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구식 의원이 다섯 살 되던 해 어머니 장석순씨(79)와 함께 찍은 사진. | ||
이런 경험이 지금 그가 의정활동을 하는 데 소중한 밑바탕이 되고 있다. 가난 때문에 서민들의 정서를 읽는 혜안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가난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생각하며 그 자신도 국민들의 ‘종’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무식하다. 꼴통이다”라는 ‘막말’로 여론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가난하게 살아왔다. 나에게는 못살고 없는 사람들의 분노를 대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요즘 국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나는 국민들이 권력에 대고 내뱉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최 의원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조선일보>에서 17년 동안 사회부 문화부 정치부를 거친 뒤 16대 국회 때 박관용 국회의장의 공보수석을 하면서 정치권에 입성했다. 그가 문화부 기자로 재직할 때 출판계가 처음 밀리언셀러 시대에 접어들 때였다. 일주일에 1백여 권이 쏟아져 나오면 최소한 20~30권의 책을 읽으며 서평을 썼다고 한다. 그가 예언한 책이 대박이 나는 경우가 많아 출판사 사장이나 교수들로부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이 때가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였고 권력이 막강했던 때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부로 온 뒤 국회를 출입하면서 정치에 대한 감을 익혔다고 한다. 그는 “기자나 정치인이나 항상 국민의 편에 서서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측은 닮은꼴이 있다”고 말한다. 최구식 의원에게 정치의 원형질은 어머니가 그에게 베풀어주었던 한없는 사랑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준 가장 소중한 재산은 바른 마음가짐이다. 내가 어떤 욕을 듣든 국민들을 위하는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항상 노력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최 의원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글썽거렸다. 당신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된 것도 모른 채 치매로 누워있는 어머니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