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통폐합 등 대학 구조조정 개혁안을 두고 교수들과 갈등을 빚던 박용성 전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박 전 이사장은 또 다른 이메일에서 중앙대 교수비대위를 화장실 변기를 뜻하는 ‘Bidet委(비데위)’로 비아냥거리는가 하면 비대위 교수들을 ‘조두(鳥頭)’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박 전 이사장은 거침없고 직설적인 화법이 장점으로 꼽히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 막말 파문과 동시에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것은 박 전 이사장의 저돌적인 화법을 감안하더라도 그 내용이 꽤 충격적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대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박 전 이사장의 과오는 학과 통폐합과 박 전 총장의 비위 의혹 등 안 그래도 안팎으로 시끄러운 중앙대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전 총장 비위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고 재단에도 불똥이 튈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거침없는 박 이사장이라도 지금은 논란의 중심에 서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평소 박 전 이사장의 언행으로 봤을 때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했다고 하더라도 사퇴가 곧 학내 구성원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볼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중앙대 교수협의회와 비대위도 박 전 이사장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김누리 교수대표비대위원장은 “두산 재단이 들어서면서 박 전 이사장이 교수간담회에서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손목을 자르고 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이런 식의 막말은 항상 있어왔다”며 “지난 2월 말 학과제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도저히 개편안으로 생각할 수 없는 학사구조개편안을 교수와 학생 간 일절 협의를 하지 않은 채 발표했다. 거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교수들과 비대위를 ‘변기’, ‘조두’, ‘동네 개’라고 조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이사장은 본디 파격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재계의 입’, ‘미스터 쓴소리’로 통하기도 했다. 박 전 이사장의 저돌적이고 솔직한 화법은 국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18대 국회 국정감사에 박 전 이사장이 대한체육회 회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당시 하나회 출신인 정정택 신임이사 선임을 두고 전문성에 대해 질의를 하니 박 전 이사장이 ‘모른다’도 아닌 ‘관심이 없다’고 대답해 당시 의원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며 “누구라도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질의를 받으면 움츠러드는 모습이 보이기 마련인데 박 회장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질의에는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가며 설득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재계와 노동계를 향한 박 전 이사장의 직설화법은 유명하다. 박 전 이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알짜인 OB맥주 매각을 주도하며 부실기업이 아닌 우량기업부터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로 “나에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소신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노동계에 대해서도 박 전 이사장은 “노조가 떼로 몰려와서 떼를 쓰는 것은 떼법이다. 사회 곳곳에 법과 원칙보다는 생떼를 부려 일을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중앙대를 인수한 후 대학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보인 박 전 이사장의 발언에도 ‘재계의 입’으로 불리던 박 전 이사장의 화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 전 이사장은 “대학평의회에 학생들이 포함되는 건 좀 재고했으면 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왜 대학 경영에 대해 간섭을 하려 하나. (중략) 마치 기업 이사회에 노조위원장이 들어와 감 내놔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에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인 2004년 11월 서울대 강연에서 “대학이 전인교육의 장, 학문의 전당이라는 말은 헛소리고 옛 말이다. 이제는 직업교육소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 발언은 그가 대학의 기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번 박 전 이사장의 막말 이메일이 뭇매를 맞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간 박 전 이사장의 독설에 담겨있던 일침이나 경영철학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의 야당 중진 의원은 “기존 박 전 이사장의 발언들 중에는 허를 찌르는 시각과 통찰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된 메일에는 그런 것 없이 특정 세력에 대한 거부감과 모독만 있어 보인다. 품위를 잃고 수위를 넘어선 막말은 어떤 이유로도 공감을 사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중앙대 비대위는 당분간 강경한 입장을 철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누리 교수는 “지금까지의 행태들을 비롯해 막말 파문까지,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이어야 할 대학에서 벌어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묵과할 수 없다. 교수들에게 퍼부은 막말과 협박에 대해서는 모욕죄와 협박죄가 적용될 수 있다”며 “이사장의 사퇴를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두산 일가와 전직 사장들이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바꿔야 한다. 재단 비리나 구조조정과 관련한 일련의 불법적인 행위들은 검찰 조사 등을 통해 투명하게 모든 진상이 밝혀 져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