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한데 모여 공존한다. 낡은 공장지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예술과 조화를 이루는 곳. 조용하고 투박하던 골목이 특별한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곳. 하지만 그 특별함 탓에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이 생겨나는 이곳.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다. 성수동은 이질적인 곳이다. 날카로운 기계소리가 가득한 공장이 즐비한 곳에 아기자기한 카페가 들어서 있다. 자동차 정비소 건물엔 디자이너의 이름을 건 공방이 불을 밝히고, 낡은 주택가 뒤엔 한 채에 40억 원이 넘는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가 자리 잡고 있다. 20년간 창고로 쓰이던 공간엔 패션쇼나 수입 신차 발표회가 열리는가 하면, 젊은 사회혁신가들이 낡은 단독주택에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성수동은 고급 아파트, 공장, 문화예술거리가 혼재된 이색적인 모습을 띤 지역이다.
성수동은 한때 신흥 부촌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성수전략정비구역(성수뉴타운)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당시 서울시는 한강변 지역은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하고 서울숲 일대는 최고급 주상복합과 호텔 등이 들어선다는 구체적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에 더해 현대차는 서울숲 인근 삼표레미콘 부지에 본사 건립을 추진하기도 해, 성수동 일대는 대형 개발로 각광받기도 했다.
기대와 관심은 그래 오래가지 않았다. 현지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서울의 도심과 부심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50층 이상 초고층 신축이 불허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 본사 건립도 무산됐다”며 “한강변 아파트 층수를 지역별로 차등제한 하면서 성수뉴타운 계획도 멈췄다. 서울숲 조성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후 공장과 주택이 즐비한 낙후지역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성수동 일대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지난 2010년을 전후해 디자이너, 예술가, 사회혁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새로운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들은 강남과의 교통 편의성, 인근의 서울숲, 한강 등 자연환경과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임대료 등에 매력을 느껴 성수동을 택했다. 공장부지 옆 카페, 단독주택 속 공방 등 이질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인쇄소 옆을 지나다 만난 한 예술가는 “권리금도 없었고 임대료도 싼 편 이었다”며 “작품에 필요한 재료를 주변 공장에서 금방 조달할 수 있어 성수동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자생적 정착은 지난해 말 서울시가 공모한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에 성수동이 포함되는 데 한몫했다.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은 뉴타운, 재개발의 대안정비방식이다. 그동안 공동주거 개선사업을 통해 작은 규모로 시행해왔지만 지역, 지구로 범위를 확대해 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지역 쇠퇴도, 적정성, 주민, 지자체의 추진 의지와 역량 등을 평가한 결과 성동구 성수1·2가, 강동구 암사1동, 서대문구 신촌동 등 총 다섯 곳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해 발표했다.
성수동은 구두장인마을 조성을 통해 준공업지역 재생 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 서울시 주거재생과 담당 주무관은 “성수동이 선정된 것은 자생적으로 자리 잡은 사회혁신단체와 문화·예술인이 공공기관과 협력해 재생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판단한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뉴타운 사업은 열악한 주거 지역을 대상으로 전면 철거, 물리적 환경 개선 중심이다. 개발 기간 동안엔 주민이 이주해야 하고 개발이 끝나도 살던 곳으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성동구청 장수진 도시재생과 주무관은 “뉴타운은 주거 개선 사업임에도 사업성에만 치우쳐 원래 거주하던 주민을 위한 효과는 없었다”고 평했다.
성동구청은 이번 사업을 통해 성수동을 수제화 같은 토착 산업을 육성해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살리고 사회적 기업, 마을 공동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숲 중심으로 모인 사회활동가와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줄 계획이다. 장수진 주무관은 “뉴타운 사업은 공공에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은 사회적 기업과 예술가, 마을 공동체와 직접 만나 의견 취합해 함께 개선해 나가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위에서부터 주택에 들어선 사회적 기업 사무실, 20년간 창고로 쓰이다 콘서트·행사장 등으로 활용 중인 대림창고, 인쇄소 건물에 들어선 카페.
세입자들은 성수동의 부동산 가격을 지적하기도 했다. 유명세를 타며 빠른 속도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동에 특별한 공간을 조성한 사회적 기업에게도 점점 오르는 임대료는 부담스럽다. 지난 2012년 문화예술거리에 들어온 한 사회활동가는 “오르는 임대료에 부담을 느껴 벌써 다른 블록으로 옮겨간 사회적 기업도 생겼다”며 “매일 근처에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5팀 정도는 보인다”고 귀띔했다.
복수의 부동산중개업자에 따르면 사회적 기업과 공방, 카페가 들어선 문화예술거리는 현재 부동산 시세가 3.3㎡(약 1평)당 3500만 원이다.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면서 떨어졌던 부동산 가격이 지난해 초 이후 1000만 원가량 올랐다. 바로 옆 초고층 주상복합에 유명 연예인이 살고 인근 부동산에 관심을 둔 연예 관계자들이 많다는 소문도 더해져 그 속도는 더 빨라졌다.
도시가 간직한 다양한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특별한 공간이 형성됐다. 그 특별함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그만큼 떠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자는 “집을 내놓은 주민들이 늘었다”며 “지난해 초부터 그 자리에 들어온 사회적 기업만 10여 개”라고 전했다. 앞서의 사회활동가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 정체 지역에 비교적 물질이 풍부한 사람들이 유입되는 인구 이동 현상)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장수진 주무관은 “주민과 협의체 구성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특례 규정이나 조세감면 혜택 등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문상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