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세일즈 외교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3월 5일(현지 시각) ‘쉴라’를 착용한 채 아랍에미리트 그랜드 모스크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대통령은 마지막 일정이 있었던 8일 도하 현지에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순방에 동행했던 경제사절단과 예정에 없던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경제사절단을 조직했던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경제사절단에 참여했던 기업인들이 대통령과 인사라도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했는데 청와대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소통과 스킨십을 늘리는 박 대통령의 행보는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이어졌다. 지난 13일 국가 5부 요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중동 순방 결과 설명회를 가졌다.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그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5부 요인들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일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3자 회동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에 대해 “보다 널리 소통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스스로도 박 대통령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전에 없던 박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지지층 붕괴로 최악의 위기에 몰렸던 그가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증거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순방에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했던 한 기업인은 “박 대통령이 얼굴 표정이 이전보다 확실히 밝아졌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깨지 않는 악몽과도 같았던 국내 정치 상황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안정을 찾고 있는 것도 자신감 회복의 또 다른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 실장은 취임하자마자 여야 정치권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전임 김기춘 전 실장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여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확연하게 회복세로 돌아섰다. 지난 1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39%로, 전주의 37%에 비해 2%포인트(p) 더 올랐다. 2주 만에 6%p가 상승한 것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40%선 회복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자신감 회복은 두 가지 강력한 드라이브로 표출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경제 살리기 드라이브’다. 박 대통령은 19일 청와대에서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주재하고 제조업 혁신 대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사양산업으로 인식돼 온 제조업을 새로운 수출 엔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 대통령이 무투회의를 주재하기는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이 외에도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 및 민생경제 관련 현장 방문과 간담회 일정을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다.
17일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의 3자 회동도 순방 성과 설명뿐 아니라 경제 살리기 대책이 주요 의제다. 박 대통령은 이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개혁안을 3월 이내에 도출해 줄 것을 요청해 놨고, 공무원 연금 개혁안도 4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돼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3자 회동이 겉으로는 협조 요청의 자리이지만 실제로는 대국회 압박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경제 살리기 드라이브의 다른 짝은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다. 지난 12일 ‘부정부패 발본색원’을 선언한 이완구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는 무늬만 ‘이완구 담화’였을 뿐 사실상 ‘박근혜 담화’라는 게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일치된 해석이었다. 이 담화가 발표 하루 전 있었던 박 대통령과 이 총리의 주례회동의 결과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총리 취임 후 첫 번째 대국민 담화가 불과 2시간 30분 전에 기자들에게 통보되는 등 다소 뜬금없는 발표의 모양새를 띤 것도 이런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검찰 등 사정당국도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렸던 것처럼 전 정권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 포스코건설 100억 원 대 비자금 조성 의혹, 방산비리 등 초대형 사안에 대해 동시다발적 수사에 나섰다. 이와 함께 검찰 수뇌부는 자원외교 실패 및 비리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재배당했다. 당초 일반 형사나 재산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6부, 조사1부 등에서 맡았던 사건을 소위 ‘저승사자’에게 넘기면서 강도 높은 수사 의지를 밝힌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이 총리의 대국민 담화 발표 하루 뒤인 지난 13일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부정부패 처단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를 진행하라”고 대놓고 지시했다.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까지 유력하게 거론됐던 황 장관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총력전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 살리기와 사정, 두 갈래로 나타나고 있는 박 대통령의 강력한 드라이브이 공통점은 국민 일반의 지지를 얻기 쉬운 이슈이자 대통령의 국정 주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안이라는 점이다. 한때 벼랑 끝까지 몰렸던 박 대통령이 양 날개를 달고 국정 장악력 회복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고참 당직자는 “정치공작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일련의 흐름은 철저하게 기획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TK(대구·경북) 일색’, ‘편법 검사 파견’이라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청와대가 우병우 민정수석 중심의 새 진용을 짜는 데 주력했던 점을 거론하며 “검찰에 대한 영향력이 여전하고 신망까지 두터운 이명재 전 검찰총장까지 민정특보로 배치돼 박 대통령을 돕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가 때를 기다리며 진용을 구축해 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런 강력한 국정 장악 드라이브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시 한 번 국정을 틀어쥐고 집권 3년차를 힘 있게 끌고 가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한 만큼 반 박근혜 진영 역시 소위 ‘신춘 대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노동계 일반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와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이 맞물리면서 올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춘투가 예상되고 있다. 춘투가 시작되는 4월에는 세월호 참사 1주기(4월 16일)가 들어 있다. 4·16은 기존에 춘투의 계기가 돼 온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과 함께 반 박근혜 총력 투쟁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진영 내부 균열이 전면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자원외교에 대해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면서 전 정권과 현 정권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포스코건설 수사를 필두로 민간기업들에 대한 수사가 확대될 경우 경제계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회생의 계기를 잡은 박 대통령과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반 박근혜 진영이 맞서면서 오는 4월이 더 없이 ‘잔인한 달’이 될 가능성을 예고한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