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2일 서울 삼청동 금융원수원에서 열린 대통령직인수위 해단식에서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사실상 한 정부의 첫 번째 인사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수위원회의 조직과 그 구성원의 성격이 그 정부의 색깔과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역대 정부의 사례를 살펴보자면, 인수위원들의 공직 참여는 관례처럼 이뤄져왔다. 이는 역대 인수위 자체가 각 정부에서 하나의 폐쇄적인 인재풀로서 작용해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인사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요신문> 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역시 역대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부 파견 인사를 제외하고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는 위원, 전문위원, 실무위원 72명 중 25명을 제외한 47명이 한 차례 이상 현 정부의 공직에 참여했거나, 참여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수위원이었지만, 현재까지 공직을 받지 못한 25명 중 4명은 김상민, 류성걸, 이현재,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으로 내각을 제외하곤 공직 참여가 쉽지 않은 현역 국회의원들이었다.
공직의 기준은 청와대, 정부, (준)정부기관, 공기업, 각종 대통령 직속 위원회(위촉 위원직 포함), 국가 행사 위촉직을 포함했다. 전체 인원의 65.2%가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셈이다. 아직 집권기간 절반이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적잖은 수치다.
조사대상자 72명 중 14명은 청와대 공직에 참여했다. 인수위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서 보좌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연달아 역임했다. 외교국방통일위 간사를 맡았던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청와대에서 나온 뒤, 주중대사로 내정된 상황이다.
국정기획조정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는 가장 오랜 기간 청와대에서 몸담은 수석비서관이었다. 그는 정부 출범부터 지난 1월까지 국정기획수석으로 활동했다. 한동안 쓰임을 받지 못했던 동교동계 출신 김경재 전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은 최근 홍보특보로 임명되며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고용복지위원회 위원이었던 안종범 경제수석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의 긴급호출을 받으면서 의원직을 내놓기도 했다.
인수위 출신 중 차관급 이상 정부 고위직으로 발탁된 사례는 모두 10명으로 집계됐다. 법질서사회안전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윤성규 한양대 교수와 경제2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서승환 연세대 교수는 정부 출범부터 현재까지 각각 환경부 장관과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장기 집권 중이다. 국정기획조정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 고영선 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정부 출범 직후 국무조정실 제2차관으로 입성한 뒤, 지금은 고용노동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수위에 참여했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발탁도 두드러졌다. 선거 캠프 시절과 인수위 당시에도 홍보 전략의 책임자였던 변추석 국민대 교수는 지난해 4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여성문화위원회 간사였던 모철민 전 예술의전당 사장은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 발탁돼 지난해 6월 물러났다. 황신혜밴드 출신인 김형태 전 여성문화위 전문위원은 현재 대통령 직속기관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문화계 여성 인사 중에서는 국민대통합위 부위원장 출신인 윤주경 매헌기념사업회 이사가 지난해 9월부터 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청년특별위원으로 활동했던 음악감독 박칼린 씨는 지난해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임명된 바 있다.
인수위원들의 회전문 인사도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김장수 주중대사 내정자와 함께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회전문 인사는 외교국방통일위 실무위원 출신인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이다. 현재 그는 통일부 장관으로 내정돼 곧 청문회에 임한다. 교육과학위 전문위원 출신인 김재춘 교육부 차관은 올해 2월까지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거쳤다. 반대로 외교국방통일위 전문위원 출신인 전성훈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은 지난해 3월까지 통일부 산하기관인 통일연구원에서 원장을 역임한 케이스다.
인수위원들 중에선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하거나 구설에 오른 사례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이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청문회에서 자녀 병역 의혹과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이며 정부 낙마 인사 1호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인수위를 거쳐 곧바로 공직에 임명됐다가 갖가지 사연을 안고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인수위 부위원장을 역임하며 실세로까지 불렸던 진영 의원은 정부 1기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꿰찼지만 6개월 만에 자진 사퇴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초 내걸었던 기초연금안 공약을 후퇴함으로서 빚어진 정부와 청와대 간의 갈등이 크게 작용했다. 법질서사회안전위 전문위원이었던 조응천 변호사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하다 청와대 문건 유출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지난해 4월 공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그는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서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
한편 현재까지 공직에 나서지 못한 25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언제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국방통일위 위원이었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와 김진선 전 취임준비위원장 등은 지금껏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다. 최 교수는 정부 출범 1기 통일부 장관으로 점쳐졌지만, 갖가지 추측만 남긴 채 갑작스레 인수위원직을 중도 사퇴한 바 있다. 김진선 전 위원장도 총리 인선이 있을 때마다 꾸준히 거론됐지만, 아직까지 낙점을 받지 못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