 찾기 위해 실명전환 절차를 밟는다 해도 무거운 과징금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 측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수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는 은행이 고객 개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은행 측이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창구 대면거래를 해온 것이 아니냐는 반론을 펴고 있다. A 씨가 장기간 은행을 방문해 예금을 해왔고 예금 총액이 무려 1억 원이 넘는다는 점에서 은행 측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했다는 것이다.
현재 한 사이트의 청원방에서는 A 씨의 기구한 사연을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들이 뜻을 모아 ‘이름 없는 노숙인, 거액 예금 국가귀속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이들은 A 씨가 남기고 간 돈을 장학사업 등 A 씨를 기릴 수 있는 일에 쓰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