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권을 가진 내가 법인을 시켜서 모든 걸 처리한다. 그들이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2015년 3월 24일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이메일 일부)
지난 21일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박용성 전 이사장의 발언들이다. 취임 일성에서 드러낸 교육가로서의 새로운 의지와 기대감이 7년여 만에 학교 교수들에게 협박성 막말 이메일을 직접 작성해 보낼 만큼 증오감으로 변했다. 과연 이 기간 동안 무엇이 박 전 이사장과 교수·학생들의 메울 수 없는 깊은 갈등의 골을 파 버린 것일까.
박용성 전 이사장의 사퇴에도 중앙대 일부 보직교수들에게 보낸 막말 이메일을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임준선 기자
2008년 5월 두산그룹은 1200억여 원에 중앙대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재정이 취약한 대학들이 많아 사회공헌활동 측면에서 인수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박용성 전 회장, 박용현 두산 연강재단 이사장, 김철수 전 세종대 총장, 이태희 (주)두산 사장, 이동 전 서울시립대 총장, 이병수(주)이수테크 사장 등 7명이 28일 중앙대학교 법인의 새로운 이사진에 선임됐고 이어 박 전 이사장이 이사장에 올랐다. 새출발 당시에는 삼성그룹이 인수해 명문대학으로 도약한 성균관대처럼 대기업이 인수한 중앙대도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이 주도하는 기업식 구조개편이 본격화되면서 교수진과 일부 학생들 간의 갈등은 본격화됐다. 박 이사장 재임기간 동안 중앙대는 3번의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4번째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중앙생들이 운영하고 있는 게릴라 독립저널 <잠망경>의 필자인 김펄프 씨(필명)는 지난 3월 24일 슬로우뉴스를 통해 보도한 기사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2010년 4월에 시행된 첫 번째 구조조정 계획은 진통 끝에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부) 체제로 수정, 통과됐다. 이어 2011년에는 가정교육과가 폐과됐다. (중략) 2013년에도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번에는 2010년에 폐과 대상이었다가 전공으로 축소돼 살아남았던 비교민속·청소년·아동복지·가족복지 전공이 표적이었다.’
흑석동 본교와 안성 분교의 통합을 비롯해 전 학생이 졸업을 위해 꼭 이수해야 하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회계학을 신설했고, 교수들에게는 기업의 연봉제를 응용해 연구실적을 기준으로 매겨진 등급에 따라 연봉에 인센티브 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한 평가제도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부문에서 박 이사장은 직접 ‘중앙대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인문계 학과가 우선 통폐합되자 해당 학과 교수들과 학생들이 반발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변화에 대해 지지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박 전 이사장에 대한 불만은 급격히 쌓이기 시작했다.
“각 학문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구조조정이다”, “인문학을 죽이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만 고려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늘어났다. 이러한 불만은 학교 담장을 넘어서더니 사회 문제로 확산됐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개혁을 강행했다. 최고경영자(CEO) 시절 한번 몰입하면 절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이사장에 올라서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을 재임용하지 않고, 학생들을 퇴학시켰다. 학교 측을 비판하는 내용의 만평과 기사를 실은 학내 언론사에게는 지원 예산을 끊어 버리고, 이렇게 길들여진 학내 언론을 통해 자신의 말을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 쌓였던 불만, 학과제 폐지안으로 표출
박 이사장의 ‘독재’가 계속될수록, 중앙대 교수들과 교직원들이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는 횟수도 늘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진실을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한 교육부 출입기자는 “중앙대 측 교수와 교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박 전 이사장의 전횡과 밀어붙이기식 일처리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기업 경영과 마찬가지로 제왕적 지위를 누리며 모든 것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기존 학교 측 인사들에 대한 강한 불신감 때문에 소통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러다 보니 교육 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는 박 전 이사장이 중앙대를 망치는 원흉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막말 이메일 사태’의 도화선이 된 것은 네 번째 구조조정, 즉 기존 학과제를 폐지하고 전공선택제 도입을 골자로 한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안’이었다. 전공을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학생들의 수요를 수용한 결과로 보이지만, 각 학과 교수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최고조에 달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찬반투표 결과를 토대로 학과제 폐지 반대에 나섰고, 일부 학생들도 동참했다. 타 대학과 관련 단체들의 반대 성명이 잇따랐다.
중앙대 교수 비대위 위원장인 김누리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회장은) 대학을 마치 자기 개인의 사유물처럼 제 멋대로 농락해왔다. 학사 개편안을 밀실에서 쿠데타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였고, 이에 교수들이 찬반투표를 하려고 하자 이를 방해하기 위해 교수들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도록 꾸준히 지시했고, 대학신문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싣지 못하도록 계속 협박을 했다”며 “심지어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직적으로 공작을 하도록 지시를 하는가 하면 학생을 사칭해서 현수막을 게재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 동정론도 제기, “대학 재도약 기회 잃을까 우려”
한편, 박 전 이사장에 대한 동정론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학문탐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인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학교의 수요능력은 분명 한계가 있는 만큼, 대다수의 졸업생들은 사회로 진출해 기업에 채용돼야 하는데,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대학도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 흐름의 변화의 추세에 맞춰 대학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교수와 학생들을 비하하는 내용의 막말과 소통없는 학교 운영 등은 분명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중앙대 사태를 만든 모든 원인이 박 전 이사장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과제 폐지는 교수들의 제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라는 시선은 많은 국민들도 느끼고 있지 않은가. 또한 현재에 안주하려는 대학의 복지부동이 부실을 키운다는 점은 많은 사학의 사례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타파하기 위해 박 전 이사장이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밀어붙였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중앙대 본·분교 통폐합 과정에서 재단 쪽에 특혜를 준 대가로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수억 원 규모의 이권 사업 등을 넘겨준 의혹을 사고 있는 박 전 이사장을 다음 달 초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교수 비대위는 22일 중앙대 교수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이사장의 막말 파문은 한국 대학사회와 그 구성원을 모욕하고 협박한 ‘대학판 조현아 사건’이다. 우리는 대학의 정신에 입각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그를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사퇴를 했지만 박 전 이사장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