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의혹에 휩싸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중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가운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4월 21일 정부서울청사 국무회의장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정부 안팎에서는 최경환 부총리가 하반기에 정치권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부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 부총리의 리더십과 장악력을 경험한 기획재정부 고위급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정부부처 장관들이 ‘식물 장관’으로 낙인찍힌 가운데 최 부총리는 연일 비중 있는 정책적 발언을 쏟아내며 이슈메이커로 부상했다. 경제부총리 취임 시점도 좋았다. 세월호 정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데다 선거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제부총리 자리가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활동해 온 그의 입장에서는 외도하기에도 적절한 위치였다. 정홍원 총리가 사실상 국정운영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모든 정책적, 행정적 지휘권도 유지할 수 있었다.
경제뿐만 아니라 복지, 고용, 교육, 물가까지 모두 자신의 입에서 정책이 결정됐다. 산업, 금융계의 폭넓은 인맥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부처 장악력이 최근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최 부총리가 각 부처가 담당하는 역할을 모두 소화하다보니 정작 부처 장관이나 고위 관계자는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실무부처에서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기권 고용부 장관은 노동개혁이라는 사회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최 부총리에 가려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주요 언론이나 사회단체도 이 장관의 발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노사정위원회 결렬 이후 이 장관의 입지는 더욱 축소되고 있다.
환경부도 신차를 구입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과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인 ‘저탄소차협력금’을 오는 2020년으로 연기했다. 이 배경에는 최 부총리가 기업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환경부를 강하게 압박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최 부총리 취임 후 ‘기획재정부 국토교통과’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부동산 관련 정책이 최 부총리 발언에서 시작되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경제정책 효과를 내지 못한 부분도 단점으로 꼽힌다. 과감한 정책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시장은 여전이 냉랭하다. 정부의 정책에 불신이 높아지면서 최 부총리의 발언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부총리가 취임 후 상승한 기대치는 연말정산 파동과 노동개혁을 거치면서 하락하고 있는 점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만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최 부총리의 향후 행보는 탄탄대로라는 관측이 높다. 우선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로 일찌감치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취임 후 최 부총리는 정책적으로 사사건건 부딪쳤다. 둘 모두 당 최고위원까지 거쳤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심리전이 치열했다.
최 부총리 입장에서는 그동안 추진한 자신의 정책이 이 총리로 인해 어긋나는 것을 경계했다. 이 총리는 또 다른 ‘실세인’ 최 부총리를 견제하겠다는 의욕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한 달 남짓 ‘적과의 동침’은 최 부총리의 완승으로 끝났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최 부총리의 행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라며 “정치권으로 복귀하더라도 존재감은 확실히 다를 것이다. 다만 경제부총리로 경제 정책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것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 부총리의 당 복귀 시점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서는 당에 복귀해야 하는 시점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정치권 복귀에 초점을 맞춰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 부총리는 최근 곳곳에서 발생하는 변수에 민감한 모습이다. 특히 구조개혁이 생각처럼 되지 않자 공식석상에서 노동계를 겨냥한 작심발언도 서슴지 않고 한다. 정치권 복귀 전에 해결돼야 총선뿐만 아니라 향후 행보에서도 플러스 요인으로 남는다.
6월 추경론이 거론되는 것도 최 부총리가 9월 정치권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난해 최 부총리는 7월에 취임하자마자 경제 상황을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세월호 이후 급격히 하락한 소비심리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잘못하면 장기 불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도 최 부총리는 지난해 추경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다. 정부가 끌어 모을 수 있는 재원만으로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는 정부가 생각한 것처럼 경제 회복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경제 회복에 대한 불신이 이어지자 최 부총리는 그동안 쥐고 있던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16~2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통과기금(IMF) 춘계대회에서 한 해외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올해 처음 ‘추경’을 언급했다. 최 부총리에게 추경은 ‘양날의 칼’이다. 정치권으로 돌아갈 경우 추경으로 인한 책임 소재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넘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최 부총리는 지금이 추경을 꺼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벌써부터 6월 추경론과 더불어 6월 복귀설까지 나돌 정도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최 부총리의 추경 언급은 당 복귀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굳이 지금 시점에서 추경 카드를 꺼내들 이유가 없다”며 “다분히 정치적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추경으로 인해 자신이 부총리로서 경제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성완종 리스트’의 직격탄을 맞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고참급의 힘 있는 정치인이 절실하다는 시각이다. 최 부총리의 복귀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다만 이완구 총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최경환 부총리의 계산에 미묘한 틈이 생겼다. 청와대에서는 총리 인선이 늦어질 경우 최 부총리를 총리 대행으로 보낼 수 있다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유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