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헤게모니 쥐기 위한 전략

삼성전자는 화성과 평택에,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에 메모리 생산기지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360조 원, 122조 원을 투입해 용인에도 반도체 클러스터를 2030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호남에 신규 반도체 단지 조성에 나선 건 메모리 수요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AI 에이전트 서비스가 확산되고 피지컬 AI 시장이 열리면서 메모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6월 29일 국민보고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에도 폭발적인 수요에 대응하기 어려워 새로운 단지를 준비해야 할 시점도 앞당겨졌다”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앞으로 메모리 시장의 공급 부족 상태는 더 심해질 것”이라며 “지나친 공급 부족은 상당히 높은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미래 시장을 축소할 우려가 있다. 이런 장애를 초래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나갈 토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 육성 필요성은 AI 수요뿐 아니라 국내 제조업 재편과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산업을 떠받쳐온 철강·석유화학 등 중화학 업계는 공급 과잉과 환경 규제 강화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기업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 등으로 산업공동화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반면 2028년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은 1000조 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중화학공업의 약화하는 경쟁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 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지역으로 선정된 호남은 여러 장점이 있다는 평가다. 국민보고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그간 투자 자원이 부족해 불가피하게 특정 지역에 올인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하지만 비효율이 심화되면서 수도권은 폭발 직전, 지방은 소멸 직전에 왔다. 국가균형발전은 대한민국 핵심 성장 전략이 됐다”며 “용수와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곳이 서남해안 일대다. 광주·전남지역은 통합에 따른 정부 지원금을 적게는 5조 원, 많게는 20조 원 전체를 투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도 있다”라고 밝혔다.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반도체 생산시설을 수도권에 집중하기보다 지역별로 분산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상인 교수는 “대만 TSMC는 북부 신주에서 출발해 남부 지역으로 생산거점을 확장했다. 일본에 짓는 공장도 도쿄나 오사카 인근이 아닌 지방에 들어서고 있다. 마이크론도 아이다호·버지니아·뉴욕 등 여러 지역에 생산시설을 분산하고 있다”며 “수도권에만 생산시설을 계속 집중시키면 전력망 관리 면에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보다 세밀한 계획 짜야”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민보고회 이후 열린 브리핑에서 “일본 구마모토 사례처럼 2년 안에 기반 공사를 마무리하고 기업들이 공장 건설에 착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호남 반도체 팹에 필요한 6.3GW(기가와트) 전력과 65만 톤(t)의 용수를 적기에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다 세밀한 계획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전력 문제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호남엔 재생에너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밀도 있게 분포돼 있고 전남 영광에 한빛원전이 6기나 있어 전력 자급률이 높다”며 “하지만 태양광은 간헐성이 있어 24시간 전력 공급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이를 보완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고 리튬 기반이라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미덥지 않은 기술로 꼽힌다”고 짚었다. 용인과 호남 클러스터를 동시에 추진하기로 하면서 전력 수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주헌 교수는 “한빛원전 1호기는 설계수명(40년)이 끝났고 2호기도 올해 9월 가동이 중단된다”며 “계속운전을 허가받더라도 10년 뒤인 2030년대 중반에는 폐기해야 한다. 공장이 본격 가동될 시기를 고려하면 미국처럼 계속운전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늘리는 정책 수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올해 말 발표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6~2040년)’에 신규 원전 건설 방안 등을 담는단 계획이다. 다만 원전이나 LNG 발전 확대가 병행될 경우 환경단체의 반발이 커질 우려도 있다.

인력 확보도 과제로 꼽힌다. 오상진 단장은 “광주에는 글로벌 반도체 후공정 기업인 앰코테크놀로지가 자리 잡고 있고 인프라도 구축돼 있어 당초 후공정 공장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있었다”며 “전공정은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걸리고 후공정보다 전문인력 수요가 큰 만큼 그 사이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 전문인력 공급 체계를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정형곤 선임연구위원은 “고급인력이 호남지역에서 머무를 수 있는 여건 개선이 상당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투자 전제 조건을 강조하고 나섰다.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보완할 원전 확대와 PPA(전력구매계약)를 적극 추진해 달라”며 “LNG 열병합 발전도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국민보고회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많은 협력업체와 지방에 같이 내려가게 되는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교육 문제”라며 “수도권에 가지 않고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면 지방 정착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다.
광주=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