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7년 12월 KAL858기 폭파용의자 김현희가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있다.<보도사진연감88> | ||
그 대표적 경우는 대형 점보 여객기가 어떻게 두부 크기의 조그만 폭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난 83년 사할린에서 KAL007편은 미사일에 격추되었으나 약 12분간 활공하면서 긴급 구조신호를 보냈던 점을 감안하면, 폭탄이 비행기 내부에서 터진다 해도 적어도 몇 분간 활공 후 추락하기 때문에 구조신호 발신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15일 만에 발견된 25인승 구명보트도 의문이다. 당시 발견된 구명보트는 바람이 안 들어간 개어진 슬리핑 백 형태였고 비상식량과 약품 등 49점의 물품이 손상되지 않은 채 멀쩡했다. 만약 858기가 흔적도 없이 공중폭발 했다면 이 물품들도 산산조각이 났어야만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 김현희의 증언에 의해 모든 사건 규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객관성에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희생자 유가족이 사건 발생 뒤 받은 괴전화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KAL기 희생자 가족 진상규명대책위’ 회장 차옥정씨는 지난 2002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차씨의 동생과 평소 절친하게 알고 지내는 외국주재 한 영사가 사건 발생 한달 뒤인 87년 12월 어느 날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와 “비행기는 폭파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외국에 나가 있다고 생각하고 3~4년만 기다리십시오. (비행기가 발견될 곳이) 바다는 아닙니다. 그래도 바다로 발표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 차씨는 전화를 받고 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남편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말만은 믿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화를 했던 영사는 88년 초에 귀국을 한 뒤 차씨 가족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