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지난 7일 시화호 수색 중 시신의 양 손과 발을 발견했다. 아래 지도는 사체 발견 지점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시화호는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등으로 둘러싸인 인공호수다. 1987년 5월에 착공해 대부도와 화성을 잇는 불도, 탄도, 대선방조제가 1988년에 완성됐다. 1994년 1월 시흥시 오이도와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를 잇는 주방조제가 완공되면서 탄생했다. 호수의 명칭은 방조제의 양끝인 시흥시와 화성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 최근엔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는 곳’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일요신문>이 찾은 그곳은 스산하기만 했다.
“뒤숭숭해요…. 안 그래도 그쪽엔 새벽 되면 사람 하나 없습니다.”
지난 7일 오전 사건 현장인 방조제로 가는 길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내뱉은 말이다. 이어 그는 “거긴 CC(폐쇄회로)TV도 없어서 휑하다”며 “최근 외국인이 급격하게 유입됐다. 틀림없이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범인은커녕 피해자 신원도 확인이 안 된 상황에서 사건을 꿰뚫어본 셈이다. 오이 선착장으로 들어갈수록 시화지구개발사업 기념공원이 주는 평화로움과는 사뭇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4차선 도로는 말끔히 정비돼 있었지만 방조제 쪽은 차량 한두 대만 달릴 뿐 인적이 드물었다.
방조제 왼쪽으로는 시화호가 있었고 오른쪽엔 송도신도시가 희미하게 보였다. 오전 10시 15분, 수색 현장에 도착하자 멀찍이 샛노란 점들이 무리지어 해안가 곳곳을 수놓았다. 그 노란 점이 바로 경찰 수색대원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직후)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5㎞씩 11개 권역으로 나눠 수색하고 있다. 출동한 경찰 숫자만 무려 354명”이라며 “썰물 때에 맞춰 1시간 동안 시신을 찾고 30분 정도 쉰다”고 설명했다. 수백 명의 경찰이 약 20명씩 일렬로 길게 늘어서, 막대기로 물이 빠진 돌 틈 사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살피고 있었다. 해안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는 잠수복을 입은 경찰들이 갯벌에 발을 푹푹 빠뜨렸다가 다시 빼는 움직임을 반복하며 수색에 열을 올렸다.
“야, 줄 가져와, 빨리!”
10시 30분경, 갑자기 경찰 고위 관계자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줄은 ‘폴리스 라인’을 뜻했다. 곧 흰색 마스크를 끼고 온몸을 비닐로 감싼 과학수사대가 모여들었다. 수십 명의 경찰들은 두 줄로 도열해 그 지점을 빙 둘러 이중의 벽을 쳤다. 시흥경찰서장을 포함한 10명 남짓의 경찰들이 그쪽으로 향했다. 전날 시신의 머리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8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부인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로 체포된 김하일. 채널A 뉴스 캡처.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인근 매점 점주는 “처음 몸통이 나왔을 때 일주일간 장사가 안 됐다. 범죄를 저지른 XX들은 차라리 산에 묻어버리면 되는데 왜 이리 경찰들을 고생시키는지…”라며 격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역 토박이라는 다른 주민은 “전과자들이 이쪽으로 많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강간범의 몽타주가 있는 우편물을 한 달에 한 번씩 받는다”며 “저쪽 선사 유적지 개발지역은 출입구가 열려 있어 낮에도 들어가 무슨 짓을 해도 모를 거다”라고 설명했다.
오후 2시쯤 밀물 때가 다가오자 경찰은 철수했다. 취재팀은 방조제를 빠져 나와 오이 포구 해양관광단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 시간이라 인적이 뜸했다. 또 다른 지역 주민은 “여긴 진짜 살벌하다. 하루살이 동네다. 이 동네만큼 사건사고 많이 터지는 데 별로 없다”며 “자살인지 모르겠지만 한 달에 집안에서 3명이 죽는다는 소문이 있다. 경찰들 대여섯 명이 한 차로 왔다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시화호 인공섬 건설현장에서는 목이 잘린 우 아무개 씨(42)의 시신이 발견됐지만 지금까지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다. 2008년엔 군자천 군자8교에서 시화호로 유입되는 하류 부근에서 안양 초등생 납치 피살사건 피해자의 시신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시화호 지역은 CCTV도 없고 차나 자전거로 접근이 용이해 교통도 편하다. 사체 유기를 하려는 범인들이 시화호 쪽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시화호 인근은 몇 개의 자치단체가 경계를 같이 하고 있어 관할 구역이 애매하다. 유동 인구가 많아 사회적 감시 기능도 굉장히 허술하다. 안정된 지역사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시 기능이 없다.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난 8일 시흥경찰서 수사본부는 ‘시화호 토막살인 사건’의 용의자 김하일(47·중국국적)을 살인 및 시체유기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김 씨는 지난 1일, 자신의 원룸에서 부인 한 아무개 씨(여·42·중국국적)의 잔소리를 참지 못해 그녀를 둔기로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튿날 그는 원룸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자전거를 이용해 시신의 몸통을 시화멀티테크노밸리(MTV) 공사 현장 인근에 버렸다. 머리와 양 손·발은 시화방조제의 대부도 방향 쪽 해안가에 유기했다. 김 씨는 시신의 양 팔과 다리를 가방에 담아 조카가 사는 건물 옥상에 유기했다가 미행하던 경찰에 검거됐다. 김 씨는 범행사실을 감추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다며 “당시 비가 와서 방조제 근처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