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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가’를 부르는 할아버지와 곁에서 장단을 맞추는 할머니. 검버섯이 피고 주름진 얼굴, 언뜻 봐도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인다. 어느 해 겨울 우연히 만나 한눈에 반한 두 사람은 결혼식도 치르지 않고 막바로 동거에 들어간다. 기념사진 한 장 촬영하고 촛불 앞에서 사랑의 서약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충분하다.
청춘과는 이미 너무나 멀어진 늙은 연인들. 그렇다고 이들에게 사랑이 ‘플라토닉’한 것이리라 장담하지는 말자. 가는 세월이 아깝기만 한 이들은 누구보다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섹스를 즐길 줄 안다. 그 첫 번째 신. 할머니의 가슴을 애무하며 키스를 퍼붓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미디엄 쇼트’로 보여진다.
주인공 이순예 할머니(71)의 몸매는 사실 아름답지 않다. 처진 가슴과 늘어진 뱃살, 평범한 우리주변의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사랑의 행위를 나누는 모습 역시 결코 에로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상대역 박치규 할아버지(73) 또한 너무나 평범하다. 틀니를 하고 염색을 하고 또 향수도 뿌려보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 법. 영락없는 ‘칠순 노인네’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서로는 자신을 설레게하고 ‘욕망’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상대이다. 그것은 또한 사랑이며 관객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욕망을 스크린 속에서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느낄 수 있다.
어떤 날엔 ‘동그라미’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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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나눈 날이면 달력에 꼼꼼하게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흔히 신혼부부와 연상돼 떠오르는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박치규 할아버지의 7월 달력 속에는 한 주에 서너 번씩 동그라미가 그려진다. 어떤 날은 두 개가, 또 다른 날은 동그라미 아래 ‘낯(낮)거리’라는 글씨도 적혀 있다.
그렇다면 영등위에서 문제 삼고 있는 섹스신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초반부에 7분여간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논란장면’을 글로 묘사해 본다(영등위와 제작사 ‘메이필름’의 의견이 상충하는 부분이므로 주요 장면만을 사실적으로 기술한다).벌거벗은 몸으로 나란히 누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인다. 온몸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할아버지의 ‘중요부위’를 카메라는 약간 어두운 조명아래 위에서 비추고 있다. 할머니의 손이 할아버지의 ‘그것’을 어루만지기 시작하고, 잠시 후 할머니가 오럴섹스를 시작한다.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각도를 틀어 두 사람을 옆에서 비스듬히 바라본다. 아래에는 할머니, 그 위에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의 가슴을 입과 손으로 애무하며 할아버지는 연신 “좋아?”라고 할머니에게 묻는다. 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의 정사가 시작되고 언뜻 할아버지의 그것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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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적인 섹스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는 한 곳에 고정된 채로 담담히 담고 있다. 별다른 조명장치나 촬영기법이 없이도, 전문배우의 연출된 모습이 아닌 사랑하는 실제 부부의 정사는 그래서 더욱 리얼하다. 감정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 할아버지는 “넘어가네” “나 죽겄네”라고 신음하며 장면에 사실감을 더한다. 이윽고 달력에 또 한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음악과 함께 할아버지의 ‘국민체조’장면이 이어진다. ‘뭔가 해냈다’는 듯 뿌듯한 얼굴을 하고서.
다른 영화의 섹스신과 구별되는 이 영화의 뚜렷한 특징은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르지 않고’ 보여주는 데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바로 영등위에서 지적한 ‘오럴섹스’와 ‘성기 노출’장면이다. 이처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죽어도 좋아>는 제작 당시부터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었다. 지난 5월 프랑스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공식 초청돼 해외언론들의 찬사를 받았고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박진표 감독은 당시 “자유분방한 기질의 유럽인들에게 공감을 얻은 것 같다. 우리 영화의 세계화에 자신을 얻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등위는 ‘파격성’에 초점
그러나 아직 한국 영등위에서는 ‘작품성’보다 ‘파격성’으로 이 영화를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 지난 7월23일 <죽어도 좋아>의 등급판정에서 ‘18세 이상 관람가’와 ‘제한상영가’의 의견이 4:4 동수를 이루었지만 결국 의장은 ‘제한상영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제작사 ‘메이필름’측은 지난 9일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 재심의는 ‘문제장면’을 그대로 둔 채 원본 필름을 다시 심의하는 것이므로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메이필름’ 서영희씨는 “가능하면 작품 그대로를 상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지적된 장면은 전체적인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일 <죽어도 좋아> 시사회를 본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했다. “영화를 보며 돌아가신 내 아버지를 생각했다”는 한 관객은 “어릴 적 이웃 노인이 옥상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아무도 얘기하려 하지 않았던 노인의 성문제를 감독은 과감히 시도했다”고 평했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들과 같은 칠십대”라는 또 다른 관객은 “내 나이의 노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