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국회 운동장에서 열린 광복 60주년 기념 3부(입법 사법 행정) 친선 축구대회에 출전한 정동영(왼쪽) 김근태 장관.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참여정부 출범 2주년을 전후해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여권 전반에 자신감이 퍼지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론’이 확산되면서다.
가장 큰 요인은 ‘신통찮은’ 지지율이다. 노 대통령 취임 2주년(2월25일)을 앞두고 각 언론매체가 실시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율이 ‘형편없이’ 나오면서, 양 진영은 물론 여권 전체가 충격을 받은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정 장관은 모두 고건 전 총리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에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율도 대부분 한자리수에 그쳤고, 심지어 <한국일보> 조사에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지지율에 못미쳐 5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정 장관측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 급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 조사결과를 통해 확인됐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조사에선 정 장관과 같은 전북 출신(군산)인 고 전 총리가 호남에서 38.6%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고, 열린우리당 지지층에서도 34.5%를 얻어 역시 정 장관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광주-전남권이 주축인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무려 51.2%가 고 전 총리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지한다고 밝혀, 향후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여부에 따라 호남권 민심이 급격히 고 전 총리로 쏠릴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 장관의 경우는 더 ‘참담한’ 상황이다. 4개 여론조사에서 1.6(
김 장관측을 더욱 난감하게 하는 것은 여권과 개혁세력 내에서 조차 ‘대권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일보> 조사에선 자신의 이념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들 가운데서도 33.9%가 김 장관이 아닌 고 전 총리 지지의사를 밝혔고, <국민일보>(2월24일) 조사에선 열린우리당 당적을 가진 차기 주자 중 선호도를 묻는 항목에서 10.9%를 얻는데 그쳐 정 장관(27%)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김 장관측은 “여론이란 수시로 변하는 것 아니냐”며 애써 자위하면서도 내부적으론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지지율 하락의 근본 책임이 두 사람을 내각이란 ‘울타리’에 가둔 노 대통령에 있다”는 주장과 함께 ‘조기 당 복귀’를 통해 침체 국면을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양 진영 모두 위기의식을 갖고는 있지만 좀처럼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과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의 이미지-비전 제시, 대중적 인기 제고 등 대권가도의 여러 요건들을 동시에 충족시킬 카드는 찾지 못하고 있는데 대내외적 환경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이 여권내 분석이다.
우선 정 장관의 경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으로 정부의 통일-외교-국방분야를 총괄하며 겉으론 각광을 받고 있는 듯 하지만 “실익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올 들어서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1월 하순 유럽을 순방하며 베를린 연설(1월28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 폐막연설(1월30일) 등을 통해 대북 관계에서 나름대로 의미있는 제안을 내놓았고, 귀국길엔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를 방문(2월1일)하는 ‘노무현식 이벤트’도 연출했지만 반향은 미미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반면 교착상태에 빠진 6자 회담과 북한의 ‘핵 보유’ 선언 등 갈수록 꼬이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오는 부담은 정 장관을 더욱 위축시키고, 이 와중에서 ‘에러’도 연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일종의 대외비라 할 수 있는 한미 외무장관 회담 개최와 중국 고위인사의 방북 사실을 기자간담회(2월4일)에서 밝혔다가 구설에 오르는가 하면, 이 문제를 따지는 한나라당 박계동 전여옥 의원 등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2월21일)에서 ‘볼썽사나운’ 논쟁을 벌인 것 모두 정 장관이 갖고 있는 초조감의 발로라는 얘기가 나온다.
‘천-신-정’트리오를 형성했던 신기남-천정배 의원과 사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도 정 장관의 고민거리. 당권 도전에 나선 신 의원과는 정 장관이 일찌감치 문희상 의원을 차기 당 의장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와 함께 핵심측근인 박영선 전병헌 의원을 선대위 비서실장과 대변인으로 ‘파견’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게 패인 상태.
특히 신 의원이 재야파 당권후보인 장영달 의원과 보조를 맞춰 문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고, 원내대표직 사퇴 이후 침묵을 지키던 천 의원이 신 의원 지지를 선언하고 나서면서 사정은 갈수록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원내 최대 계파인 국민정치연구회 수장으로 한때 ‘세 확산’에 기세를 올렸던 김 장관도 최근 지지도가 바닥권을 맴돌고 있음이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내부에서 부터 결속력이 이완되는 등 흔들리는 분위기다. 김 장관의 측근인 한 초선 의원은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삼삼오오 모이면 ‘김근태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열의가 충만했는데 최근엔 ‘결과에 상관없이 개혁노선을 지켜가며 최선을 다하자’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 장관과 캠프에서 안팎의 변신 요구를 외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외곽지원 조직인 한반도재단의 올해부터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정책포럼을 정례화하기로 한 것이나 열린우리당과의 유대 강화를 위해 정무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보좌진을 개편한 것 등이 일례다.
지난해 11월 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현장방문 스케줄에 따라 소록도 방문, 청량리와 탑골공원에서의 배식 등에 나선 것도 이전과 달리 대중성 제고를 위해 본격 나서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란 평가다.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개혁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른바 ‘아톰 머리’를 선보인 것도 따지고 보면 변신작업의 일환이다.
문제는 일련의 노력이 ‘재야 투사 김근태’의 이미지를 탈색시키는데는 역부족이란 점이다. 한 측근은 “지금 김 장관의 과제는 차별화된 비전을 갖춘 대중 정치인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70~80년대 민주화세력의 주력이란 정통성만 살려야겠지만 ‘무겁고 칙칙한’ 이미지를 버리고 대중을 흡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선 라이벌인 정 장관을 벤치마킹이라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