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었던가. 한 화장품 CF 속에서의 하리수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이기 전에 ‘그’였던 하리수는 이렇게 세상과의 첫 만남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이어서 희망찬 미래를 그녀는 결코 꿈꿀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예견했다.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반짝 스타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섣부른 추측이었다.
그녀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리수는 아직까지 굳건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동안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신분으로서. 그렇지만 이젠 완벽한 여자로서. 대한민국 법원도 하리수에게 여자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얼마 전 하리수는 호적상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꿔달라는 ‘호적 정정 신청’을 내 당당히 인정받았다. 이 시점에서 그녀의 심경이 궁금했다. “소감을 말해달라”는 형식적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첫 번째 질문과 함께 시작된 하리수와의 솔직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지난 20일 오후 4시 서울 논현동 KMTV공개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연말 가요특집 프로그램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잠시 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약속장소에 등장한 하리수는 다리를 하나 쭉 찢어 기자에게 건넸다. 조금 전 전화통화에서 식사중이라고 했는데, 이어서 디저트로 먹고 있었던가보다.
“그렇게 먹어대면 화면에서 배가 나와 보이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무대에 오르기 전 든든하게 먹어야 힘이 난다”며 개의치 않는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먼저 제안했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아담한 옥외정원을 배경으로 섭외해 둔 터. 사진촬영장소로 이동하던 중에도 하리수는 들고 있던 오징어를 연달아 입에 집어넣는다. 그러더니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중간중간, 입을 오물거리며 끝까지 먹어치웠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진기자가 편해서였는지 그녀는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미처 눈치 채지 못했는데, 곁에 있던 매니저가 “요즘 스케줄이 너무 몰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라고 귀띔한다. 그러나 인터뷰중에도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어 보였다.
─‘완벽한 여성’으로 인정받은 것에 대해 우선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사실 나는 한 번도 내가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법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것은 물론 기쁘다.
─이 같은 결과를 예상했었나.
▲한 인터넷 설문조사에 올려진 내용으로 봤는데 내가 여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결과가 좋을 것이라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언제부터 준비해온 것인가.
▲사실 하루아침에 결정하고 준비해온 일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준비는 올해 여름부터 시작했고 지난 11월29일 법원에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호적정정과 개명신청을 했다. 자료준비에만 서너 달 정도가 걸렸고 변호사 등 전문가의 의견도 구했다.
─법원에 제출한 자료들은 어떤 내용인가.
▲ 하리수는 ‘완전한 여성’이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물론 기쁘지만 한 번도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대답했다.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여성으로 성전환 한 이들을 여성으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불임 여성의 경우를 한 가지 예로 들었다. 그들은 입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이번 일이 당신과 같은 입장의 ‘성적(性的) 소수자’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길 바란다. 내 자신이 밑바닥부터의 고통을 겪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심정을 절감한다. 내가 사회의 인식을 깨는 데 조그만 힘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힘내라는, 우리 같이 힘내자는 말을 해주고 싶다.
─누구보다 부모님께서 느끼시는 감정이 남다를 것 같다.
▲사실 이미 부모님께서는 여성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별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준비과정에서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을 정도다.
─그런가. 의외다.
▲내가 바쁘기 때문에 일일이 뛰어다니며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기사 스크랩에서부터 필요한 서류를 떼는 일 등을 모두 엄마께서 도맡아 해주셨다. 이름도 ‘이경은’(본명 이경엽)으로 바뀌었다.
─이름은 누가 지은 것인가.
▲집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이름이다. 한 10년 정도 된 것 같다. 가족들은 나를 ‘경은아’ 또는 ‘리수야’라고 부른다. 경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것은 내 사주팔자 때문이었다.
─사주팔자라니 무슨 뜻인가.
▲엄마가 그런 것을 믿으시는 편이다. 어릴 적에 사주팔자를 보러 갔더니 내가 단명을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은혜 은’자를 넣어 이름을 새로 지었다. 그러고 보면 남자로서의 나는 단명한 셈이다. 이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오래오래 살 것이다(웃음).
그녀는 집안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가족들은 이제 ‘딸’이며 ‘여동생’인 그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오히려 어머니가 이번 소송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하니 말이다. 아직까지 색안경을 낀 채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리수는 얼마 전 방송에서 ‘폭탄선언’을 한 적이 있다. 가수 A씨와 교제하다가 헤어졌다는 것을 밝힌 것. 사실 연예인들 간의 열애가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건만, 그 주인공이 하리수이기에 더욱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리수는 이번 인터뷰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을 고백했다. 결혼을 전제로 한 프러포즈를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받았다는 것.
─얼마 전 당신이 밝힌 가수와의 열애사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실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연예인이 된 후 연예인이나 혹은 방송관계자와 교제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한 번뿐이다.
─상대방에게서 진심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꼈었나.
▲당연히 그랬다.
─남자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은 적이 있는가.
▲너무 많다. 어림잡아도 1백 번은 넘는 것 같다.
─결혼을 전제로 한 프러포즈를 말하는 것이다.
─하룻밤에 대한 제의를 받은 적은 없었나. 여자 연예인들 중에는 이에 관한 고백을 한 경우도 있다.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으며 좋아하지 않는다.
─한 방송에서 “동거를 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실인가.
▲당시 방송에서 “동거를 해보았느냐”는 질문에 “그럼요”라고 답했다. 그것은 트랜스젠더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동거를 말한 것이었다. 내용이 와전됐다. 그렇지만 결혼 전 동거는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본다.
하리수는 2~3년 안에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75년생인 하리수는 올해 나이 스물여덟. 서른 살까지는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그녀는 “요리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쳤다. 특히 자신 있는 메뉴를 물었더니 “찌개는 종류별로 전부 끓일 줄 안다”고 했다.
대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도 종류별로 다 부칠 수 있구요. 그리고 저, 김치도 담글 줄 알아요.” 요즘의 젊은 처녀가 김치를 담글 줄 안다면 훌륭한 신부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칭찬을 덧붙여주자 나온 대답.
“남편한테 제가 맛있게 해서 먹인 뒤 설거지 하라고 시켜야죠(호호).” 이제 그녀가 결혼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법적으로 이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여성인 하리수는 언젠가 자신만을 사랑해 줄 믿음직한 남성과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다. 그녀에게 결혼과 더불어 섹스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원나잇 스탠드를 해본 적이 있나.
▲없다. 말했듯이 나는 그런 즉흥적인 사랑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들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들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일반인들도 불감증이 많다. 그렇게 보자면 트랜스젠더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들의 섹스와 전혀 차이가 없는가.
▲똑같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그 질문 자체가 우습다. 우리라고 특별히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겠는가.
하리수와 같은 트랜스젠더의 경우 여성 성기의 주요 부분을 인공적으로 만들게 된다. 클리토리스는 귀두살로, 질은 정랑의 외피로 만들어 여성의 것과 똑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 따라서 임신은 할 수 없지만 이성간의 정상체위는 가능하다. 다만 질분비물이 나오지 않으므로 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성적쾌감은 여성의 경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리수는 자서전 <이브가 된 아담>에서 남성과의 첫 경험에 대해 고백한 바 있다. ‘낡은 침대의 스프링이 내 속처럼 비명을 지르는데 좀처럼 내 몸은 열리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를 내 안에 들일 수는 없는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오히려 쾌락을 삼켜버리고 있었다. 벌써 5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처음은 뭣 모르고 단지 그의 쾌락만을 보았다. 매우 간단하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해낼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결의한 일이었다.
아니 그를 내 안에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나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도 좋다고 결의한 일이었다. 그러나 5시간째 어느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몸부림만 쳐대고 있는 것이다.’ 하리수는 그날 밤 기나긴 의식 이후 트랜스젠더 언니들의 조언으로 ‘부드럽고 원활하게 해줄 어떤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젠 여성으로서의 성 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소 껄끄러운 질문에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거침이라고는 없었다. 하리수가 방송에서 하는 말들 또한 너무도 당당하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그 이유에 대해 하리수는 “나는 삶의 가장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순간 사람들의 뇌리에 박혔던 그녀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죽을 만큼의 아픔을 견뎌내고 다시 태어난 하리수, 그녀였다. 그러나 “한 번도 남자였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하리수. 언젠가 하리수에서 평범한 여성인 이경은으로 돌아갈 날을 그녀는 지금 생각하고 있을까. “남편 뒷바라지 하고 아이들 공부 열심히 시키면서 그냥 소박한 여자로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