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처럼 은근슬쩍 의무인 것처럼 모금하고 있는 적십자 회비 고지서가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의 설립 목적이나 취지 자체는 괜찮다 해도 연말이면 집집마다 세대주에게 강제로 날아오는 적십자 고지서를 세금 고지서로 오인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진납부로 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적십자 측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자료제공 요청 등) 등 법적근거가 있다며 ‘자진납부’와 ‘재산세에 따른 차등납부’에 대한 동의절차나 홍보를 소홀히 하고 있어 불필요한 혼란이 확산되고 있다.
기부금 중에서 유일하게 지로용지를 발송해 회비를 부과하는 적십자의 방안은 지난 1996년 ‘적십자회비 방문모금’을 폐지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모금 과정에서 동사무소 직원들이 개입하는 등 강제모금 성격 때문에 말썽을 빚자 적십자 회비를 고지서 형태로 배부하되 납부여부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공과금인 것처럼 보이는 지로용지가 국민에게 기부를 강요하거나 의무적으로 내야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회비라는 명목으로 걷어지지만 아무런 동의절차 없이 강제로 고지서가 우체통에 투입되는 것이다. 적십자가 고지서를 보낼 때 열람하는 개인정보가 어느 공공기관으로부터 제공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모이는 적십자회비는 최근 3년간 1500억 원이 넘는다. 1년에 500억 이상의 모금이 걷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2013년 적십자 결산보고 기준 전체 수입 7357억 원 중 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또한 300억 원 상당의 국고보조금도 받고 있다. 그동안 의무납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 채 회비를 내야했던 국민들에게는 이중고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NPO(비영리단체)단체 관계자는 “적십자 회비 고지서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오래전부터 언급되어 온 문제다. 심지어 NPO단체에서 일하면서도 해당 고지서를 강제성이 있는 세금고지서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NPO단체 관계자는 “의무납부가 아닌 자진납부라는 사실을 알고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발적 기부문화 정착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며 “오래전부터 논란이 일었지만 정작 적십자 측은 연말이면 한번쯤 언론에 언급되는 문제쯤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의무납부는 아니지만 집집마다 지로 용지가 꽂아져 있으면 공과금 고지서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자발적 기부금인데 재산세에 따라서 부과하는 것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적십자사는 집집마다 강제로 고지서를 보낸다. 임의 NGO도 아니고 법에 의해서 운영되는 곳이라면 훨씬 더 투명하고 독립적으로 경영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