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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친노그룹 중 개혁파 안희정(위), 이강철. (오른쪽) 친노그룹 중 실용파 이광재(위), 염동연. | ||
별반 주목받지 못하던 시기부터 노무현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핵심 측근그룹들이 최근 외연을 넓혀나가면서 내부적으로 미묘한 견제와 갈등 기류가 싹트면서다. 노무현 사람들이란 동질성에 기반해 보조를 맞춰왔던 이들이 오는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고리로 한 여권의 권력구도 재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역할과 선택을 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친노 핵심측근들의 동향이 집중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노 대통령이 ‘동업자’라 표현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안희정씨의 근황과 관련이 깊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과 함께 386 참모그룹의 핵심인 안씨가 불법 대선자금의 ‘짐’을 짊어지고 옥살이를 한 지 1년 만에 12월10일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서다.
안씨의 재등장과 함께 한동안 ‘잊혀졌던’ 다른 노 대통령 핵심측근들의 ‘동선’에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회장’인 이기명씨는 68세 생일인 12월9일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이후 당 지도부에 날선 비판을 계속하며 행동반경을 넓히기 시작했고,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부산 사단’의 중추인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의 ‘복귀설’도 이 무렵부터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정부 고위직 진출설이 나돌던 이강철 전 대선후보 조직특보가 열린우리당으로 향후 활동무대를 옮기겠다고 나선 것도 이 무렵부터다.
여권이 주목하는 것은 이기명-이강철-이호철-안희정씨 등이 캠프 출신 다른 인사들과 비교하더라도 유독 각별한 관계인데다 ‘자의 반(半), 타의 반’으로 그동안 활동에 제약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같은 캠프 출신이면서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탄탄대로를 걸어온 염동연-이광재-서갑원 의원 등과는 대조되는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 여권 주변에선 386 참모그룹의 양대 산맥인 안희정씨-이광재 의원, 시니어 그룹의 양축인 이강철 전 특보-염동연 의원간 오랜 라이벌 관계가 어떤 식으로던 표출될 것이란 예상이 점증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 전 특보-염 의원은 각각 영-호남 친노 그룹을 대표한다는 점, 안씨-이 의원의 경우 여권 내 386세대 중 고려대-연세대 인맥의 ‘중핵’이란 점에다 ‘개혁이냐 실용이냐’의 노선 갈등과 민주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이견이 ‘분화’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선 ‘좌 희정-우 광재’로 불리는 안씨와 이 의원 간에는 현재 외형상 알력의 조짐이 감지되고 있는 것은 없으며 양측 다 “동지적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언에 대해 주변에선 “글쎄…”라는 분위기가 많다. 안씨가 미국 유학계획을 접고 정치재개로 방향을 튼 만큼 활동 영역을 넓힐수록 그동안 ‘독주’ 양상을 보였던 이 의원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제 안씨쪽에는 그의 ‘부재중’ 이 의원이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견제없이 가까운 인사들을 여권 핵심부에 심어왔다는 비판론이 형성되어 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연세대 출신들이 여권 내에서 ‘대약진’한 배후가 이 의원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안씨가 고려대 출신(철학과 83학번)인 점을 감안하면 연-고대간 미묘한 경쟁의식이 느껴질 법한 기류라 하겠다.
안씨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청와대 한 관계자는 “안씨와 이 의원은 과거 ‘노무현 캠프’ 시절부터 서로 다른 역할과 스타일로 입지를 다져온 사람이다. 안씨가 생수사업부터 시작해 궂은 일은 다 떠맡으며 ‘음지’에서 고생했다면, 이 의원은 기획이나 대(對) 언론관계 등 이른바 ‘폼나는 일’만 맡아 왔고 그 같은 상황은 대선 승리 이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안씨가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때가 됐으며, 그 과정에서 그동안 여권 내에 ‘제 사람 심기’에 몰두해온 이 의원과 부딪힌다면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코드 불일치’로 갈등을 빚을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안씨는 대학 시절 반미청년회를 이끌며 고려대 학생운동권의 ‘지하 지도부’로 활약했던 이력만큼 개혁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다. 그의 절친한 대학 후배로 열린우리당 내 대표적인 ‘전대협 세대’인 이인영(84학번) 오영식-백원우 의원(85학번) 등과, ‘후원자’인 이기명 명계남씨 등이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과 관련해 ‘정면돌파’ 주장을 펴고 있는 것도 그의 향후 노선 선택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
반면 이 의원은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 일찌감치 실용주의 노선으로 입장을 정리한 터다. 여권 내 개혁세력으로부터 “너무 보수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의정연구센터를 고리로 전경련 삼성경제연구소 등 대기업과의 교류에 열심이고, 국보법 폐지 등에 대해선 온건론에 서 있다.
안씨와 이 의원간 알력이 아직 ‘설’ 수준인데 비해 노 대통령의 시니어 측근 그룹의 ‘양대 산맥’인 이 전 특보와 염 의원 사이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슷한 연배(이 전 특보 47년, 염 의원 46년생)인 두 사람은 지지기반과 성향, 참여정부 출범 후 ‘부침’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대척점에 놓여 있다는 평가다.
우선 출신과 지지기반 면에서 대조적이다. 노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시절부터 동지인 이 전 특보가 ‘반 김대중(DJ)’ 노선으로 일관하며 97년 대선 때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던 전력을 갖고 있는 반면 염 의원은 DJ 가신그룹인 동교동계 출신이다. 여기에 대구 출신인 이 전 특보가 영남 친노그룹의 핵심인데 반해 염 의원은 호남 정치권의 새로운 ‘맹주’를 넘보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행로도 서로 엇갈렸다. 2002년 대선 말미에 터진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으로부터 2억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코너에 몰렸던 염 의원은 결국 2003년 4월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그해 10월 보석으로 풀려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 행보가 크게 위축된 바 있다.
그러나 염 의원은 4·15 총선에서 지역구(광주 서 갑)에서 당선돼 재기에 성공했고, 차기 열린우리당 전대에서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반면 이 전 특보는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강경론을 주도한 데 이어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엔 영입추진단장을 맡으며 ‘실세 중의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등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는 4·15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뒤엔 이렇다할 역할을 찾지 못한 채 정치적 시련을 겪어 왔다. 한때 청와대 인사수석, 국정원 제 1차장 등 핵심 포스트를 맡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나돌았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없던 일’이 되어 버린 상태다.
이처럼 상반된 길을 걸어 온 두 사람 사이는 최근 차기 열린우리당 지도부 경선 참여와 민주당과의 통합론을 계기로 갈등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염 의원이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을 공약으로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자, 이 전 특보측이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나서면서다.
이 전 특보로선 ‘호남 맹주’를 노리는 염 의원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전면에 내걸고 당권 행보를 계속할 경우 자신의 기반인 영남권에서 가뜩이나 취약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더 떨어질 것이 뻔한 만큼 동조할 수 없는 처지. 여기에 권력 핵심부로의 진입을 노리던 이 전 특보의 노력이 좌절된 배경에 여권 내 호남그룹의 ‘보이지 않는’ 태클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대두되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내에선 이 전 특보가 돌연 차기 지도부 경선에 출마할 뜻을 밝히고 나선 이유를 염 의원의 당권 행보와 연관짓는 시각이 많다. 이미 총선 후 원내대표 경선과 영남발전특위 논란을 거치며 서로 대척점에 섰던 두 사람이 이번엔 당 지도부 진입을 놓고 격돌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라 하겠다.
이면에는 상대적으로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 당권파와 가까운 염 의원과, 민청학련 출신으로 재야-개혁당 그룹 등과 각별한 사이인 이 전 특보간 ‘코드의 차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이준원 언론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