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 씨(왼쪽)가 노 전 대통령 관련 강제추징을 피하기 위해 아들 명의로 명의신탁을 했다가 수십억 원대 세금을 물게 됐다. 노재우 씨가 설립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소재 오로라씨에스. 연합뉴스
노호준 씨가 서울강남세무서장을 상대로 대법원까지 가며 2년에 걸쳐 진행한 ‘증여세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노재우 씨 일가는 추가로 27억여 원을 내게 됐다. 노태우 비자금을 둘러싼 형제간 소송이 비로소 일단락된 것이다.
노재우 씨는 형 노태우 씨로부터 받은 비자금 120억 원으로 지난 1989년 12월 냉동창고 업체인 오로라씨에스(설립 당시 미락냉장)를 설립했다. 대법원 등에 따르면 노재우 씨는 199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자신의 친한 후배인 박 아무개 씨, 친구인 노 아무개 씨, 고종사촌인 채 아무개 씨 명의로 신탁한 비상장법인 오로라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오로라 주식 지분율을 보면 노재우 씨가 29.43%(16만 4800주), 박 아무개 씨가 25%(14만 주), 노 아무개 씨가 24.21%(13만 5600주), 노호준 씨가 20%(11만 2000주), 채 아무개 씨가 1.36%(7600주)였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1999년 6월 노태우 씨에 대한 추징금 2629억 원을 회수하기 위해 노재우 씨를 상대로 추심금 소송을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노재우 씨는 타인 명의로 소유했던 주식을 2000년 12월 15일과 12월 21일 두 차례에 걸쳐 명의개서를 했다. 먼저 노 아무개 씨와 채 아무개 씨의 주식 14만 3200주는 2000년 12월 15일 자신의 아들인 노호준 씨로 명의개서 됐다. 6일 뒤인 12월 21일에 노재우 씨는 박 아무개 씨가 보유 중이던 14만 주의 주식 중 5만 6000주는 자신과 사돈이자 노호준 씨의 장인인 이흥수 변호사에게, 2만 8000주는 노호준 씨에게 각각 넘겼다.
세무당국은 지난 2012년 6월 노재우 씨가 박 아무개 씨, 노 아무개 씨, 채 아무개 씨 명의로 신탁한 오로라 주식 합계 17만 1200주를 노호준 씨에게 증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증여세 19억여 원과 가산세 8억여 원을 부과했다. 당시 세무당국이 평가한 오로라 1주당 가액은 2만 7451원이었다.
이에 노호준 씨는 ‘주식을 실제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인 노재우 씨가) 추심금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명의신탁자 이름만 바꾼 것’이라며 세금 부과관서인 서울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증여세부과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세법상 ‘조세 회피 목적이 없었다’는 점만 입증하면 증여세를 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까지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된 1심에서 원고인 노호준 씨 측은 “이 사건 주식을 명의신탁 받은 것이므로, 증여를 전제로 한 세금 부과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증여가액 계산방법에도 이의를 제기했다. 17만 1200주의 오로라 주식이 자신에게 명의 신탁되기 전후 3개월 이내에 노재우 씨가 이흥수 변호사에게 오로라 주식 5만 6000주를 주당 9000원에 매도한 매매사례가액이 있고, 노재우 씨와 이 변호사는 사돈지간으로 특수 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시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 재판과 별개로 2013년 5월 대법원으로부터 ‘노태우 씨의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돈’이라며 오로라 주식 34만여 주의 주식에 대한 매각명령 확정 판결을 받은 노재우 씨 측은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검찰의 중재 작업 아래 같은 해 9월 ‘노태우 씨-노재우 씨’, ‘노태우 씨-신명수 전 회장’ 간 추징금 대납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보다 앞서 2011년 8월 오로라 주식 34만여 주에 대해 주식압류명령에 이은 매각명령을 받게 되자 노호준 씨와 이 변호사는 같은 해 9월 정부를 상대로 ‘제3자 이의의 소’를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이들은 “원고(노호준)는 형식상 주주인 노 아무개 씨 등으로부터 직접 양수하는 형식으로 노재우 소유의 오로라 주식 28만 3200주를 증여받았고, 이흥수는 형식상 주주인 박 아무개 씨로부터 노재우 소유의 오로라 주식 5만 6000주를 양수했으므로, 원고와 이흥수는 오로라 주식을 각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노재우 씨 측이 추징금을 피하려는 목적의 앞선 재판에서는 아들인 노호준 씨로의 증여를 주장하며 법원의 주식 압류와 매각 명령에 맞섰던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법원은 “원고, 노재우 및 이흥수는 외관상 정상적인 주식양도절차가 이뤄진 것처럼 꾸몄고, 노재우가 주식의 명의대여자를 원고와 이흥수로 변경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계속 소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라며 오로라 주식 매각명령 확정 판결을 내렸다.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의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07년 7월 노호준 씨에 대한 업무상 배임 등 사건에서 오로라의 명의상 주주였던 박 아무개 씨의 검찰 진술도 인정사실로 제시했다. 박 씨는 당시 검찰에서 “노재우가 아들인 노호준에게 경영권을 넘기려고 했는지 최종적으로 노호준에게 50%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 정리하는 식으로 주주를 변동했다. 형식적으로만 주식인수계약이 체결돼 주식대금이 지불된 것처럼 해 명의를 변경했다”며 노호준 씨, 이흥수 변호사가 전 주주로부터 돈을 지불하고 주식을 인수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했다.
행정법원은 최종적으로 “원고(노호준)가 노재우로부터 이 사건 주식을 명의신탁 받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증여를 전제로 한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고, 노재우는 노태우에 대한 추심금 판결을 선고받아 그 집행을 받을 처지에 있었으므로 집행을 회피하기 위한 주된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된다”면서도 “박 아무개 등에서 원고로의 명의수탁자 변경은 새로운 증여에 의한 조세회피 위험이 발생하는 등 조세회피 의도도 있고, 달리 조세회피 의도가 없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9월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이 사건 명의신탁에 조세회피목적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명의신탁 당시에나 장래에 있어 회피될 조세가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판결하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어 지난 4월 대법원의 판결 역시도 “이 사건 주식의 명의신탁에 조세회피의 목적이 없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한 것은 정당하고,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하면서 호준 씨는 재판에서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이뤄진 만큼 강남세무서는 곧 노호준 씨에 대한 증여세 집행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노호준 씨 측 이흥수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로 최종 판단이 이뤄진 마당에 할 말이 없다. 세금은 패소한 사람이 내는 것이고 만약 낼 돈이 없다면 다른 재산을 팔거나 빚을 내거나 해서라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에서 이긴 강남세무서 측은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해서 집행을 해야 하니까 바로 징수절차에 들어갈 것이다. 재산 상태를 다 조사해서 집행을 할 것이고, 수증인(취득자)이 자력으로 세금을 못 낼 경우 증여인도 연대납세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노호준 씨에 대한 증여세 부과 건은 이미 3년이나 된 사안으로, 명의신탁에 대한 증여세 부과는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따라 케이스별로 결과가 많이 다르다”며 “법원이 (노재우 씨 측을) 별로 안 좋게 봤는지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현재 큰 관심을 갖는 사안은 아니며 조사도 이미 3~4년 전에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다만 27억여 원이면 적은 돈도 아닌데 지금 세금을 누가 낼지가 궁금하다. 부동산 같은 경우에 아버지가 대신 증여세를 내 주면 또 다른 증여로 보는데 명의신탁의 경우 연대납세의무가 있어 노재우 씨가 내든 노호준 씨가 내든 상관없다. 부자 간에 소송전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