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주목할 것은 현재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이른바 ‘스타급 탤런트’의 상당수가 비회원이라는 사실. 만약에 이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드라마 출연금지’ 압력을 받을 경우 반발이 예상돼 방송가에 파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탤런트협회는 올해로 33년째를 맞는 탤런트 최대의 권익단체. 가입 회원이 1천5백여 명에 이르고 다수의 중견 탤런트들이 협회 활동을 하고 있어 그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김주승 이사장은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본격적인 내부 개혁과 함께 비회원들의 협회 가입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드라마 출연 금지’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전체 탤런트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협회가 탤런트들의 보다 탄탄한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지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급 탤런트들 중 상당수는 협회를 외면하고 있어 협회 운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또한 이러다 보니 ‘스타급 비회원’과 ‘무명급 회원’ 사이에 은연중 갈등과 앙금도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적은 출연료에도 그간 가입비는 물론 회비까지 꼬박꼬박 내고 출연료의 0.1%까지 협회에 납입해 온 무명급 회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
영화배우이자 탤런트 K씨는 “일년에 한 번도 고정 배역을 맡기 힘든 현실에서도 협회활동을 하고 있는데, 1회 출연료만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회원 탤런트가 있다는 건 협회에 가입한 것 자체를 회의하게 만든다”고 토로했다.
무명급 탤런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출연료를 받으면서도 협회를 외면하고 있는 상당수 ‘스타급 비회원’들에 대한 회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 특히 대다수 탤런트들은 자신들이 한계를 지닌 ‘개인사업자’이며 따라서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때문에라도 더욱 더 협회 차원의 권익 보호가 절실하다는 점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협회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스타급 탤런트가 이를 외면한다면 이런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협회도 보다 확실한 내부 정비를 위해서 그간 받아오던 월회비(3천원)와 납입금(출연료의 일부) 수납을 중단한 상태. 다만 기존의 특채 가입비를 60만원에서 1백만원으로 올리고 공채 가입비는 무료로 변경해 놓았다.
결국 이런 다양한 원인들이 겹쳐 탤런트협회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출연금지’라는 마지막 카드를 빼내들 채비를 갖추고 있는 것. 그러나 협회에서 직접적으로 특정 탤런트에 대해서 ‘드라마 출연 금지’라는 ‘명령’을 내릴 방법은 없다. 협회 자체가 법적 강제력을 지닌 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함께 드라마에 출연하는 회원들의 도움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한 모종의 계획을 세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A라는 드라마에 비회원 연기자 2명이 출연하고 회원 연기자 5명이 출연한다면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회원 연기자들이 ‘비회원 연기자들과의 출연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출연에 제동을 거는 방법이다. 현재로서는 전체 협회원이 스타급 비회원보다 월등하게 많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되면 방송계 내에 파문이 일 것은 뻔한 일. 회원과 비회원 간의 갈등은 물론 매니저, 기획사와 탤런트협회 간의 갈등이 겹쳐지고 여기에 드라마 제작에 차질을 빚는 방송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비회원 유명 탤런트는 의외로 많다. 최근 종영된 SBS <올인>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송혜교, 영화와 방송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장나라, CF스타 김남주, MBC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에 출연중인 소유진, ‘살인미소’ 김재원, KBS <저 푸른 초원 위에>의 채림을 비롯해 공효진, 유승범, 유준상 등도 모두 비회원으로 알려졌다.
협회의 이런 움직임이 전해지자 비회원 탤런트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회원 가입 여부는 개개인의 의사인데 강제성을 띠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탤런트들도 있다. 반면 “이 기회에 가입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이들도 있었다.
탤런트 송혜교측의 한 관계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가입을 안한 것은 아니다. 만약 금지 조처가 내려지면 당연히 가입해야 하지 않겠냐”고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방송가 일각에서는 ‘일부 기획사들이 탤런트에 대한 장악력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협회 가입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기획사는 협회가 큰 도움을 주지도 않는데 굳이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협회가 전면에 나서면 이래저래 기획사에서는 피곤한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 형식적으로 협회 가입은 할 수 있겠지만 양자의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 연예기획사의 관계자는 “탤런트협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출연금지까지 하겠다는 것은 너무한 거 아니냐”며 불쾌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방송사측에서는 이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기만 바라고 있는 입장. K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탤런트들 간의 일이기 때문에 방송사로서는 지금은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출연금지 조치가 시작되면 아무래도 드라마 제작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 중재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드라마 제작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방송사측이 보다 강력한 대처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일각의 관측이다. 물론 탤런트협회에서도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하게 접근할 계획이다.
김주승 이사장은 “협회가 먼저 올곧게 서야만 앞장서서 탤런트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출연금지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우리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선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해서 잡음 없이 일을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협회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자질이 부족한 탤런트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자정운동’을 벌일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어 향후 협회의 활동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