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장희빈>에 등장한 김혜수 | ||
이러한 이유로도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번 <장희빈>이 유독 관심을 끌게 된 이유는 김혜수의 ‘행보’ 때문이었다. 영화와 드라마에 ‘더블 캐스팅’된 김혜수가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욕심내다가 결국 한 쪽을 ‘포기’하면서 방송사와 영화제작사 간에 신경전이 벌어진 것.
지난 10월2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는 <장희빈>의 주인공에 캐스팅된 김혜수가 “연기 인생을 걸고 장희빈을 연기하겠다”는 소감발표를 했다. 같은 날. 영화 <바람난 가족>을 기획하고 있는 명필름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촬영을 목전에 둔 주연배우(김혜수)에게 캐스팅을 제의한 KBS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분명 심각한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인 25일이었다. 곽경택 김상진 김기덕 김지운 류승완 봉준호 이정향 장진 허준호 등 젊은 감독들이 주축이 된 모임 ‘디렉터스 컷’이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 것. 이날 ‘디렉터스 컷’은 “KBS의 배우 빼가기의 부도덕함을 개탄한다”며, “원칙과 약속을 어기고 막대한 돈을 들여 인기연예인들 끌어들인 것에 대해 공영방송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희빈>과 <바람난 가족> 모두 방영 예정이거나 크랭크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 애초 김혜수는 명필름에서 제작하는 <바람난 가족>에 캐스팅돼 오는 11월4일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지난 9월3일 영화출연 계약을 하고 개런티의 50%를 받았으며, 김혜수 역시 극중 ‘바람난 아내’역을 위해 트레이드 마크인 긴머리를 자르는 등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장희빈> 제작진은 방영날짜까지 정해진 상황에서도 막상 주인공 장희빈 역을 구하지 못해 난감해하고 있었다. 장희빈 역을 심은하에게 제의한 바 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여러 톱 여배우들이 물망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섭외를 받은 배우들이 모두들 “사극인데다 1백부작이 넘는다”는 부담감 때문에 고사해, 지난 10월14일 ‘주인공 없는’ 촬영에 들어갔다.이 같은 상황에서 얼마 뒤인 22일 김혜수가 장희빈 역에 전격 발탁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김혜수가 두 작품에 모두 출연의사를 밝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먼저 캐스팅된 <바람난 가족>을 포기한 것. 김혜수측은 “일주일에 5일의 시간을 영화사측에 내주겠다고 했지만 명필름이 이를 거절했다”며 “이미 받은 출연료는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또한 <장희빈>을 택한 것에 대해 “연기자로서 꼭 하고 싶은 배역이기 때문에 힘들게 출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곧 크랭크인을 앞둔 <바람난 가족>의 제작사인 명필름측에서는 작품의 ‘간판’인 주연배우가 번복된 상황에서 여러 모로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김혜수에 맞먹는 주연배우를 다시 캐스팅해야 함은 물론, 촬영 일정이 늦춰지게 되므로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영화계에서는 이번 문제를 단순히 ‘한 여배우의 캐스팅 번복 사건’으로 보고 있지만은 않은 분위기. 배우들의 개런티와 섭외 문제는 영화계와 방송계간에 언젠가 맞부딪칠 사안이었다는 시각. 한 영화 관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출연료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거액의 출연료를 내세워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를 섭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외주제작사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가세하고 있다. 한 드라마 PD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수많은 회사로부터 협찬을 받기 때문에 제작비는 물론 주연배우들의 개런티가 고가에 책정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로 인해 협찬사의 간접광고 문제가 폐해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장희빈>의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김혜수의 출연료는 회당 7백만원 선이며, 항간에 알려진 ‘1천만원+α’는 부풀려진 얘기”라고 밝혔다. 이 말에 따르면 김혜수는 총 1백부작인 <장희빈> 출연료로 총 7억원 정도를 벌어들이게 된다.
그러나 출연료와는 별개로, “큰 부자나 큰 배역은 하늘이 내린다”는 포부를 밝힌 김혜수는 지난 10월24일 첫 촬영에 들어갔다. 주로 현대극의 도시적인 이미지를 내세워온 그녀가 어떤 장희빈을 만들어낼지 시청자들은 ‘우려 반 기대 반’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