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모 PD는 가방 속에 늘 안경과 선글라스를 지니고 다닌다. 이른바 ‘변장용’인 것이다. 그래서 고발 프로그램 PD들은 ‘양심수’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양심에 따라 프로그램을 제작하지만 박해(?)를 받기도 한다는 의미다. 최근
근래 들어 시사고발 프로그램 PD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점차 취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개인들의 권리의식이나 기업의 대응전략이 한층 세련되고 고도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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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모자이크로 떡칠하는’ 경우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반면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찜찜한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PD 개인에 대한 협박도 다반사다.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던 이아무개 PD의 경우 일주일 동안이나 지속적으로 협박을 당했다. 사무실, 휴대폰은 물론이고 어떻게 알았는지 집에까지 전화를 해서 괴롭게 만들었다고 한다. 새벽 3시에 전화를 걸어 천연덕스럽게도 ‘이○○ PD 주무시냐, 좀 바꿔달라’고 하는 통에 가족들까지 노이로제에 걸렸을 정도.
윤아무개 PD의 경우 가방 안에 아예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넣고 다닌다. 수시로 가해지는 협박 때문에 대낮에도 항상 모자를 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겨울철에는 마스크가 필수 품목. 또 윤 PD는 아무리 높은 건물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밀폐된 공간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폭행의 위협 때문에 늘 계단을 이용한다고. 이 정도면 PD라기 보다는 ‘도망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을 취재할 경우 대기업으로 갈수록 대응하는 방식도 한층 치밀하고 정교해졌다고 한다. 예전처럼 단순히 인맥·학맥을 통한 ‘방송 저지’ 로비에 의존하기보다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고 이를 반영하도록 ‘압박’하는 추세라는 것.
KBS <추적60분>에서 최근 ‘유사휘발유 세녹스 논쟁’을 다뤘을 때 모기업에서는 증빙서류가 첨부된 공식적인 문건을 들고 왔다. 문건에는 이 논란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와 입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한편으론 자신들을 피하기보다 정보를 제공해줘 오히려 고맙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확한 방송을 하지 않으면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첨예한 다툼이 있을 경우 당사자들은 관련 문건을 여타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전달한다고 한다. ‘증인’을 확보하고자 하는 심산이다. 또 소송을 걸 때도 방송국-책임프로듀서(CP)-담당PD를 줄줄이 엮어 고소를 한다. 그래야만 다른 PD들이 자신들에게 ‘덤비는’ 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그렇지만 PD들이라고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당사자들의 주장이나 제공된 정보를 검증하기 위한 피말리는 노력이 이어진다. 방송국 일각에서는 고발프로그램에 대한 전담 변호사를 두어 각종 소송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견도 있는 것이 사실. 하지만
취재 자체가 무척 힘들기 때문에 이를 견디지 못하고 고발 프로그램을 떠나는 PD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여타 프로그램과 다르게 PD들이 직접 출연하고 더빙까지 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애초에 연기자나 성우가 아니기 때문에 익숙지도 않고 따라서 녹화 중 NG도 많이 낸다는 것. 세트장이 다소 어둡고 세련된 것도 바로 이런 점과 관련이 있다. PD들의 심리적 부담감과 사소한 실수를 다소나마 ‘커버’하겠다는 계산이다.
소송과 협박, 사생활보호, 녹화의 어려움 등 제작과정은 산 넘어 산이지만 의미 있는 방송을 했을 때 이들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하다. <추적60분>의 이영돈 CP는 “방송을 통해 유괴범을 잡기도 하고 대중들의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고발 프로그램의 중요성이 있다”며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제작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