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숙이 드라마 <고독>에서 열다섯 연하의 영우(류승범 분)와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경민 역으로 열 연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 상대가 연하의 근사한 남성이라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내 꿈은 가슴 한구석에 묻어두어야겠지만, 나를 대신해 상상 속의 주인공이 되어주는, 역시나 근사한 여자가 있다. 흔치 않은 외모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배우 이미숙.
이미숙은 유난히 추위가 일찍 찾아온 2002년 가을, KBS <고독>에서 열다섯 살 연하의 영우(류승범 분)와 사랑에 빠지고 있다. 마흔의 여성에게 찾아온 스물다섯의 사랑은 무모하지만 솔직하고 거침이 없다. <고독> 촬영장을 찾아 화면 속에 채 담기지 않은 그녀의 매력을 들춰냈다.
지난 15일 저녁 <고독>의 촬영이 한창 진행중인 KBS 수원세트장. 이날 촬영분은 경민(이미숙 분)이 딸 정아에게 엄마의 입원사실을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대형 세트장 내에는 <고독>의 스태프 수십 명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표민수 감독의 큐 사인. “하나 둘 셋 넷 큐!” 표 감독은 독특하게 ‘넷’까지 센다.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촬영 때만큼은 누구보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저녁식탁에 마주앉은 딸에게 경민은 말한다. “자궁에 혹이 생겼대.” 가라앉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곧바로 이미숙의 입에서 큰 웃음이 터져나온다. 딸 정아역을 맡은 신지수양의 표정이 너무나 우습다며 이미숙은 몇 차례 NG를 내고 만다. 결국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같은 장면을 수차례 반복. 오후 5시부터 시작된 세트촬영이 어느새 8시 넘어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전날 새벽까지 무리해서인지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이미숙의 매니저 이창환씨는 “요즘 이미숙씨가 신경이 많이 예민해져 있다. 촬영 때문에 피곤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이미숙은 표민수 PD의 마니아다.
표 PD가 배역의 심리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하는 이미숙은 그동안 “표 PD와 작품을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종종 내비쳐왔다. 그러나 주로 영화만 출연해서인지 인연이 닿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독>의 경민을 만났고, 이미숙은 스스럼없이 그녀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경민의 고독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스물다섯에 미혼모가 된 후, 혼자서 15년간 딸을 키우며 이젠 대기업의 이사로 성공한 경민. 그녀 앞에 어느날 솔직담백한 열다섯 연하의 영우가 다가왔고, 자신을 미혼모로 만든 은석이 나타난다. 여기에 암선고까지. 이미숙은 이번 작품에서 유난히 눈물 연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번도 인공눈물을 넣고 연기한 적이 없다고 하니 역시 이미숙은 이미숙인가보다.
남자배우로는 영화 <정사>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는 이정재와 친분이 두텁다. 그런데 온 스태프들이 몇 달 간 숙식을 함께 하기도 하는 영화와는 달리 드라마 촬영현장은 제각각 따로 움직일 때가 많다. 자신의 촬영장면이 있을 때만 나타나 찍고는 사라져버리는 배우들도 간혹 있을 정도.
이런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는 이미숙은 후배 연기자들을 챙겨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갖곤 한다. 류승범, 서원과 코디, 매니저 등까지 불러 밥을 사주기도 한다고 이미숙의 매니저가 치켜세운다.
강원도 평창 보광휘닉스파크로 장소를 이동한 다음날 촬영. 전날 밤 눈이 내린 스키장의 바람은 유달리 매섭다. 영우와 경민이 단둘이 떠난 여행장면. 추위 때문인지 계속해서 NG가 났다. 극중 신 때문에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야하는 류승범의 입에서도 “아, 추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화면 속 움츠러든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미숙은 재촬영을 요구한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해질 무렵 그림자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를 참아야 할 판에, 모두들 쥐 죽은 듯 쭈그리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주연배우들은 물론 스태프들 모두 코끝이 빨갛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날씬한 몸매유지의 비결은 골프와 헬스. 워낙 체질적으로 살이 잘 안찌는 편이기도 하다. 그동안 종종 골프장을 찾았지만 드라마 촬영 이후로는 한 번도 필드에 나가지 못했다. 친한 후배연기자인 김민과는 골프장 친구 사이라고 한다.
<고독>은 그리 시원스런 시청률은 올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표민수 PD•노희경 작가 콤비는 이전에도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드라마만 만들었던 ‘고집파’들. 그러나 최근 대본수정이 잦아진 것을 보면 제작진도 적잖이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경민이 암선고를 받은 설정 또한 ‘식상하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은 터다. 실제 경민의 상황에 대해 이미숙은 어떻게 생각할까. “배우로 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했지만 답은 못내리겠어요. 그러나 예순 살이 되어도 사랑은 있어요.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랑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