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수 검찰총장 | ||
송 총장의 임기는 내년 4월까지지만 검찰 쇄신론 등을 이유로 여권이 송 총장을 내년 초에 조기 퇴진시킨다는 얘기다. 여기에 내년 3월 신임 총장이 내정되면 검찰 내에는 ‘두개의 `태양’이 떠 있는 셈이어서 송 총장이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송 총장이 역대 어느 검찰총장 이상으로 국민들과 검찰 내부에게 신망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섣부른 교체가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지난 대선자금 수사와 송 총장의 잇따른 소신행보에 대해 여권이 ‘복수’의 칼을 뽑아드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송 총장 조기 교체설의 가장 큰 근거는 지난해 초 송 총장이 취임한 이후 이어진 검찰과 여권의 갈등이 이제는 폭발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새정부 들어 검찰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사실상 송 총장에게 간섭을 하지 않았던 청와대는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초토화되는 참담한 결과를 맛봐야 했다.
또 지난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 촛불집회 주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 문제, 공직자부패수사처 설립 문제 등과 관련된 검찰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발은 더더욱 여권을 곤혹스럽게 했다. 특히 검찰이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에서도 저항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권은 더이상 검찰을 ‘방치’해 놓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여권의 정책방향에 협조하거나 최소한 척은 지지 않을 새로운 인물에게 검찰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여권이 최근의 어려운 정치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국면 전환용 개각을 실시하면서 검찰총장도 함께 바꾼다는 얘기들이 돌고 있다”며 “검사들 사이에서는 검찰에 또다시 정치바람이 부는구나 하는 위기감도 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총장은 임기 2년이 보장돼 있다는 점이다. 검찰 총장의 임기는 정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고 정치권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권이 임기를 마치지 않은 총장을 사퇴시킨다는 것은 정권의 도덕성에 타격이 될 수 있다. 특히 송 총장은 국회 청문회를 거친 최초의 총장이다. 검찰총장은 탄핵을 받지 않는 이상 대통령이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고 다만 스스로 퇴진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방법밖에 없다.
이 같은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력하게 제기되는 명분이 헝클어져 있는 검찰 인사 시스템을 제자리로 돌려 놓기 위해 총장을 조기에 바꾼다는 것이다. 다음 검찰 인사는 새 총장의 몫이다. 새 총장이 내년 4월 취임하게 되고 인사는 업무와 조직 상황을 파악한 후인 내년 5월 이후에나 가능해진다. 그러나 검찰은 전통적으로 매년 2월에 인사를 해왔다. 승진을 하는 도중에 주기적으로 1∼2년간 지방을 거쳐와야 하는 검찰의 근무 형태상 자녀들의 전학 등을 고려하면 학교가 방학하는 때 인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전통은 새정부 들어서면서 깨졌고, 특히 올해는 대선자금 수사 때문에 인사가 6월로 더욱 늦어져 버렸다. 따라서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새 총장이 늦어도 2월에는 임명돼 인사를 실시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 인사보다 총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지난 대선자금 수사로 검사장급 인사가 몇 달 늦어진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인사 때문에 총장을 조기 교체한다는 것은 명분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검찰 내에서도 우려하는 부분은 차기 총장이 내정될 내년 3월 이후의 상황이다. 새 총장의 취임은 내년 4월이지만 그 전에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내정은 취임보다 한 달 이상 앞서 이뤄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검찰에는 송 총장과 차기 총장이 함께 근무하게 된다. 이는 상명하복에 익숙해 있는 검사들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각종 수사나 정책 상황을 누구에게 보고하고 누구의 뜻에 따라 진행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재경 지검의 한 검사는 “새 총장이 내정된 뒤 기존 총장이 간부들에게 각종 결재 상황은 내정자에게 의논하라는 배려를 해준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송 총장의 성향상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특히 차기 총장 내정자가 송 총장과 성향이 다른 인물이라면 둘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실 송 총장도 지난해 3월 미리 내정된 뒤 청문회를 거쳐 정식 취임했지만 당시는 전임 김각영 총장이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 후유증으로 이미 사퇴한 상태여서 신·구 총장 간에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같이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송 총장이 미리 사퇴하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았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검찰 주변에서는 차기 총장 후보들에 대한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가장 무난하게 거론되는 것은 서열상 송 총장(사시 13회)의 뒤를 잇는 사시 15회의 이정수 대검 차장과 김종빈 서울고검장 중 한 명의 기용설이다.
검찰이 좀더 물갈이 되기 위해서는 새 총장은 좀더 젊은 기수가 돼야 하고 이와 관련 최근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인물은 사시 16회인 김성호 전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이다. 그는 검찰에서 부방위로 옮긴 뒤 공수처 설립을 주도하면서 친정에서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청와대로서는 조직장악력을 감안할 때 총장에 임명하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러나 현정권과 코드가 맞고 내년에 본격화될 공수처 설립과 국보법 폐지, 과거사 진상규명 등의 문제에서 검찰의 반발을 억누르는 데 적임자라는 면에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아울러 검찰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튀는’ 스타일을 감안하면 부산고검장으로 가 있는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사시 17회)이 총장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세간에서는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한 ‘죄’로 대통령 측근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지난 총선에서 여권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안 고검장은 공수처 설립 문제 등을 놓고 여전히 현정권에 불만을 갖고 있어 여권 전반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총장은 그래도 사시 동기생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