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운서에서 영화배우로 변신한 임성민은 데뷔 작부터 만만찮은 윤락녀 역할을 거뜬히 소화해 내고 있다고. 이종현 기자jhlee@ilyo.co.kr | ||
최근 국회 ‘월담’ 파문을 일으킨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바로 열혈 윤락녀. 여배우로서 평생 한 번 맡기도 힘든 배역을 임성민은 첫 번째 작품에서 연기해냈다.
“배우로서 전직 아나운서라는 굴레를 벗고 싶었다”는 출사표를 던진 임성민은 이제 자신의 촬영분을 모두 마치고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똑똑한’ 배우 임성민이 윤락녀 역을 과연 어떻게 소화했을까.
지난 5일 12시, 기자는 궁금증을 잔뜩 안은 채 그녀와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을 30분 넘겨서야 헐레벌떡 도착한 임성민은 연신 “죄송하다”며 미안한 기색이었다. 얼굴빛이 어딘가 안 좋아 보이기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집안에 일이 좀 생겼다”며 또 한 번 미안함을 나타낸다.
‘이거, 인터뷰 전부터 분위기가 다운돼 있으니…’ 내심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안 좋은 일이 있다는데 ‘웃고 떠들라’며 억지주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잠시 뒤 사진기자의 무대 세팅작업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진촬영부터 진행할까요. 의상 한번 봐 주실래요. 어떤 게 좋을까요?” 표정이 내내 어둡던 임성민은 금세 활기 있는 목소리로 스튜디오 분위기를 바꿔놓으려 한다. 그래, 이 분위기야! 슬슬 얘기를 풀어나가 볼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윤락녀 ‘강세영’. 사창가 동료인 고은비(예지원 분)를 국회의원에 출마시키기 위해 발로 뛰는 선거관리위원장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세영은 비록 몸을 팔고는 있지만 ‘아나운서가 되기를’ 꿈꾸는 윤락녀다.
영화사측에서는 애초 기획단계부터 세영 역에 임성민을 ‘찜’해두고 있었단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은 임성민이 “내가 이 역할을 왜 해야 하느냐”며 강하게 거절의사를 밝혔음에도 끈기 있게 그녀를 설득해냈다. “윤락녀라는 역할은 오히려 큰 부담이 되지 않았어요. 어차피 배우로 변신한 이상 어떤 역이든 소화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러나 극중에서 아나운서의 모습을 연출해야 하는 것은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한 장면. | ||
그러나 결국 출연을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 “어차피 제가 그런 이유 때문에 출연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그 이미지에 가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히 결심했죠.” 임성민은 이때부터 매니저와 함께 서울 곳곳의 윤락가를 탐방했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동작, 눈빛 같은 것을 유심히 보았어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차츰 익숙해지더라구요.” 임성민은 직업여성의 삶을 다룬 영화도 열심히 섭렵했다고 한다. <창> <쇼걸> <스트립티즈> 등을 보고 또 보며 흉내를 내보았다.
임성민의 연기에 송경식 감독도 ‘기대 이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임성민 때문에 NG가 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녀는 1백20% 연기에 몰입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장면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임성민은 (노출신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에서 빗나가는 대답을 했다.
“오히려 노출장면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어요. 촬영장에 저말고도 수십 명의 여자들이 전부 야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니 부끄러움도 모르겠더라구요(웃음).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합동유세장면이었어요. 1천5백 명의 군중 앞에서 혼자 울어야 했는데 제 눈에서 눈물이 날 때까지 20분 정도를 모두들 숨죽이며 기다렸답니다.” 결국 한 번에 OK사인을 받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8년차 아나운서’였던 임성민이 사표를 쓰겠다고 했을 때의 부모 반응은 물어보지 않고도 알 만했다. 그런데 의외로 큰 반대를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임성민은 “살면서 제 결정에 아버지가 반대를 안 하신 첫 번째 일이었다”며 “나중에 그 이유를 여쭈어보니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당신께서 너무나 잘 아시기에 절 이해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아나운서로 머물지 못했던 까닭은 아마도 자신의 끼를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사주에도 ‘팔방미인’이라고 나와 있단다. “아나운서는 물론 좋은 직업이죠. 누구나 선망하는. 그러나 제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임성민은 이제 자신에게 맞는 그 무엇을 위해 또 다른 변신을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