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 전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4.0를 밑돌며 지표상으로는 ‘역대급 저평가’가 이어지고 있으나 7월 폭락장 후 주가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HBM에 편중된 사업 구조와 불명확한 장기공급계약(LTA) 방식이 꼽힌다.
일반 서버용 D램은 분기 및 월별 단가 계약을 통해 업황 개선에 따른 가격 상승을 즉각 반영한다. 반면 HBM은 내년 물량을 올해 미리 계약한다. 올해 D램 가격이 예상을 뛰어넘게 폭등하며, 지난해 체결된 HBM3 및 HBM3E 공급 가격 상방이 제한된 데 따라 하반기 실적 개선 폭이 기대를 하회했다는 분석이다.
차세대 HBM4 납품 지연설과 엔비디아향 가격 인상 폭 제한설도 불거졌다. SK텔레콤이 엔비디아 칩셋을 우선적으로 받는 대신 내년도 HBM4 단가 인상 폭이 50% 수준으로 제약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SK하이닉스 측은 즉각 부정했으나,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신규 계약으로 최대 100% 인상을 추진하는 동안 SK하이닉스는 50~100% 사이의 인상폭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해당 내용이 담긴 ‘찌라시’가 유포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전혀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루머로, 맥락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허위 사실 유포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대비 여전한 총 생산능력 열세도 문제다. SK하이닉스는 HBM 수율 측면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전체 메모리 캐파(생산능력) 규모에서는 삼성전자에 뒤처진다. HBM 수율·기술격차가 좁혀지고 범용 D램 가격도 폭등하는 시장 상황에서 SK하이닉스의 기존 상대 우위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상장사 위상 미달하는 IR과 중복상장 리스크
ADR 상장을 통해 미국 자본시장에 진출했음에도 ‘2등 기업’ 수준의 IR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비판 대상이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비트 성장률(비트그로스) D램 평균판매단가(ASP), LTA의 구체적 구조 및 비중 등 핵심 운용 지표를 밝히지 않았다. 다음 날 실적발표에서 관련 지표를 세부 공개한 삼성전자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에 씨티그룹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은 리포트를 통해 “LTA와 자본환원 정책에 대한 명확성 부족이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시장에서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SK하이닉스의 태도를 비판했다.
글로벌 IB 출신 한 증권가 인사는 “미국 상장사는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컨퍼런스콜을 진행하는 것이 상식으로 엔비디아는 젠슨 황,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 메타는 마크 저커버그가 컨콜에서 애널리스트의 질문에 답한다”며 “ADR로 미국 상장사가 됐음에도 책임과 권한에 한계가 명확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하는 SK하이닉스의 태도가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ADR 상장 후 주식 전환 안내 과정에서의 혼선도 SK하이닉스의 시장 소통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 요인이다. 당초 ADR 상장을 위한 신규 발행 주식이 한국예탁결제원에 등록되는 6월 말 이후 국내 주식과 ADR 간 자유로운 교환이 이뤄져 가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졌었으나, 실제로는 SK하이닉스의 추가 ADR 상장 없이는 사실상 전환이 불가능했다. SK하이닉스는 이 구조에 관해 명확하지 않은 태도를 이어갔고, 일부 증권사가 6월 말 이후 전환이 가능해진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발행하며 시장 혼선이 커졌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사실상 SK하이닉스가 기관투자자들까지 ADR 전환에 대해 오인하도록 방조하고 예탁결제원과 DR 발행 담당사인 씨티은행에 비난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중복상장 논란도 변수로 떠올랐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미국 낸드 법인인 구 솔리다임을 AI컴퍼니로 재편하고, 신설 손자회사인 솔리다임을 설립한 후 나스닥 상장을 염두에 둔 외부 투자유치를 검토 중이다. 이 구조가 현실화할 경우 지주사 SK(주), 자회사 SK스퀘어, 손자회사 SK하이닉스, 고손회사 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4단 중복상장’ 구조가 형성된다. 그룹 캐시카우인 SK하이닉스의 주주 가치를 희생해 투자금을 끌어 모으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삼성전자 ‘100조~200조’ 환원 전망 나오는데, SK하이닉스는?
구체성이 부족한 주주환원 정책도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실적 발표 시점까지 “연말 신규 주주환원책 발표”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주가 하락과 시장 비판이 이어지자 지난 7일 시가배당률 0.02%에 불과한 주당 375원의 고정배당과 함께 “3분기 내 신규 주주환원책 발표”로 입장을 바꾼 상태다.
SK하이닉스의 기존 정책은 2025~2027년 3년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증권가는 SK하이닉스의 FCF가 지난해 21조 5000억 원에서 올해 146조 원, 내년 24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올해 FCF만 180조 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산술상 FCF 50%만 가정해도 73조~90조 원에 달하는 주주환원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재 증권가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주주환원 규모는 최대 40조 원 내외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경쟁사 삼성전자는 조만간 발표할 신규 주주환원 정책의 연간 규모가 최소 100조 원에서 최대 2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마이크론은 한발 더 나아가 FCF 100%를 주주환원에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메모리 가격 상승률이 둔화하며 실적만으로 주가 추가 상승이 어려워지는 구간에 접어들었다”며 “LTA로 실적과 현금흐름의 안정성이 확보된 만큼 기업들이 향후 자본환원 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재평가가 가능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8월 내 신규 주주환원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온다. 10일 SK하이닉스가 채권 매수를 급작스레 중단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보유 현금을 채권과 예금으로 돌리는 대신 주주환원에 사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손인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추가 환원이 진행되면서 LTA에 대한 세부 내용 발표 등이 맞물릴 경우 시장에 장기 실적 안정성에 대한 확신을 주면서 구조적인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선 관계자는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은 모두 제시했다”며 “당시는 ADR 상장 직후 규제기간이어서 증권신고서와 다른 내용을 언급할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어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솔리다임 상장과 관련한 비판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주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강화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투명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훈 언론인 journalist@ilyo.co.kr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