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철 전 특보(왼쪽), 정찬용 인사수석 | ||
여당에선 특히 호남 출신 인사들은 정 수석의 유임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호남소외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청와대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호남 출신 인사 중 대표주자인 정 수석이 물러나게 될 경우, 호남 민심이 또다시 술렁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정 수석 ‘유임설’이 ‘퇴임설’보다 우세한 분위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 전 특보의 인사수석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는 1월 중순께에 정부 3∼4개 부처와 청와대 비서진 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각 규모와 비서진 개편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최근 정치권에선 차기 청와대 비서실 인사와 관련해 영호남 세력간에 기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정치권의 영호남 인사들은 청와대 인사수석이 교체될지 여부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호남소외론’ 등으로 호남 민심이 이반되는 상황에서 현재 인사수석을 맡고 있는 호남 출신의 정찬용 수석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친노그룹’에 속하는 열린우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호남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다면 인사수석 자리를 영남 인사로 바꾸겠느냐”며 정 수석이 유임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정 수석의 자리는 호남 인사 배려 차원에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인사수석이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는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왕특보’로 불리는 이강철 전 특보가 인사수석 자리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지난 여름부터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전 특보는 지난 총선에서 대구에서 출마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면서 칩거생활을 하며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그를 가리켜 ‘영남권의 좌장’이라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특히 이렇다 할 만한 당직을 맡은 것도 아니고 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닌데 ‘TK(대구 경북) 실세’라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 전 특보가 요즘 들어 눈에 띄는 외부 활동을 벌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 전 특보는 지난 12월20일 노 대통령의 ‘왼팔’인 안희정씨의 출소 환영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날 자리에는 노 대통령의 ‘오른팔’인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을 비롯해 염동연·서갑원·백원우 의원 등 ‘친노그룹’이 참석했다.
그는 이보다 앞선 지난 12월10일에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2시간 이상 단독 면담을 했다. 총선 이후 은인자중하던 이 전 특보의 보폭이 최근 들어 부쩍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오고갔던 구체적인 대화 내용에 대해선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추후 자신의 거취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이 전 특보가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만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이 전 특보가 차기 청와대 인사수석에 대한 애착을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정치권에선 총선 이후부터 이 전 특보가 인사수석 자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다.
이에 대해 호남 출신인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호남 지역 민심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인사수석 자리마저 영남 인사로 교체된다면 호남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찬용 수석이 ‘청와대 내의 호남 상징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 전 특보의 인사수석에 대한 애착에도 불구하고, 정 수석이 유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정 수석과 가까운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 등 여당 내 호남지역 의원들이 정 수석이 유임되길 바라고 있다는 전언이다. 여당이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해나가는데에서도 정 수석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의 좌장’이자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염 의원은 지난 11월 말 옛 민주당 당료와 장·차관 출신인 열린우리당 김기석·김낙순·박기춘·윤원호·조경태 의원 등 32명과 함께 ‘월요회’를 결성했다. 그는 “오는 4월 전당대회 지도부 경선에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고 출마하겠다”며 “오는 4월 재·보선 이후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늦어도 2006년 초까지는 합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 수석은 차기 청와대 비서진 교체 대상에서 제외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으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정 수석이 당분간은 ‘장수’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올해는 인사수석에 앉아 민주당과의 합당을 위한 가교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다음 올해 말이나 2006년 초에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청와대에서 나오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기 2년을 앞두고 있는 정 수석은 한때 교체설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총선 출마를 권유했으나, 그가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인사수석이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것.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이 총선 이후 복귀하면서 청와대 내의 영남 인사들이 정 수석을 견제해왔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면서 후임으로 이 전 특보가 물망에 올랐었다. 이 전 특보 본인도 노 대통령에게 인사수석 자리를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특보에 대한 호남 인사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 또한 정 수석이 갖고 있는 호남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이 전 특보가 4월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지도부 경선에 나갈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영남권의 한 인사는 “이 전 특보가 ‘TK의 좌장’으로 당 의장 당선은 힘들더라도 최소한 당 상임중앙위원으로 선출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론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는 이 전 특보는 가타부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전 특보의 한 측근은 “현재로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1월에나 (이 전 특보가) 거취를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만 말했다.
일각에선 정 수석을 차기 개각에서 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신 인사수석에 이 전 특보 등 영남 인사를 임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호남의 상징’으로 떠오른 정 수석에게 인사수석에 상응하는 장관 자리를 주면서 호남 민심의 동요를 최소화한다는 것. 과연 노 대통령은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