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갈등은 여야의 대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바탕이 되지 않는 한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점에서 2005년 을유년에도 갑신년 못지 않은 정치적 이벤트가 계속해서 일어날 전망이다. 먼저 여당의 대권 후보에 영향을 미칠 전당대회가 정치 소용돌이의 ‘신호탄’이 될듯싶다. 여권이 재보궐선거 필승카드로 꼽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최대 이슈 중 하나. 여기에 ‘또하나의 총선’이라 불리는 재보궐 선거도 관심 있게 지켜볼 사안이다. 연말에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2005년 을유년에 펼쳐질 정치 파노라마의 주요 장면을 미리 진단해봤다.
우리당 전당대회
2005년 정치 이벤트 가운데 먼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열린우리당의 전당대회다. 우선 4월 전당대회에서 뽑힐 열린우리당 제2기 지도부는 “계파간 황금분할과 개혁과 실용주의가 적절히 안배된 안정적 통합형”(민병두 기획조정위원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선 본다면 ‘천신정’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계열의 재야파 중의 한 세력으로 힘 쏠림이 일어날 가능성보다는 친노그룹이 세력 분점의 중심에 서서 당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당내 최대 계파를 형성하고 있는 당권파 재야파 모두 차기 주자 경쟁에 성급하게 불을 지핀다면 자칫 공멸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번 당권 경쟁에서는 친노 세력과 적당한 세 분점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당 의장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명되고 있는 인사는 김혁규 의원이다. 특히 김 의원은 TK세력의 ‘대부’인 이강철 국참본부장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에 고무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한 김 의원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제휴설로 흘러나온다.
당권경쟁에서 당권파와 김혁규 의원과의 제휴설이 세를 얻자 재야파는 유시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당파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재야파와 개혁당 그룹의 연대가 성사될 경우 두 계파가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기간당원이 전체 기간당원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지도부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문희상 염동연 한명숙 의원 등이 자천 타천으로 당의장 후보 명단에 올라 있다.
▲ 2004년 1월에 열린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전경. 올 4월 전당대회는 정계 소용돌이의 ‘신호탄’이 될 듯싶다.(맨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은 성사될까. 사진은 합성한 것.(가운데) 지난 2004년 7월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 전경.(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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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는 지난 7월부터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얘기가 꾸준히 나돌았다. 여권이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고 노 대통령의 침체된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있는 절호의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권 고위 관계자들이 정상회담 필요성을 계속 언급하자 회담 개최가 기정사실화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북측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외교분야의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중국 등지에서 남북간에 비밀접촉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남측에서 장관을 보낸다면 북측에서는 실무국장 정도를 협상 파트로 내보낼 정도로 북쪽이 정상회담에 대해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조심스런 접근자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상회담이 가능만 하다면 시기, 장소 안 가리고 수용할 의향이 있다”라며 정상회담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상회담 3월 개최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이 재보궐 선거 필승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중인데 남북정상회담도 유력한 카드의 하나로 쥐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0년 4월 총선 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지만 그 결과는 여권의 참패로 이어졌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설령 2005년 3월에 정상회담이 개최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당-민주당 합당
열린우리당이 재보궐 선거 필승을 위해 또 하나 공을 들이는 것이 민주당과의 합당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영국 방문중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한껏 호감을 표시하자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여권의 공식적인 구애작전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여기에 지난 12월24일 성탄 전야를 맞아 이훈평 전 민주당 의원이 형기만료 한 달을 앞두고 가석방되자 이런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권의 한 핵심 인사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건의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인사는 김 비서실장에게 ‘2005년년 4월2일 여당의 전당대회 이전에 통합이 이뤄져야 하고, 통합의 방식은 당 대 당 합당 방식이 돼야 하며, 노 대통령이 직접 양당 통합 움직임에 나서야 한다는 등의 통합 3원칙’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내용을 보고 받고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 “시기가 문제”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난관도 많다. 먼저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합당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다수의 의원들이 합당에 찬성하고 있지만 한 대표만이 유독 “권력이 없어지면 끝날 정당과 통합해서 같이 갈 생각은 없다”며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소장파 의원들도 정체성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민주당과의 통합을 꺼리고 있어 양측이 공통분모를 찾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재보궐 선거
열린우리당은 선거법 위반에 따른 당선 무효형 의원들이 늘어남에 따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상락 전 의원이 금배지를 박탈당한 데 이어 김기석 김맹곤 의원이 줄줄이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앞으로 모두 7명의 의원들이 금배지를 잃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여당 의석은 1백46석으로 줄어들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게 된다. 반면 한나라당은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의원이 이덕모 의원 한 명밖에 되지 않아 느긋한 표정이다.
여당이 과반수 ‘수성’에 실패하게 되면 원내 주도권을 상실하게 돼 참여정부의 개혁작업은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이상락 전 의원이 국회를 떠나 ‘1석’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2005년 4월 실시될 예정인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당의 지지도가 여전히 기대 이하를 맴돌고 있어 고민이 깊다. 일부에서는 과반 확보를 위해 ‘야당 의원 빼내오기’ 등의 방안도 검토될 가능성이 있지만 문희상 의원 등 여권 핵심 인사들은 “참여정부에선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다.
한편 정장선 당 의장비서실장은 “특단의 재보선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앞서 언급한 남북정상회담과 민주당과의 재결합 등이 그 비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재 극심한 내분에 휩싸여 있다. 특히 지난 법사위 투쟁 과정에서 보수-진보파 의원들의 갈등이 감정적인 수준으로까지 발전해 당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표는 2005년 새해를 한나라당 정권 재창출의 원년으로 삼고 강력한 개혁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개혁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당의 분화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현재 한나라당 내에는 분당을 기정사실화하는 쪽과 그에 반하는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다. 중진 의원들 중 일부는 박 대표의 본선 경쟁력을 믿지 못하고 “언젠가는 둘로 쪼개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박 대표 카드로는 차기 대선에서 역부족이다. 지금까지 확실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해 의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대선 전까지 관리자로서의 역할에 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박 대표는 대중성이 확보된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현재 당내에서 확실한 지지를 못 받고 있지만 2007년 대선 때까지 정치권의 상수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수많은 분당설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극복하며 생명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한나라당의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이 깨질 것 같으면서도 깨지지 않았던 것은, 좋게 말하면 화합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그때그때 현실에 타협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분당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새롭게 출발하며 총선에서 승리하지 않았나. 한나라당이 과연 현재의 구태를 깨고 재 창당 수준으로까지 새롭게 태어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개헌론
한국 정치에서 가장 주요한 화두 중 하나는 정권 창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문제다. 지난 87년 10월29일 제9차 개헌을 통해 권력구조가 5년 단임제로 결정됐지만 총선과 주기가 맞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단점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그 동안 끊임없이 개헌론이 제기되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를 임명한 이후 ‘분권형 국정운영’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일단 현행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원집정부제 또는 내각제 요소를 최대한 살려 권력분산 실험을 해본 뒤 그것이 성공을 거둘 경우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제든 개헌을 논의해보자는 취지”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2005년 말쯤에 개헌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2006년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정치권은 개헌이라는 큰 틀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권력 구조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체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러닝메이트를 활용해 호남에 치우친 기반과 개혁주의의 약점을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 대표가 6년 단임 정·부통령제를 기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영남권의 일부 보수 성향 의원들은 내각제를 선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