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은 민간 아웃도어 식품을 구매, 장병 훈련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전투식량 판매업체 케이레이션 내부.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금까지 전투식량은 소수의 군납 식품업체들이 주도해왔다. 연간 24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었지만 과점체제가 형성돼 있어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제대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시장구조 특성상 시간이 흘러도 크게 발전이 없었고 일반인에게 전투식량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군에 관심이 많은 동호회,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만이 전투식량을 구입할 뿐이었다.
하지만 2013년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가 큰 인기를 끌면서 업계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전투식량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집중됐고 직접 구입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 형태도 다양해졌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구입하던 소비자부터 1~2인 가정, 해외여행객, 유학생, 수험생, 등산객, 낚시꾼 등 저마다의 목적에 따라 전투식량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덕분에 전투식량은 하나의 요리 형태로도 자리 잡았다. 햄을 넣어 끓이는 라면, 고추장 소스를 활용한 특식, 여러 전투식량을 섞어 만드는 특급 비빔밥 등 전투식량을 활용한 레시피가 활발히 공유될 정도다. 심지어 채소나 고기를 잘게 다지고 갓 지은 밥까지 더해 식품건조기를 이용해 전투식량을 직접 제조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처럼 전투식량이 전례 없는 큰 인기를 누리자 군납 식품업체들이 민간용으로 생산하는 전투식량이 대부분이었던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군납업체뿐 아니라 일반업체도 민간인 전용으로 생산되는 전투식량이 시장에 등장했고 전투식량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온라인 쇼핑몰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또한 전투식량 시장에도 경쟁이 도입되자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결과 매년 큰 변화가 없던 전투식량 매출도 급증했다. 업계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뿐만 아니라 규모면에서도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 대형마트에서도 전투식량의 인기를 적극 이용해 판매를 하는가 하면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진짜 사나이’ 브랜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일밤-진짜 사나이> 출연자들이 발열식 전투식량을 먹는 모습.
한 단계 나아가 전투식량의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줄만 당기면 즉석에서 따뜻한 식사가 가능한 발열도시락과 뜨거운 물만 넣으면 밥이 만들어지는 제품 기술을 적극 활용해 대기업에서도 전투식량과 유사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이마트는 밥솥 없이도 뜨거운 물만 부으면 갓 지은 밥처럼 먹을 수 있는 ‘밥솥 없이 바로 짓는 밥’을 출시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전투식량에 사용되던 환원미 기술을 바탕으로 휴대성을 극대화시킨 새로운 즉석밥이다. 민간의 첨단기술이 군용으로 전용된 예는 많지만 이처럼 군에서 개발된 기술이 민간용으로 이용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국내에서 전투식량이 ‘핫’ 아이템으로 각광받자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식품산업전, 박람회 등에서 전투식량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해외바이어들의 수출 상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투식량을 군납하는 샬롬산업은 지난해 서울국제식품산업전에서 필리핀, 중국 미국 등과 상담을 거친 끝에 월 5만 개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전투식량의 성장은 군도 변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동안 군에서도 민간 전투식량을 구입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한 군 관계자는 “전방근무를 나갈 때나 야외활동이 있을 때 민간 전투식량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음식 종류도 다양해 입맛에 맞게 제공할 수도 있다. 신세대 장병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 육군은 지난달 28일 군·민간 전문가와 유관기관 관계자, 관련업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투식량 혁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장병들에게 질 좋고 경제적인 전투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혁신 방안을 중점 논의했다. 육군은 이 자리에서 민간업체에서 개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아웃도어 식품을 구매,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민간 전투식량은 맛도 좋고 메뉴도 다양해 신세대 장병의 기호에 부합하며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군에 납품되는 전투식량 가격은 5000~8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민간 전투식량은 3000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민간 전투식량이 군에도 보급되는 시대가 온 만큼 앞으로 관련 업계의 성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전투식량 시장을 세계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군납 전투식량 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케이레이션 김동욱 대표(36)는 “우리나라 전투식량은 외국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종류도 적고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소수의 군납업체들만이 전투식량을 생산했고 외국과 달리 군용 전투식량의 민간 유통이 불가능해 전문가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며 “전투식량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보다 규제를 완화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기자들 전투식량 시식 후기 물·불 없이도 따끈따끈… ‘오, 놀라워라’ 애증의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기자들이 직접 전투식량 시식에 나섰다. 실제 군에서 먹어본 맛과 비교하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 기자들이 ‘소환’됐다. 시식은 야채비빔밥, 제육덮밥, 쌀국수, 라면, 쇠고기 스프 비빔밥 등 실제 군납업체에서 생산하는 전투식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여기에 PX 인기 간식까지 더해 전투식량 만찬이 차려졌다. 별다른 취사도구가 없는 사무실에서 진행된 시식이었지만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Ⅱ형’과 발열체로 쉽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즉각취식형’ 덕분에 손쉽게 식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맛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안고 시작된 전투식량 시식은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전투식량을 처음 맛본 여기자들도 “생각보다 맛있다”며 끝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고 군대라면 몸서리가 친다는 남자들도 구입처를 물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전투식량 맛을 기억하는 막내의 평 제대한 지 8년이 넘었지만 전투식량 맛만큼은 기억에 또렷하다. 가장 배고픈 시절 먹었던 소중한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쇠고기맛 스프 비빔밥’은 전체적으로 보통 이하의 맛이었으나 현역 시절 먹었던 전투식량과 제일 유사한 맛을 냈다. ‘밥과 함께 라면’은 군에서 흔히 해먹는 ‘뽀글이’보다 더 깔끔한 맛인데다 간편해 한 끼 식사로도 괜찮을 듯하다. 하이라이트는 ‘즉각취식형’의 ‘고추장 야채 비빔밥’이다. 발열팩이 문화적 충격이었는데 전투식량이 이렇게 좋아졌나 싶다. 현역 때는 전투식량 팩에 뜨거운 물을 붓고 한참 기다려야 마른 건더기와 쌀들이 부풀려져 먹을 수 있었다. 과학적인 발전과 더불어 맛도 적당히 매콤하면서 맛있었다. 기대 이하의 맛의 제품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후식으로 먹었던 참치 크래커는 군 시절 그대로의 맛이다. 이등병 때 군대 고참이 크래커에 참치를 잔뜩 얹어 입에서 살살 녹여 먹으면서 약 올리곤 했다. 오늘은 실컷 먹어 당시의 한을 풀었다. #발전한 전투식량에 놀란 최고참의 평 1990년대 초반에 군 생활을 한 지금의 40대에게는 전투식량이란 게 낯설다. 희멀건 된장국에 김치 깍두기가 주식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전투식량은 ‘그림의 떡’이었다. 야외훈련을 할 때만 가끔 한 번씩 지급됐다. 물을 부어 몇 분 있으면 야채와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다. 하지만 밥과 야채가 완전히 익지 않아 식감은 상당히 까칠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특유의 군 ‘짬밥’ 냄새가 나는 매콤한 고추장이 모든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30여 년이 흘러 ‘신형’ 전투식량을 맛보았다. 그때에 비해 외형상 달라진 건 ‘발열팩’이었다. 뜨거운 물을 끓여야 하는 불편함 대신 팩이 스스로 열을 내 밥을 짓는다. 끈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밥이 되는 편리함의 최첨단이다. 맛은 어떨까. 예전과 달리 미트볼이 첨가돼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예나 지금이나 고추장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밥과 야채도 발열팩에 제대로 익어 먹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컬컬한 고추장을 입에 넣으니 혹한기 훈련 때 벌벌 떨며 먹었던 그때의 맛이 떠올랐다. 하지만 배고프고 먹을 게 많지 않던 그 시절의 별미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추억’이라는 재료는 전투식량의 최고 조미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박] |
외국의 전투식량은? 프랑스식 엄지 척! 메인 메뉴만 14가지 국내에서 외국 전투식량을 맛보기란 쉽지 않다. 정식으로 수입허가를 받고 판매하는 곳이 없어 각국 현지에서 구입하거나 해외 직구를 통하는 방법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에서 불법으로 거래되는 외국 전투식량을 구입할 수도 있지만 이마저도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비싸지만 외국 전투식량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과거엔 일부 마니아층에서만 수요가 있었으나 최근 전투식량 열풍을 타고 일반인들까지 ‘외국 전투식량 구하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전투식량 동호회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외국 전투식량 구입을 원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가격 상관없이 구하고 싶다” “프랑스 전투식량 10만 원에 사겠다” 등의 글도 눈에 띈다. 주로 거래되는 외국 전투식량은 스페인, 러시아, 일본, 스위스, 독일 등으로 그중에서 가장 ‘핫’한 제품은 프랑스에서 생산된 전투식량이다. 프랑스 전투식량은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세계 최고로 평가 받는데 구성과 맛 모두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가격은 비싸지만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완벽한 코스를 즐길 수 있어 그에 대한 불만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한다. 프랑스 전투식량은 메인 메뉴만도 14가지에 달하는데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스튜, 와인으로 요리한 닭고기, 고등어 요리 등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디저트도 각종 사탕, 젤리, 차, 캐러멜, 초코바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덕분에 군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 배낭 여행객들에게도 프랑스 전투식량은 최고의 인기다. 대중성에 있어서는 미군 전투식량이 우위에 있다. 불법이긴 하나 주한미군을 통해 유통되는 제품들이 많아 비교적 손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개당 7000원~1만 원 선으로 해외 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전투식량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경찰의 단속 이후 미군 전투식량 구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졌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주한미군이 훈련 후 폐기처분한 전투식량이나 수입신고 없이 해외에서 들여온 제품 약 1680만 원 어치를 판매한 혐의로 유통 판매업자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유통시킨 미군 전투식량은 죽은 쥐가 그대로 방치된 컨테이너에서 보관됐거나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었다. 이후 미군 전투식량 판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고 주요 판매소였던 남대문 시장에서도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서서히 가격도 올랐는데 지난 12일 기자가 직접 남대문 시장을 방문해보니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거래는 이뤄지고 있었다. 기자가 미군 전투식량을 구입하고 싶다고 하자 수입식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예전엔 내놓고 팔았는데 요즘엔 단속에 걸리면 바로 벌금이라 판매하지 않는다”며 일단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안쪽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봐라. 단속 때문에 안쪽 깊숙한 곳에 보관하면서 찾는 사람들에게만 팔고 있다. 양이 많이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사는 게 더 편하다”는 조언까지 해줬다. 실제 상인이 알려준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하니 미군 전투식량을 판매한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