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부족하다면 당신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은 오로지 비디오테이프의 겉표지가 아닐까. 그 영화가 상영중일 때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던 포스터 말이다. 단지 포스터만 보고도 흥미를 느꼈던 영화가 분명 있었을 것이며, 그중 몇몇 포스터들은 영화보다 더 인상적이어서 우리의 뇌리에 남아있기도 하다. 영화팬들을 사로잡은 엽기적(?)인 포스터들에 얽힌 후일담을 들어보았다.
영화의 흥행에 이어 비디오 대여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색즉시공>. 주인공들의 취미활동이 흥미로운 만큼 포스터 역시 재미만점이다.
‘풍기문란 섹스코미디’를 표방하고 “애들은 가라”는 태그라인을 내건 <색즉시공>의 포스터 속에서 임창정은 본격적으로 차력사로 분했다. 그러나 임창정이 밧줄에 묶인 1톤 트럭을 끄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오로지 포스터 속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가하면 하지원은 바니걸처럼 ‘토끼’ 모양의 헤어밴드까지 하고 나섰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색기’ 넘치는 포즈를 연출해야 했던 하지원은 ‘웃느라’ 수도 없는 NG를 냈다고 한다. 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차림이 어색해 내내 자연스런 표정을 지을 수 없었던 것.
<색즉시공>에 이어 한국영화 열풍을 몰고 있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도 주연배우들의 엽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포스터 속에서 김하늘이 권상우의 귀를 ‘깨물어 뜯고’ 있는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실감나게 보이도록 김하늘이 단지 귀를 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어서 당겨야 했기 때문에 촬영에 더 어려움이 많았다. 더구나 한쪽 귀만을 물린 권상우는 나중에는 귀가 빨갛게 변해 아픔을 호소했다고 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포스터를 촬영한 윤형문 사진작가는 “김하늘씨가 못한다고 하면 어쩌나 사실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멈칫멈칫하더니 나중엔 ‘적극적’으로 해서 촬영이 재미있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엽기’의 원조격인 <엽기적인 그녀>의 포스터 또한 만만찮다. 전지현과 차태현이 자장면을 나누어 먹는 바로 그 장면이다. 근처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해놓고 불기 전에 찍느라 애 좀 썼다고.
제작사인 신씨네 김수연 대리는 “지저분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보이도록 하느라 힘들었다”면서 “일부러 자장면 한 가닥을 집어서 두 사람이 물어보기도 하고, 조금씩 먹다가 가닥이 남았을 때 찍기도 하고 꽤 여러 컷을 찍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행히 한 그릇으로 두 시간여 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18일 개봉예정인 <오! 해피데이>의 포스터도 이색적이다. <킹콩> 포스터를 패러디한 것.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장나라 버전’으로 박정철이 장나라의 손에 쥐어져 옴쭉달싹 못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실제로는 장나라가 조그마한 인형을 손에 쥔 채 먼저 촬영하고, 후에 박정철이 포즈를 취해 촬영한 후 합성했다고 한다. 홍보를 담당한 올댓시네마 양은진씨는 “두 배우 모두 표정이 풍부해 촬영이 의외로 쉽게 끝났다”며 “포스터 속 장나라씨의 깜찍한 머리는 꼼꼼하게 붙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