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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된 MBC <네 멋대로 해라>의 두 주인공 양동근 이나영. 이들은 ‘스타J’라는 기획사 소속 연기자들이다. 지난해 계약금 2억원을 받고 이곳으로 둥지를 튼 이나영은 양동근과 한솥밥을 먹는 선후배 사이. ‘스타J’는 영화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통해 이 같은 턴키 계약을 이미 선보인 바 있다. 양동근 이정진 한채영 등을 이 영화에 주연급으로 기용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 인기리에 방영중인 KBS <태양인 이제마>에서 라이벌 한의사로 출연중인 최수종 오대규도 ‘제이픽처스’ 소속 배우들이다. 최근 ‘MP’로 옮긴 김유미도 드라마 초반 이들과 같은 소속사였다. 어쨌든 캐스팅 라인업 단계에서 세 명의 주인공이 한 드라마에 나란히 투입된 셈이다.
지난주 1, 2회가 방영된 MBC 수목드라마 <리멤버>도 상황이 비슷하다. 박정철 김승수 추소영 등 세 주인공들은 송윤아 소속사인 ‘스타아트’ 후배들. 이런 까닭에 9월 초 경기도 일영에서 진행됐던 <리멤버> 제작발표회 현장도 무척 이색적이었다. 다른 제작발표회 같았으면 수십 명의 매니저들로 북적거렸겠지만 이날은 대여섯 명의 매니저들만 나타나 다소 썰렁해 보였을 정도. 손태영을 제외한 세 주인공들이 한 소속사 연기자들이다 보니 흡사 집안잔치 분위기였다.
이런 현상은 개그계에서 더 심하다. ‘G패밀리’ 소속 개그맨인 이휘재 유재석 송은이는 방송가에서 ‘세트’로 불리는 트리오 멤버들. 이들은 KBS <이유 있는 밤>과 SBS <진기록 팡팡팡>에서 MC로 출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는 심현섭 강성범 황승환 등 출연진의 70%가 ‘스타벨리’에 몸담고 있다.
이 같은 ‘턴키’ 계약 캐스팅의 원조는 영화 <쉬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인공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는 한석규의 친형 한선규씨가 운영하던 ‘SUN’이라는 소속사 식구들이었다. 작품 선택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한석규를 투입하며 최민식 송강호라는 카드까지 덤으로 내민 것. 결국 이 같은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강제규 감독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한국 영화 흐름을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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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야 놀자>의 제작사 씨네월드 정승혜 이사는 “주연급 영화 배우들의 매니저들은 이제 단순한 매니저가 아니다. 이미 충무로에서 캐스팅 디렉터로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캐스팅 단계에서 출연시키고 싶은 배우들을 제작자 감독과 함께 상의, 결정한다는 것이다. 장진 감독이 연출한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는 맨 파워로 완성된 대표적인 작품.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 류승범 이문식 등 서울예대 선후배들로 뭉쳐진 ‘수다’ 소속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한 것.
방송도 마찬가지다. PD나 조연출이 독자적으로 섭외하던 시대는 가고 캐스팅 디렉터들의 활약이 속속 뿌리내리고 있다. PD가 아예 캐스팅 디렉터에게 원하는 배우들의 명단을 적어주고 아웃소싱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물론 최종 결정과 책임은 PD의 몫. 캐스팅 디렉터의 출현은 캐스팅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현재 충무로에는 캐스팅을 못해 촬영 일정이 늦어지는 영화들이 수두룩하다. 한 영화 제작자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애니메이션을 하는 게 낫겠다”고 푸념할 정도다.
‘턴키’ 계약에 대해 외주 제작사의 등장을 그 이유로 꼽고 있는 사람도 있다. <태양인 이제마>의 제작사는 KBS가 아닌 ‘팬 엔터테인먼트’. 이곳은 윤석호 PD의 <겨울연가>를 제작한 프로덕션으로 최수종 오대규가 소속된 ‘J픽처스’와 자매 회사다. 결국 한 프로덕션에서 자신들의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고 직접 드라마까지 만들어 방송사에 납품하는 격이다. 이곳은 모회사인 음반사 예당과 네트워킹, 드라마 OST까지 도맡고 있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Multi use)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 <이유 있는 밤>도 이휘재 유재석 송은이 삼각 편대를 보유한 ‘G패밀리’가 직접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얼굴이 강원도 감자와 비슷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감자꼴’ 소속 개그맨 박수홍 김용만 김수용 김국진도 최근 제작사를 차렸다. 박수홍의 친형이 대표인 이 회사는 앞으로 윤정수 등 더 많은 개그맨들을 확보할 예정. 이들 역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원하는 방송사에 고정적으로 납품할 계획이다. 방송사는 이들에게 방영 시간만 내주는 셈이 된다. 이 같은 턴키 계약은 골치 덩어리인 캐스팅도 원활해지고 현 방송법상 외주 제작 비율을 40%까지 끌어 올려야 하는 지상파 방송국으로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부작용도 공존한다. 한 매니지먼트사의 독식(?)이 자칫 억지성 캐릭터들을 양산할 수 있다. 적역이 아님에도 불구, 유명세만 믿고 억지춘향식으로 배역을 결정해 극의 긴장도와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스타급 연예인들을 대거 보유한 매니지먼트사와 그렇지 않은 곳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도 심각해질 전망이다. 또한 검찰 수사로 혐의를 받고 있는 <개그콘서트> 사례처럼 PD와 소속사 간의 각종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개그콘서트>를 연출한 양아무개 PD는 소속 개그맨들의 출연을 대가로 ‘스타벨리’ 대표로부터 2천7백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앞으로도 이 같은 독버섯 거래들이 양산될 수 있다. 여기에 제작진과의 갈등이 생길 경우 출연 보이콧을 하면 제작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일부 매니저들의 ‘도덕적 해이’도 지적된다. 캐스팅 디렉터로 일하는 일부 톱 매니저들은 영화사 대표들로부터 골프와 룸살롱 접대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최초 퓨전 액션 영화 <떴다 홍길동>을 준비중인 레츠 영화사 정재호 이사도 “캐스팅 과정에서 은밀히 자신의 커미션을 요구하는 매니저들도 있었다”며 허탈해 했다.
김범석 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