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하하호호’…속으론 ‘부글부글’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속으로 서서히 골병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 실패, 그로 말미암은 당 ·청 갈등, 막말 의원총회에다 난장판 국회 본회의까지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 정책위 소속 한 의원은 “4·29 재보궐 선거가 독이 된 것 같다. 서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여권의 막가파식 배 째라 대치가 앞으로 더 깊어질 것”이고 말했다.
새누리당 지도부 쪽에선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갑윤 국회부의장을 아주 괘씸하게 여기고 있다. 12일 소집된 5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부재했다는 이유다. 앞서의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이 성사되지 않아 집중포화를 맞는 와중에 여당이 뽑아준 의장과 부의장이 해외로 나가고 야당 소속 부의장이 사회를 봤다. 전시 상황 속에서 그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법안, 민생법안을 처리해 연금 개혁 실패로 잃은 점수를 만회할 수 있었는데 여당 편을 들 사회자가 없어 그 기회를 깡그리 날렸다는 아쉬움이 배어 있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7일부터 14일까지 권성동 신성범 박명재 의원과 함께 인도, 캄보디아 순방에 나섰고,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유인태 이한성 김한표 김상훈 이헌승 의원과 함께 10일부터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정 의장은 알게 모르게 김무성 대표와 경쟁관계다. 정 부의장은 친박이다. 지도부가 잘 되는 꼴을 볼 리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 이날 본회의는 볼썽사나웠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야유를 퍼부었다. 야당은 때 지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지적했고, 여당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 60여 건이 본회의에 부의되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언주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 무산을 여당 탓으로 돌린 뒤 ‘강제징용피해자 손해배상 소송특례법안’이 처리되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부의장이 회의를 진행한 탓에 야당에 유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후 “이 부의장은 오늘 정말 불공정했다. 당 차원에서 유감을 표명하고 그분이 차후에 사과 등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분의 사회에 대해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도부를 향한 친박의 공세는 죽기 살기다. 공무원연금 개혁 불발을 두고 친박이 여당 지도부를 성토하면서 친박 대 비박이 전면전 양상이다.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해 씩씩대고 있다. 지도부 소속 한 초선 의원은 “미국과 영국의 하원 원내총무(floor leader)는 채찍을 뜻하는 휩(whip)이라 불린다. 사냥개 무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모는 몰이꾼(whipper-in)에서 유래가 됐다”며 “그런데 우리는 몰이꾼, 즉 당론을 정해 표를 결집시키는 원내대표를 흠집내려고만 한다. 지도부는 이들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연금 개혁 실패의 모든 탓을 돌린 데 대해 아주 격앙돼 있었다.
당·청 갈등은 봉합이 어려운 수준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법인세 인상을 공론화할 뜻을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두고 “한숨이 나온다”고 하자 “나는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고 응수했다. 정부는 유 원내대표를 향한 듯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에 대한 언급은 없이 지출을 줄여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최근 사석에서 자주 청와대의 일방주의 식 정무대응에 상당히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새 나갈 것을 알면서도 참석한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과격한’ 발언도 많이 쏟아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청와대 정무라인의 미숙함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언젠가는 그 핵심 당직자가 폭탄을 터뜨릴 것 같더라. 자신이 보기에 청와대의 어설픈 정무라인이 얼마나 답답해 보였겠느냐. 이런 불만이 박근혜 대통령으로까지 이어진다. 청와대가 ‘좋으면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말고 조용할 때 정무라인을 보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당의 불만이 걷잡을 수 없이 분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새누리당은 대권 후보들간의 이기적인 경쟁, 청와대와의 엇박자, 여기에 총선을 앞둔 공천 줄대기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정작 경제 정당의 역량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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