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위>의 홈페이지 주소를 클릭 했더니 ‘요상한’ 사이트가 뜬다. 잠시잠깐 옛 영화를 추억하고자, 또는 영화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팬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성인쇼, 일본몰카, 섹시엽기, 훔쳐보기…’ 한눈에 봐도 성인관련사이트임을 알 수 있다. 한때 영화 속 스틸장면과 주연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영화팬들의 정보 나눔터였던 이곳은 이제 성인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쇼핑몰로 ‘전락’해버린 것이다.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영화 <비천무>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더니 조금 전 그 사이트가 또 뜨는 것 아닌가. 공포영화 <가위>와 무협영화 <비천무>. 아무런 연관이 없는 두 영화 사이트의 주소가 모두 한 성인물 관련 쇼핑몰의 주소로 등록돼 있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걸까?
시간을 조금 거슬러 가보자. 인터넷 사이트가 영화홍보의 수단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전부터였다. 극장을 찾는 주관객층인 젊은이들에겐 이는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영화사들은 신문, 잡지, 방송 등의 매체에 일일이 돌려야 하는 홍보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하기도 한다. 이 무렵부터 영화 홈페이지만을 전문적으로 구축해주는 업체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홈페이지의 수준도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전의 홈페이지가 대부분 무료로 제작된 경우가 많아 단순한 것이 많았던 반면, 요즘에는 영화장르에 따라 다양한 컨셉과 디자인이 등장하고 있으며 각종 이벤트도 함께 개최하고 있다.
이는 단지 영화홍보 차원을 떠나 팬들을 위한 서비스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좋은 현상.따라서 영화 기획단계에서부터 홈페이지도 동시에 오픈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홈페이지의 수명도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홈페이지 구축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불과 몇 개월 동안 홈페이지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요즘엔 1년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문제는 극장상영이 끝나고 난 뒤다. 대부분의 홈페이지는 이 시점과 함께 사이트가 폐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홈페이지에 올려졌던 수많은 자료들과 팬들의 ‘목소리’ 역시 함께 사장되고 마는 것. 이때부터 주인을 잃은 도메인(인터넷 상의 컴퓨터주소)들이 애꿎은 성인관련 사이트에게로 팔려지게 된다. 보통 도메인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영화 홈페이지의 경우 홈페이지 제작사와 개봉 후 3개월 정도를 기본 관리 기간으로 정하지만, 계약서 상의 내용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영화사들이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홍보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형편이어서 홈페이지의 유지관리는 뒷전이기 때문.
바로 이 점 때문에 성인사이트 운영업자들이 톡톡한 ‘후광 효과’를 얻고 있는 것. 한 때 영화 홈페이지에 사용됐던 도메인은 인지도가 꽤 높다. 일단 방문자수를 늘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들은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홈페이지가 폐쇄되면 잽싸게 도메인을 사들인다. 도메인 매매에 대한 공인된 기관이나 사이트가 아직까지 없는 실정이어서 대행업체를 통한 이같은 매매는 흔하게 이루어진다. 도메인을 1년간 사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불과 몇만 원 안팎이므로, 적은 비용을 들여 홍보성을 확보한 사이트를 구입하는 것에 인터넷업체들의 경쟁은 치열하다.또 한가지 문제점은, 게시판을 통한 ‘간접광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에 대한 안내자료와 네티즌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할 자유게시판에 광고성 스팸메일이나 심지어 불법 CD유통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영화 <거짓말>의 홈페이지에는 이에 대한 단속의 글과 함께 보다 생산적인 운영을 위해 회원제로 전환한다는 공고가 올라와 있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스런 것은, 규모 있는 영화사들이 개별 영화 홈페이지를 폐쇄하면서 자료들을 영화사 사이트를 통해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 따라서 투자사의 제작비용에서 충당했던 유지비는 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부담하고 있다. 영화사 입장에서도 신경 써 만든 홈페이지와 자료들을 인터넷상에서 날려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일일 뿐 아니라, 이를 영화사 홍보자료로 활용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