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추상미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며 연극무대에 자주 서겠다 고 밝혔다. 임준선 기자 | ||
연극무대에서 ‘처절한’ 연기를 펼치던 추상미는 이제 너무나도 대중적인 스타가 되었다. 나보코브의 <로리타>를 보고 그녀에게 반한 팬들이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을 갖는 이유도 그래서다. ‘나만의 애장곡’으로 그녀를 간직하고 싶었던 이들은 그녀의 매력을 남들과 공유하기가 아깝기만 하다. 그리고 혹시나 그녀가 매스컴의 대중성에 편승하게 될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추상미도 알고 있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후, 그녀 스스로가 잡도리해 온 점이기도 하다. ‘배우로서 당당하자, 돈에 연연하지 말자, 배고픈 연극무대를 잊지 말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고 추송웅씨)의 가르침을 새겨온 추상미는 누구보다 중심이 서 있는 배우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선 여느 여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것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가 풍겨져 나온다.
#2. 그녀는 요즘 초스피드적 사랑에 빠져 있다. 그것도 직장 부하직원과. 더구나 그는 결혼할 여자가 있는 남자다. 서로에 대한 ‘필요성’이 시기 적절하게 이들을 자극했고, 서로에게 ‘필’이 꽂힌 이들은 급격히 연애를 시작한다. 물론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다.
남자는 무덤덤하게 고백한다. “다른 여자가 생겼어.” 이미 이 남자의 아이까지 가져버린 여자의 울부짖음.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 그래.” 도덕성과 양심의 잣대를 들이밀어볼까. 보통의 여자라면 양다리를 걸친 그를 증오하며 그의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겠지만 조민주는 다르다. 이 현실적이고 거리낌없는 여자의 요구는 너무나 당당하다. “누가 우리 사이에 끼어 드는 거 싫어.” ‘그녀’ 조민주가 바로 추상미다.
▲ 드라마 <노란 손수건>에 출연한 추상미. | ||
‘대화가 통하는 남자’라는 담백한 이상형이 조건의 전부. 이제 꽉 찬 서른 살, 적지 않은 나이지만 결혼에 대한 조급함도 없다. “결혼이라면 한 3∼4년 후쯤 하고 싶어요. 그러고 보니 누군가와 사귀어본 것도 꽤 됐는걸요.”(웃음)
추상미를 만나면 많은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두서 없는’ 얘기들을 듣고 싶었다. 다소 딱딱하지만, 그녀의 연기철학은 어떤 것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기파’라는 평에 추상미는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제 연기는 고작 30점 정도밖에 줄 수 없어요. 연기의 깊이를 잴 수는 없겠지만요.” 적어도 70∼80점 정도는 예상했었는데, 추상미는 너무 솔직하고도 명쾌했다.
연극무대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요. 제가 연극무대에 자주 서려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연극은 배우로서의 나를 넓혀주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이러다가 병이라도 걸리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울 만큼 추상미는 요즘 연기에 대한 욕심과 열의가 뜨겁다. 드라마와 함께 부산에서 올로케로 촬영되는 영화 <파괴>도 병행중이다. 더구나 극중에서 맡은 역이 만만치 않아 이만저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고.
추상미는 자살사이트를 운영하는 자살보조업자 S(정보석 분)에게 청부자살을 부탁하는 행위예술가 ‘마라’역을 맡았다.
‘죽음의 퍼포먼스’를 연기해야 하는 예사롭지 않은 역이다. 노출강도도 센 편이라 시나리오를 ‘조율중’이라고 한다. 이미 <생활의 발견>에서 상반신을 드러낸 바 있는 추상미는 노출연기에 큰 거부감은 없는 편.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노출뿐 아니라 다소 엽기스런 장면이 포함돼 있어 고민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양수를 터뜨리는 것과 같은. 그 고민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추상미는 어느 책 속의 글귀를 들려주었다. “연기란 특정한 인물의 영혼을 발견하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